그림책 콘퍼런스
한국 그림책을 향한 전 세계의 관심이 뜨겁다. 2020년 백희나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2022년 이수지 작가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등 아동문학계에서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작가상을 연이어 수상하면서부터 시작된 관심이다. 두 작가의 활동이 전해지면서 출판 시장에서 그림책의 인기도 높아졌다. 하지만 오늘의 국내 아동 문학계는 기대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한국 그림책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이 국내 그림책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지난 6월 8일 전주혁신도시복합문화센터의 100여 좌석은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앉아 미래를 꿈꾸는 시간. 그림책 평론가 김지은씨의 진행으로 1부에서는 그림책 작가 권윤덕, 그림책협회 이영경 회장, 심향분 KBBY 사무처장이 '한국 그림책 성장의 발자취'를, 2부에서는 이상희 원주시 그림책센터장, 서강석 강북문화재단 대표이사, 조미정 전주시 도서관정책과장이 '지역 그림책 문화 활동'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특히 그림책진흥법이 관심을 모았다. 진흥법이 제정되면 그림책은 독자적인 장르로 인정받고 문화 산업 분야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림책의 도서 분류 기호를 정립하고, 그림책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그림책의 발전에 필요한 여러 인프라를 마련하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도 하다. 콘퍼런스 현장을 소개한다.
1부─한국 그림책 성장의 발자취
권윤덕 그림책 작가
그림책에는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이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민중미술로 그림책을 시작했는데, 우연히 93년도에 초방책방 신경숙 대표와 만나 그림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이게 사회참여 예술의 새로운 장으로 다가왔어요. 일반적인 미술 운동의 방식과는 다르게 그림책은 대량 생산, 유통이 가능한 대중적인 예술 장르였지요.
'한중일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에 10년이 넘게 참여했는데 일본 작가가 처음 준 제안서에 공감했던 문장이 있어요. ‘그림책은 아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매체다. 그러니 함께 해보자’는 것이었어요. 인권이나 민주 등 보편적인 가치를 다루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함께 꿈꾸면 좋겠습니다.
이영경 그림책협회장
그림책협회는 2016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림책은 문학의 언저리, 시각 예술의 셋방살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림책은 그림책이다'라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했지요. 당시에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현재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종합 모임이 되어 500명이 넘는 회원이 있습니다.
2022년도에 협회 그림책진흥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그림책 산업 현황을 조사했습니다. 한국의 그림책은 오래전부터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그에 비해 열악한 산업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조사 내용을 국회에 전달하였지만 긍정적인 결과는 아직 없습니다. 그림책진흥법 제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심향분 KBBY* 사무처장
한국 그림책 작가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은 높아지는데, 이들의 정보가 해외에서는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구글과 같은 해외 검색 엔진에서 쉽게 검색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현재 KBBY에서 작가들의 위키피디아 등재를 시도하고 있고, 유튜브에도 소개 영상을 게시하고 있습니다. 영문명이 여러 버전으로 표기된 작가들이 있어 이를 통합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독자들이 한국 그림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과 플랫폼이 늘어나야 합니다.
*KBBY 'Korean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의 약자로, IBBY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위원회이다. 한국 아동문학계가 국제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2부─지역 그림책 문화 활동
이상희 원주시 그림책센터장
원주 그림책센터는 폐차 버스로 시작했습니다. 2004년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라고 이름 지은 버스 안에서 많은 아이들이 그림책과 만났습니다. 버스에서 20년, 협동조합으로 10년, 센터는 3년을 운영하며 그림책도시 원주의 밑그림을 그려왔습니다. 그 결과 지난 5월 4일 원주시에 그림책도서관이 개관했습니다.
원주는 다른 도시보다 먼저 그림책의 일상 예술성을 경험했고, 오랫동안 실험해 왔습니다. 특별한 도서관 하나로 어린이와 주민이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그 모습 자체가 매력적인 관광 요소가 되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전주를 비롯한 전국의 그림책 거점센터와 효율적으로 협력하고 한국의 그림책 문화를 돈독하게 쌓아가면 좋겠습니다.
서강석 강북문화재단 대표이사
강북문화재단은 다른 지역문화재단에 비해서 그림책과 관련된 행사를 자주 엽니다. 강북은 서울 자치구 중 재정자립도도 거의 꼴찌고 문화예술로도 소외 지역입니다. 대표를 맡고 생각한 것이 문화예술 '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삼각산 그림책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림책 만들기, 작가의 그림책 공연, 그림책 예술교육 전문가 양성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북에 오기전 군포에 오래 있었는, 군포 그림책의 핵심은 사람이었습니다. 시민들이 활동가 모임을 만들고, 자발적으로 행사를 이끌면서 지역문화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행정적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지역에서 문화예술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재정, 시스템이 함께 지속되어야 합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