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도서관의 아동실에 가면 유독 종이가 닳아서 너덜너덜해진 책들이 있다. '학습만화'다. 네모 칸 속에 담긴 그리스로마신화, 삼국지를 읽어가며 신과 전쟁, 역사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다. 세계사는 <먼나라 이웃나라>로 배우고, 과학은 <WHY?> 시리즈로 배운다. 고전적인 학습만화 외에도 좋은 신작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오락적이고 자극적이라는 편견이 씌워진 장르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만화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8월의 권하는책에서는 어른들도 읽기 좋은 만화책들을 소개한다. 만화지만 그 안에 작가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만화 위주다. 특히 여름과 잘 어울리는 만화들이며, 기자의 개인의 사심도 약간 담았다.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위트 있게 담은 만화부터, 잔잔한 위로가 느껴지는 힐링 만화, 여름의 더위를 씻어내줄 오싹한 공포 만화, 사랑스러운 클래식을 다룬 순정만화까지. 이번 여름에는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기분 좋은 선풍기 바람을 느끼며 만화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지역의 사생활99: 전주
OOO(정세원) | 삐약삐약북스 | 2022
군산의 만화 전문 출판사 '삐약삐약북스'가 만화가들과 함께 지역을 탐방하는 지역의 사생활 시리즈, 전주편이다. 픽셀 스타일의 작화와 빈티지한 채색으로 사랑받는 만화가 OOO이 그렸다. 우주 내 관광쿼터제 때문에 어쩔수없이 지구에 여행을 가게 된 외계인들. 전주에서 관광을 하려하고, 이들에게 부탁(사실은 납치) 받은 전주 사람이 가이드로 나선다. 하지만 사실 그는 전주에 대해 잘 모른다. 전 연인이 알려준 맛집과 관광지 정도가 전부. 졸지에 전 연인과의 추억 투어를 다니며 외계인들과 전주 콩나물국밥, 한식, 덕진공원, 벽화공원까지 전주 곳곳을 여행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요시다 아키미 | 애니북스 | 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동명 영화의 원작으로, 영화보다 조금 더 세세한 부분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의 작은 해안 도시 카마쿠라를 배경으로 배다른 네 자매의 이야기를 그렸다. 평범한 일상을 꾸려나가던 코다 가의 세 자매는 15년 전 어머니와 이혼한 뒤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자신들이 아닌 다른 여자를 선택한 아버지의 죽음에 동요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장례를 치르러 떠나고 그곳에서 외톨이가 된 마지막 이복동생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네 자매가 함께 살아가며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얻는 과정을 담았다.
소용돌이
이토 준지 | 시공사 | 2010
일본의 유명 공포 만화가인 이토 준지의 대표작 중 하나. 고등학생인 키리에와 그의 남자친구인 슈우지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와 관련된 사건들을 다룬 단편 모음집이다. 단편 모음이면서도 각 사건들이 주인공들과 쿠로우즈 마을을 무대로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주인공들을 포함한 마을 주민들은 소용돌이에 빠진 것처럼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공포 등 단순한 공포 만화가 아닌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토 준지의 만화를 주제로 한 전시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가 서울에서 9월 8일까지 진행되니 함께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염소의 맛
바스티앙 비베스 | 미메시스 | 2010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 바스티앙 비베스의 대표작이다. 한 소년이 소녀에게 수영을 배우면서, 소녀와 수영 양쪽에게 모두 매료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년이 풋풋한 첫사랑을 만나 수영하는 것이 전부인 만화. 플롯은 단순하지만, 주인공들이 주는 감정은 어딘가 복잡미묘하고 여운이 남는다. 만화를 다 읽고 나면 오묘한 색감의 민트색 수영장과, 어딘가 큼큼한 수영장의 소독 냄새가 남는다. 한 리뷰는 한참이나 수영을 하며 코로 물이 들어오는 것 같고, 소독 냄새가 나는 물을 한 모금 삼킨 것 같은 울렁울렁함이 느껴졌다고. 출판사 미메시스의 예술 만화 시리즈 중 하나이다.
위국 일기
야마시타 토모코 | 대원 | 2019
'상실'에 관한 만화다. 이 만화의 리뷰창을 보면 이런 평이 있다. "만화적 기법으로 시를 쓴다면 위국일기가 될 것이다." 주인공 '코다이 마키오'는 언니 부부의 장례식에서 고아가 된 언니의 딸 '아사'를 친척들이 서로 떠넘기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자신이 맡겠다고 나선다. 타인과 생활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어쩐지 내면에 불안과 외로움이 있는 코다이. 한순간에 세상에 홀로 남겨지고 천천히 슬픔을 느끼는 아사. 두 사람이 함께 동거를 시작하며 더듬더듬 삶을 이어 나간다. 잔잔한 분위기지만 읽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노다메 칸타빌레
니노미야 토모코 | 대원 | 2002
클래식에 입문하기 좋은 사랑스러운 순정만화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피아노 전공 '노다 메구미'와, 같은 피아노과 선배이자 학교의 유명 인사인 치아키 신이치. 두 사람을 비롯해 그들을 둘러싼 음악대학 학생들이 프로 연주가가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다. OST 음원이 발매되어 있어 함께 들으며 읽으면 더욱 좋다. 만화 속 이야기들을 반영하여 녹음되었는데, 예를 들어 두 주인공의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모차르트: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 K.448, 1악장'의 경우에는 여자 주인공이 연주를 틀리는 부분이 그대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