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2025.1월호

올해는 나를 위해 기록합니다 


김애리
 작가


나는 언제나 내 편임을 알려주는, 일기 쓰기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일, 저에겐 그것이 바로 ‘일기 쓰기’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오랜 시간 내 삶을 꾸준히 기록해왔다는 사실은 제게 묘한 안도감마저 주는데요. 그 이유는 UCLA의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마우어 박사의 말 속에 전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말했습니다. 일기를 쓴다는 건 아무도 보지 않는 책에 헌신할 만큼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는 외침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저에게 있어 ‘내 손으로 내 삶을 기록해간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자기존중감, 자기사랑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입으로만 ‘나는 내 삶을 사랑해.’, ‘나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야.’라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진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나는 나의 감정, 일상, 관계, 미래까지 진심으로 궁금하고 여전히 기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행위, 저는 그것이 바로 일기 쓰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외적인 상황이 힘들어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를 돌보고 지켜내고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죠. 


꾸준히 쓰게 만드는 몇 가지 장치들

그런데 이 좋은 일기 쓰기, 어떻게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까요? 올해는 반드시 일기를 쓰겠다고 결심하셨다면 속는 셈 치고 이번에는 저를 한 번 따라 해 보시겠어요? 일단 아주 마음에 드는 일기장을 고릅니다. 일기장은 무려 1년을 내 곁에 머무르며 생활하는 존재이니 가성비 말고, 가심비(價心比)를 기준으로 선택하세요. 나의 내면세계를 오롯이 반영하는 공간을 그저 싸고 튼튼한 기준으로만 고르면 안 됩니다. 언제 펼쳐보더라도 기분 좋아지도록 나의 취향과 안목을 최대한 반영한 노트를 선택해보세요. 그 안을 빼곡히 ‘나다움’으로 채우고 싶은 기대와 설렘이 느껴지거든요. 


그렇게 일기장을 선택했다면 달마다 테마를 정해 글을 쓰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건 제가 아이와 재미있게 하고 있는 일기 쓰기 방법 중 하나인데요. 달마다 혹은 주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보는 거예요. 백지를 앞에 두고 ‘오늘도 어제랑 똑같은 하루인데 대체 뭘로 채우지?’ 늘 막막했던 분들에게 더없이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번 달은 읽고 있거나 보고 있는 콘텐츠에 관한 주제로 일기를 써보는 거예요. 그리고 다음 달은 ‘영어공부’에 관한 테마로 혹은 건강식에 관해 이야기해도 좋을 거예요. 자신의 필요나 관심사, 목표와 관련한 테마를 미리 정하고 글을 쓰는 거죠. 재테크, 미국문화, 다이어트, 고양이 키우기, 오늘의 감사, 오늘의 후회… 무엇이든 좋습니다. ‘오늘은 뭘 쓰지? 에이, 쓸 것 없으니 패스!’의 굴레에서 벗어나실 수 있음은 물론이고요. 단 세 줄, 다섯 줄일지라도 하나의 주제에 관해 나만의 생각과 관찰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배움과 성찰이 일어날 거예요. 생각에 깊이가 더해짐은 물론입니다.


꾸준히 일기를 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자신만의 루틴을 정하는 것입니다. 일기 쓰기에 있어 사실 내용이나 형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요.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우든 그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그만인데요. ‘작심삼일’에서 벗어나 ‘작심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심일년 이상을 꿈꾼다면 최소한의 사이클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냥 ‘시간이 남는 어느 날’ 혹은 ‘유독 마음이 울적한 날’에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월수금 아침 출근 전 5분’ 혹은 ‘일주일에 2차례 잠들기 전에 마음 정리’ 같은 최소한의 계획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아직 일기 쓰기 습관이 자리 잡지 못했다면 자신에게 약간의 의무감을 부과해야 해요. 적어도 그 일이 자연스러운 내 일상 속 풍경이 되기 전까지는요. 꼭 아침, 저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의 하루를 살펴보고, 혼자가 가능한 가장 좋아하는 시간에 일기 쓰기 계획을 넣어보세요. 딱 5분이면 됩니다. 


일기로 내 삶을 만들어간다는 것

꾸준히 일기를 쓰다 보면 많은 변화를 겪게 돼요.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지는 변화는 아니지만 서서히, 그러나 아주 강렬하게 삶이 바뀝니다. 그동안 안 보이던 나의 일상이 자세히 들여다보이면서 나의 시간 관리,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으로 매번 부침을 반복하는지 그 패턴도 알게 되지요. 


일 년간 꾸준히 일기를 쓴다면 어쩌면 평생 알던 것보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시간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모든 것을 삶의 주도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나 어떤 사람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거지?’에 대한 아주 길고 디테일한 답을 찾는 과정이니까요. 남들이 좋다고 주장하는 욕망이 아닌 나다운 욕망을 들여다보는 시간, 내 안에 어떤 아픔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솔직하게 대답하는 시간. 무엇을 위해, 어떤 하루하루를 설계하며 살아볼 것인지 일상을 컨트롤하고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들. 그래서 일기를 쓴다는 것은 나답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 일임과 동시에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매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올 해는 일기를 쓰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경제는 날로 어려워지고, 나라 안팎으로 불안감이 고조되는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믿고 지지하는 한 사람-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가면 좋겠습니다. 담담히 그러나 꾸준히 말이지요. 스스로와 대화하며 내 안에 튼튼히 뿌리내려 보는 한 해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김애리 

열여덟 무렵부터 지금까지 20년째 일기를 쓰며 매일 스스로를 다시 일으키는 사람. 『어른의 일기』,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등의 저자로 다양한 매체에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