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2025.5월호

너는 너같은 딸이 없어서 어떻게 하니


이유나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만약에 말이야’는 대화를 시작하는 나의 단골 멘트이다. 최근 가장 많이 나온 ‘만약에’는 ‘만약에 부모님이 아프면’, ‘만약에 내가/파트너가 아프면’에 대한 것이다. 이사를 앞두고 파트너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가족에 대한 간병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화두에 올랐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간병에 관여하고 싶은지, 일을 하면서 돌본다는 것이 가능한지, 간병인을 구한다면 돈이 얼마가 드는지 등 이야기할 거리는 무궁무진했다. 모든 것은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서 큰 소용돌이에 빠졌다. 건강할 때 서로 떨어져서 살자는 말로 독립했던 비혼 성소수자 딸에게 '아프니까 함께 살아야 한다'는 부메랑이 돌아왔다. 꼭 법과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라서만이 아니라 서로 돌봄을 주고 받은 시간과 관계를 토대로 부모님을 돌볼 용의는 있었다. 하지만 내 돌봄을 ‘딸’이라서 당연히 수행하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게 하는 마음 사이에서 돌봄은 요동쳤다. 나도 파트너와의 ‘내 가정’이 있는 상황에서 부모님에게 계속해서 ‘혼자’인 삶, 언제든 부모의 간병을 위해 이동할 수 있고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는 것은 협상을 요구했다. 나를 위해 필요한 시간과 파트너와 함께 하는 삶을 확보하기 위해 병원 동행과 가사 도움 등에 낼 시간을 계속해서 조정해나갔다.


한 번은 도저히 병원에 동행할 시간을 낼 수 없어 서울시 병원안심동행 서비스 신청에 대해 의논했다. 해당 서비스는 1인가구 정책 중 하나인데, 병원 이용에 도움이 필요한 시민이면 누구나 월 10회, 연간 200시간 내로 병원동행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 있는데 왜 굳이 남을, 돈을 써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견디고 써야하는지에 대해 나 이외에 모두가 납득하지 못해 기각되었다. 돌봄에 더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하는 나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던 어머니는 긴 시간의 병원 순례 끝에 치료를 시작하고 체력이 회복되면서 ‘비혼 딸 존재 감사’ 모드로 돌아섰다. “그래도 너가 결혼해서 네 가정이 있었다면 이 정도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혼을 안해서 다행이다. 그런데 너는 너같은 딸이 없어서 어떻게 하냐”는 화룡점정 멘트와 함께. 


한국의 ‘가족’돌봄휴직제도는 2019년에야 신설되었다. 근로자가 조부모, 부모,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 자녀 또는 손자녀의 질병, 사고, 노령으로 인하여 그 가족을 돌보기 위해 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자본에 가해지는 부담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법적 가족 중에서도 매우 좁은 범위만을 인정하는 이런 법제도는 실제로 이 법의 범위를 벗어나 돌봄을 수행하는 다양한 관계를 포착하지 못한다. 「의료법 제24조의2(의료행위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의사ㆍ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으면 환자의 “법정대리인”에게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해당 규정에서 법정대리인 자체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으나 환자의 직계존속ㆍ비속, 배우자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 일반적으로 해석한다. 법적 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떤 불평등이나 폭력, 관계의 단절이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당사자가 지정한, 당사자의 이익과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자가 따로 있을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는다. 


다양한 돌봄의 관계, 친밀성의 관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 그래 다양한 관계가 있구나’ 하는 앎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지금의 법적 가족이 아닌 관계의 당사자가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나같은 딸’ 대신 제게 동성 파트너가 있습니다, 인정하시죠-버전의 권리다. 동시에 당사자가 원치 않는 가족을 벗어나 이동할 권리, 가족 없이도 존엄하게 살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나에게 ‘나같은 딸’이 있든 없든, 동성파트너가 있든 없든 관계 바깥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관계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통제된 시설, 통제된 가족을 벗어나 머무를 수 있는 공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돌봄의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원을 사회에 요청한다. 


하지만 법적 가족이 유일한 대안이 되지 않기 위한 제도가 생긴다고 모두가 옳다쿠나 하고 가족 자원보다 타인의 돌봄을 우선하지는 않는다. 친밀함이 곧바로 서로를 돌보는 관계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돌봄에 관해 대부분의 아프지 않은 몸을 가진/비장애인은 타인과 나의 필요와 몸과 접촉의 경계를 상호 타협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드물고 그런 교육도 받아본 바가 없다. 장애여성공감의 진성선 활동가는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을 이용하는 등 내 맨 몸을 보이는 활동보조를 받을 때 상대방의 어색함이나 순간적인 불쾌감, 내 수치심과 몸에 대한 평가를 듣는 것에서 오는 복합적 감정을 다뤄온 장애여성의 삶을 드러내며 장애인과 활동보조사가 “관계의 호흡을 맞춰가는 것은 몸이 익숙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며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가족의 바깥에서 돌봄의 층위를 다양하게 나누는 친밀한 관계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훈련의 과정을 가족이라면 생략할 수 있다고 손쉽게 믿는 대신, 돈과 시간, 에너지, 감정과 필요가 얽히는 돌봄의 협상을 지속해야 한다. 관계의 등록을 넘어 ‘나같은 딸’도 내 파트너도 유일한 선택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돌봄이 가족이라는 폐쇄회로에서 도는 것을 해결하고 싶은, ‘나같은 딸’이 없을 나의 목표는 그렇다.





이유나 

가족구성권연구소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족과 공동체를 구성하고 차별 없이 지위를 보장 받는 사회를 위해 다각적인 연구 및 대안을 모색한다.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 발표, 『가족신분사회』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