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음   2026.8월호

그때 내가 이 땅에서 찾았던 것


윤덕향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원 두락리 유곡리 고분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건지리 고분군이 있다. 건지리 고분군은 곽장근 교수(군산대학교)가 1987년 두락리 유곡리 고분 주변 지역을 조사하던 중 발견하였는데 현장을 둘러보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전북대학교 사학과의 신참 전임강사로 이쪽 눈치, 저쪽 코치를 살피는 처지였지만 큰 마음먹고 학교에 발굴조사를 신청하였다. 당시 대학교 자체예산으로 유적조사를 지원해 주는 일은 전국적으로 7년 가뭄에 콩이 싹트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었는데 감격스럽게도 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 덕분에 1988년 8월과 9월에 6세기를 전후한 시기 가야계 무덤 18기를 조사할 수 있었는데, 모두 도굴이 되어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도굴도 1-2차례만 한 것이 아니다. 유물이 놓여있는 머리 쪽과 발치 쪽만이 아니라 가운데 부분까지 완벽하게 파 뒤집었다. 유물만 꺼내 가면 될 것을 무슨 억하심정인지 바닥 흙까지 파내버리고 깨진 토기들은 무덤바깥으로 멀찍이 던져버렸다. 도굴한 구덩이의 흔적과 산비탈에 흩어진 토기 조각들을 눈어림으로 헤아려 본디 350여기 이상의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었으며, 무덤은 인근 자래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해와 같은 지원 덕분에 조사를 마쳤지만 350여기 이상으로 추정되는 유적의 5% 남짓한 조사만으로는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서 마뜩하지 않았다. 1980년대에 문화권 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문화재연구소(현 국가문화유산연구원)에 가야문화권개발계획에 따른 지원을 요청하였다. 담당자가 가야계 무덤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전북이 백제문화권역이 아니라 가야문화권역이라는 말이냐는 물음에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백제(공식적으로는 중서부 고도)문화권 개발 계획에 따른 지원을 해달라고 했더니 가야계 무덤이라고 하면서 백제문화권 예산을 달라고 하느냐고 되묻는다.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모르겠으니 아무 데서나 지원을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졸라서 1988년 12월에 발굴 조사를 할 수 있었다. 


건지리 유적을 조사한 1988년에는 전북대학교에 고고인류학과가 신설되었는데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학생이었다. 파릇파릇 여린 낭자들이 무덤을 조사한다 하니 섬뜩할 법도 한데 속내는 모르지만 당차게 흙을 파내고 붓으로 털고 그림도 그리는 것이 그저 대견하였다. 학교라는 특성상 더운 여름과 눈 덮인 겨울에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집을 떠나 시골에서 먹고 자는 생활이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봉지역의 그 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흙을 파내며 조사를 하면서 그럭저럭 잘 지냈다고 하는 것은 아마 나만의 착각일 것이다. 


이제 와 40년 가까운 옛날을 되씹는 것은 두락리와 유곡리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는데 건지리나 그 주변 일대의 고분군들이 잊힌 채로 남아있어 안타깝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유산도 좋고 관광자원으로 떼돈을 버는 것도 좋고, 문화유산이라는 것이 사회교육과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이란 이름으로 개님들 공원 조성의 빌미가 되는 것이 배가 아픈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 좋고 좋은 일이다. K-Culture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유산이 온누리에 퍼진다면 그 아니 좋겠는가. 


다만 가야고분군들만 모두 파 뒤집으면 잊힌 가야 문화와 역사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고대 문화의 찬란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까? 발굴조사라는 것이 레시피에 따라 분초를 따져가며 만드는 음식처럼 시간 단위로 할 수 있으며 발굴조사보고서가 틀로 찍어낸 다식처럼 규격화, 표준화되는 것이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식으로 가야문화와 역사가 재구성될 수 있고 우리 공동체의 기층 문화가 튼실하게 자랄 수 있다면 밤나무에 잉어 붕어가 주렁주렁 매달릴 법하다. 누군가 고고학이 어떻게 인문과학이냐고 묻는다. 높으신 분들이 만에 하나 정녕 그리 생각하실까 두려워 그저 웃고 말았다. 


오래잖아 건지리 무덤 안에서 졸던 그 여린 여학생들이 환갑을 맞는다. 그들이 꿈꾸며 살아온 여정이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탕수육과 짜장면으로 미안함을 대신하던 선생이, 가까운 분들이 소곤소곤 전주 시내 돈을 반만큼 긁어모았다던 괴수가 뒤늦게 돈까스 파티라도 벌리고 멋쩍은 웃음을 날려보고 싶다. 





윤덕향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오랜 시간 고고학 교수로 일했으며 전북대 박물관장, 호남고고학회장, 호남문화재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