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의 인연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하동에서 첫 번째 단독주택을 설계할 때 현장에서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내던 동네 청년이 한 명 있었다. 반백을 넘겼지만, 동네 젊은 청년이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집이 거의 완공될 무렵, 그는 하동십리벚꽃길 건너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언저리, 같이 한 번 가봅시다.”
콘크리트 포장이 울퉁불퉁한 길 끝, 마지막 집을 지나 도착한 곳은 녹차밭이었다. 그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에 집을 짓기로 했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동에서 두 번째 집짓기가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살던 부부였다. 한 사람은 대치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다른 한 사람은 중학교 교사였다. 비슷한 시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지치고 흔들리던 때, 쉬러 왔던 하동이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말이 귀촌이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어디 쉬운가. 그래서 부부는 ‘귀촌 인턴 기간’을 갖기로 했다. 일단 살아보고, 계속 살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 이곳에서의 삶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땅을 샀다. 몇 해가 더 흘러 건물을 지을 자금도 마련했다. 물론 절반은 은행의 몫이었지만 말이다. 우리 역시 첫 번째 집을 지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터라 망설임 없이 함께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동의 두 번째 단독주택 설계가 시작되었다.
부부는 누구보다 집짓기에 진심이었다.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고, 집을 가상으로 만들어보는 3D 프로그램까지 익혔다. 공부에 공부를 거듭하는 모습이 꼭 선생님들다웠다. 대지는 약 4미터의 레벨 차가 있는 땅이었다. 지리산 자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 이 풍경 앞에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집이 나서기보다, 일상이 풍경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면 충분했다. 이들의 삶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부부의 요구사항은 명확했다. 집은 크지 않아도 된다. 다만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만큼은 좋은 환경이었으면 한다. 칼로 자른 듯 반듯한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집, 구들이 있는 집, 그리고, 모든 건축주가 그렇듯 공사비는 최소한으로. 우리는 담백하고 효율적인 집을 목표로 했다. 물리적인 면적은 작지만, 창과 풍경을 통해 감각적인 면적이 밖으로 확장되도록 했다. 그렇게 지상 2층의, 작지만 작지 않은 집이 계획되었다.
건물의 형태는 지붕에 단 차이를 두어 거실의 층고를 높였다. 이 공간은 거실이자 아이들의 공부방이 되는 곳이었다. 주변 산세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전체 매스는 최대한 절제했다. 도시 외곽이나 농촌에서 건축을 하다 보면, 작업 가능한 기능공의 숙련도에 따라 건물의 완성도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반듯한 선과 면을 구현하면서도 전체 완성도를 안정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외장재로 외단열 시스템을 선택했다. 다만 이 마감은 외벽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지붕 마감재로 개발된 시스템은 아니다. 구조적으로 하자의 가능성을 안고 갈 수밖에 없고, 실제로 본사 기술팀에서도 지붕 적용은 지양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 부분을 부부에게 솔직히 설명하며 다른 마감재를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때 부부는 이렇게 말했다. “소장님, 우리는 이 집이 처음이자 마지막 집이에요. 생길 수 있는 문제는 우리가 안고 갈 수 있어요. 혹시… 최대한 정리해서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건물이라면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 집은 철저히 그들만을 위한 단독주택이었다. 삶의 방식과 각오가 분명하다면, 설계 역시 그 결정을 존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까지는 특별한 문제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물론 지속적인 관리가 전제되어야 하고, 설계자 입장에서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평면은 단순하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 구들방(부부 침실), 화장실, 다용도실이 있다. 켄틸레버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는 게스트룸 겸 좌식 공부방, 서재, 드레스룸, 화장실이 자리한다. 하동과 전주를 오가며 약 다섯 달간의 설계를 마치고, 공사를 준비하던 중 가장 큰 문제가 등장했다. 시공사 선정이었다. 시골 공사의 어려운 점은 믿고 맡길 시공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부부는 큰 결심을 한다. 직영공사였다. 이름만 직영이 아닌, 건축주가 직접 현장소장 역할을 맡는 방식이다. 그렇게 남편의 직업은 하나가 더 늘었다. 새벽에는 녹차밭에서, 낮에는 현장에서, 저녁에는 공부방 선생님으로 하루가 흘러갔다. 덩달아 우리도 바빠졌다. (직영공사와 도급공사의 차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이야기해보려 한다.)
기초 터파기 중, 급한 전화가 왔다. 현관 쪽을 파던 중 암반이 나와 더 이상 굴착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이었다. 역시 땅은 파봐야 안다. 결국 단면을 수정해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올 때 오르내림이 있는 구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있었던 이 부부는 집 안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다시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장소로 계획했다. 사랑은 결국 사랑으로 치유된다는 말처럼. 집을 짓는다는 것은 더 편리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더 편안해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편리를 따지면 관리받는 아파트가 훨씬 좋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리와 편안은 닮은 듯 다르다. 우리가 집을 이야기할 때 쓰는 house와 home의 차이처럼.
시간이 흘러, 부부가 여행에서 사 온 ‘2018’이라는 숫자 타일을 현관에 붙이며 약 7개월간의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집의 이름은 삼연재(然緣姸)라 지었다. '자연 연(然)' 자연과 어우러진 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인연 연(緣)' 화개로 귀촌하며 맺은 인연들에 대한 감사, '고울 연(姸)' 그 모든 시간이 곱게 쌓이기를. 연(緣)자가 세 번 깃든 집이다.
살다 보면 집은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부부에게서 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2층 욕실 이야기다. 밭일을 마치고 풍경을 바라보며 피로를 풀 수 있는 욕조가 있다. 다만 ‘바라본다’는 말에는 늘 반대 방향도 존재한다. 어느 날 새벽, 일하러 나서던 중 동네 어머님이 “야야, 니 엉덩이 다 보이더라”며 소녀처럼 웃으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적당히 가리며 반신욕을 즐긴다. 또 하나는 서재 창이다. 건축주는 2층 서재에서 찍은 풍경 사진을 자주 SNS에 올리는데, 지인이 왜 늘 같은 창 사진만 올리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건축주는 이렇게 답했다. “늘 같지 않아서.”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무릎을 탁 쳤다. 설계 초기에 떠올렸던 생각, ‘이 집의 일상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라는 문장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스스로를 한량이라 부르지만, 누구보다 바쁘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 2023년에는 이 집, 삼연재를 주제로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 『바람과 햇볕의 집』(저자 김토일)을 출판했다. 우리 사무실에서 북토크를 열기도 했고, 지금은 집을 지은 이후의 삶을 담은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집은 그렇게, 완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의 시간과 함께 천천히,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김헌 전북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했다. 2016년 전주에 일상건축사사무소를 설립. 어려운 담론을 떠나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고 그 일상을 담아내는 건축을 지향한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대상,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전북 건축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ㅣ그림같은 집을 짓고ㅣ
집을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하루를 견디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공간.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가장 솔직한 ‘나’가 됩니다. 새로운 연재 <그림 같은 집을 짓고>에서는 건축가의 시선을 통해 집(건축물)에 녹아있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새로운 건축물이 끊임없이 지어지지만 건축가의 이름보다는 회사 이름이 앞세워지는 환경. 우리 지역에도 참 좋은 건축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기획은 건축물을 기억하는 또 다른 통로, 그들의 이름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아름다운 집들. 건축가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