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집을 짓고   2026.2월호

“이곳이 좋았다”고 말해준다면
덕진공원 ‘맘껏하우스’


김헌 건축가·일상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건물을 짓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개인이 짓는 건물과 공공이 짓는 건물이다. 이번 글에서는 공공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전적으로 공공건축이란 관공서, 공공청사, 공원 등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관계되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모두의 건물’이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고, 동시에 다양한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공공건축의 가장 큰 의미는 개인의 공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공간적·심리적·감각적 경험을 건네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안에 담기는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다. 잘 만들어진 공공건축은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의식하지 못한 채로 새로운 감각과 즐거움을 준다.


공공건축의 실제 사용자는 지역 주민들이다. 최근에는 주민 참여가 비교적 활발해지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공공건축의 방향이 발주 기관 담당자의 판단에 따라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설계자의 고민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언젠가 그 건물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공공건축을 만들고자 애쓰는 담당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담당자의 의지와 설계자의 생각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비로소 공공건축은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덕진공원 안에 자리한 ‘맘껏 하우스’는 약 30년 전, 야외수영장이었던 공간이다. 이후 수영장은 사라졌고 공간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다시 한번 전주의 아이들이 모여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덕진공원은 전주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장소다. 소풍을 가고, 산책을 하고, 데이트를 하던 기억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꼭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와 어머니는 덕진연못에서 노를 젓는 보트를 타며 데이트를 하셨다고 한다. 어느 날은 그만 연못에 빠졌고, 섬 출신이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구해냈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 역시 어릴 적 이곳 야외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던 사진이 남아 있다. 당시 전주시의 유일한 야외수영장이었다고 기억한다.


지금은 딸 셋의 아빠가 되었다. 내 아이들이 새롭게 만들어진 이 공간에서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간다면, 프로그램은 바뀌었지만 같은 장소에서 세대가 기억을 공유하는 셈이 된다. 조금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의 정식 명칭은 ‘맘껏 숲 & 맘껏 하우스’이다. 유니세프와 전주시가 함께 발주한 프로젝트로, 아동친화도시 전주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하우스’가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시작에는 건축이 없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아이들이 외부에서 놀고 부모들은 편하게 기다릴 수 있으며, 아이들 역시 중간중간 쉴 수 있는 실내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전주를 잘 이해하는 설계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감사하게도 그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 프로젝트를 대하며 우리가 세운 원칙은 분명했다. 이곳은 건축이 중심이 되는 장소가 아니라 놀이와 공원, 조경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 ‘맘껏 하우스’는 하나의 건물이라기보다 큰 놀이 공간의 일부처럼 인식되길 바랐다. 놀이 공간을 만드는 건축적 장치는 ‘틈’과 ‘프레임’이라고 생각했다. 실내 공간은 물리적으로 꼭 필요한 만큼만 두고 대신 실내와 실외 사이의 공간, 즉 ‘틈’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각 실들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서로 분리된 형태로 배치했다. 이 틈들은 단순히 이동을 위한 통로이기도 하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시야와 소리만이 통과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정해진 동선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뛰어놀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박공 형태의 목재 프레임(글루램)은 건축의 전체 형태를 규정짓는 동시에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이 프레임은 그늘을 만들고 안전을 위한 난간이 되며, 놀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물이 된다. 그네나 집라인 같은 특정 놀이기구를 만드는 대신, 아이들이 마음껏 뛰고, 숨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이 프로젝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공공건축은 눈에 띄기보다 기억에 남아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공간을 지나던 누군가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좋았다”고 말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완공 이후, 이곳은 딸들과 함께 자주 찾는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또 다른 기억을 쌓아가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외부의 형태를 만들어주던 글루램 구조가 충분히 관리되지 못해 처음의 모습을 많이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함께 일했던 담당자에게 연락해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잘 정리해 나가겠다는 답을 들었다. 공공건축은 완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인 만큼 모두의 관심과 관리 속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이 공간 역시 전주의 아이들에게,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좋은 기억을 건네는 장소로 남기를 바란다.




김헌 전북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했다. 2016년 전주에 일상건축사사무소를 설립. 어려운 담론을 떠나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고 그 일상을 담아내는 건축을 지향한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대상,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전북 건축문화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