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여름, 간납대작은도서관 증축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다음 해 제안공모를 통해 삼천도서관을 개방형 창의도서관으로 탈바꿈시키고 학산숲속도서관 설계를 의뢰받았다. 이후 완산도서관의 자작자작 책공작소, 신흥고등학교 도서관 리모델링 등 여러 도서관 프로젝트를 거치며 건축가로서 품었던 일관된 생각은,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지역에 대한 고민을 담아 시민들의 일상이 맑게 고여 있는 ‘거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옥의 처마밑 공간을 닮은 간납대도서관, 맹꽁이 놀이터를 닮은 삼천도서관. 전주라는 도시의 결을 따라 작업을 이어오며 특히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나에게 건축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 프로젝트였다.
처음 이 프로젝트의 제안을 받았을 때, 발주처는 베이징에 있는 유명한 ‘리위안 도서관’을 예로 들며 숲속의 환상적인 도서관을 그려내길 원했다. 하지만 학산숲속도서관은 화려하고 환상적인 건축적 형태보다는 ‘관계’에 집중했다. 이 건물이 학산의 나무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맏내제의 풍경을 어떻게 내부로 끌어들일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숲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며 쉴 것인가가 설계의 시작점이었다. 풍경, 익숙함, 편안함, 재미, 감촉과 빛 등이 숲속에서 도서관이 가져야 할 재료였다.
맨 처음 방문한 대지는 숲속 오솔길 옆 6~7m 정도의 단차가 있고 나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앉아야 할 그런 곳이었다. 말 그대로 숲속에 지어야 할 도서관으로 기울어진 땅을 깎아 평평하게 만드는 것. 나무들을 해치며 자리를 잡는 일은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숲의 굴곡을 그대로 살려 나무들을 피해 기둥을 세우고, 세 개의 바닥을 0.9m의 단차를 두고 공중에 띄워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바닥을 앉혔다.
진입이 되는 큰 바닥과 아래로 내려가는 두 개의 바닥, 그리고 1.8m 올라가 떠 있는 바닥은 단순히 공간을 분리하는 기능을 넘어 이용객의 시선, 체험, 지형을 고민하여 동선의 흐름을 유도하는 중요한 장치가 되도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1.8m 아래로 보이는 두 개의 단은 강연장이 되고, 그 위로 올라가는 다락은 아이들을 위한 휴식공간이 되게 하였다. 계단식으로 구성된 내부는 때로는 시 낭독회의 무대가 되고, 1.8m의 높이 차이를 이용해 만든 다락방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지트가 되었고, 아래쪽 단은 맏내제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가 되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있는 날, 숲의 속삭임과 시인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날이면, 비로소 이 공간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도서관을 설계하며 가장 바랐던 것은 이곳을 찾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공통의 감각’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형이 만드는 입체적인 휴식공간을 통해 아래쪽 단에 머물며 웅덩이에 담기듯 차분해지거나, 다락으로 올라가 숲을 내려다보는 해방감을 맛보는 오두막의 경험은 어린 시절의 설렘을 소환하기를 바랐다. 나무널(시다슁글)로 마감된 외관을 지나 하얀 속살 내부로 들어서면 온통 목재로 둘러싸인 풍경을 마주하도록 하여 단순히 나무를 썼다는 인식을 넘어 포근한 둥지 속에 들어온 듯한 본능적인 안정감을 주고자 했다.

사실 도서관의 외관을 감싸고 있는 ‘시다슁글(나무널)’ 마감은 큰 도전이자 확신이었다. 비바람에 바래며 숲과 함께 늙어가는 이 재료는, 건축이 숲을 이기려 들지 않고 그저 한 그루의 고목처럼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했다. 숲길을 오르다 마주하는 오두막처럼 느끼도록, 방문객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과 숲을 느끼도록 하는 확신이었다.
내부에 들어서 만나는 맏내제의 풍경은 전면의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숲의 빛으로 확장되고 실내외의 벽을 무너뜨리며 창밖 나무가 내 곁에 서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도시의 소음 대신 시집 넘기는 소리와 숲의 정적만이 남는 ‘청각적 고요’를 공유하게 된다. 그러한 감각을 통해 숲속에 있음을 느끼도록 하였다.
도서관이 문을 연 후, 매일 같이 SNS라는 가상의 숲을 산책하며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기록을 마주한다. 건축가의 손을 떠난 공간이 대중의 감각과 만날 때 일어나는 변주는 놀라웠다. 뷰파인더에 담긴 것은 건물의 화려함이 아니라, 창을 통해 바라보는 숲과 맏내제의 평온함이었다. 게시물마다 적힌 "나만 알고 싶은 은신처",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공간" 같은 글귀들을 보며 그 평온함이 도시인들의 ‘결핍’을 어떻게 채워주고 있는지 확인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설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곳이 ‘시집도서관’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저 숲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작은 쉼터,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익숙한 방 하나를 만들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건물이 완공되고 그 공간에 시집들이 한 권 한 권 채워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전율을 느꼈다. 평온함과 익숙함을 지향했던 공간이, 인간의 언어 중 가장 깊고도 투명한 ‘시’를 만나는 순간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장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자연이 건네는 침묵의 언어를 받아 적으려 했던 노력이 결국 시인의 문장들과 맞닿아 있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감동이자 내 건축 인생의 새로운 지향점이 되었다. 숲이 시가 되는 순간, 건축은 그 시를 담는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그릇이 되었다.
나에게 도서관 프로젝트는 건축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정표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으로 받은 전북건축문화상과 전주시 예술상 수상이라는 격려 역시, 공공건축이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더 깊이 있게 안아줄 수 있는지 고민하라는 뜻으로 새기고 있다. 사무소의 이름인 '채담'의 이름처럼, 나는 앞으로도 공간에 이야기를 채우고 사람의 대화를 정성껏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건축의 진정한 완성은 건물이 완공되는 시점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비로소 숲의 일부가 되어 익숙하게 쉴 때 이루어진다. 숲이 시가 되고, 그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 혹은 타인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풍경. 지형과 숲, 맏내제를 오롯이 느끼는 그 익숙하고도 평온한 기적이 학산숲속시집도서관에서 매일같이 반복되기를 소망한다.
육광돈 전주신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했다. 현재 전주에서 건축사사무소 채담을 운영하고 있다. 삼천도서관 리모델링, 노송동 천사마을 자활복합공간, 신흥고등학교 신정문, 삼례 청소년복합문화시설 ‘꿈이공’, 부안시외버스터미널 등 시민의 삶과 밀착된 공공건축 작업을 지속해 왔으며, 2025년 전주시 예술상(건축 부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