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집을 짓고   2026.4월호

‘꿈이공[꾸:미공]’에서 삶을 건축하다
완주창의예술미래공간-아이들의 꿈을 짓는 마을


육광돈 건축사사무소 채담 대표




단 12명의 축구부원으로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감동 실화를 썼던 영화 〈슈팅걸스〉의 실제 배경이었던 완주 삼례여중, 축구부 소녀들의 함성이 떠난 자리에는 100m에 달하는 긴 본관동과 잡풀 섞인 운동장의 고요함만이 남아 있었다. 설계 공모를 통해 폐교된 시골 학교를 다시 살린다는 것은 지역의 기억을 보존하는 동시에, 떠나가는 아이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꿈을 짓는 터전’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당선 후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해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학교라는 딱딱한 외피를 벗기고, 아이들이 스스로 일궈가는 ‘작은 자치 마을’을 이 땅에 심는 과정이자 ‘학생들을 위한 공간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기존의 학교 건축은 효율적인 관리와 통제를 위해 일직선의 긴 복도와 규격화된 교실을 갖는다. 이러한 구조는 아이들의 개별적인 감성보다는 집단의 질서를 우선시하며, 때로는 상상력을 가두는 물리적인 벽이 되기도 한다. 늘 불편하고 권위적이고 단조로운 복도를 아이들이 오가는 활기찬 ‘실내 가로(街路)’로 시골 마을이 길을 따라 자연 발생적으로 집들이 들어서듯, 중앙의 길을 중심으로 꿈과 삶과 쉼과 온(溫)의 네 가지 영역이 마을의 집들처럼 옹기종기 군집하게 했다. 주요 프로그램실의 남향배치와 실내외를 잇는 사이 마당은 자연과 교감하며 아이들이 맘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1층의 동아리방과 카페는 마을의 사랑방이 되고, 2층의 메이커 스페이스와 요리실은 공방처럼 자리 잡아 시골 마을 특유의 소박하고도 따뜻한 정서를 공간의 리듬으로 바꾸어놓았다.  


이 마을의 주인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하는 청소년들이다. 나는 이들이 단순히 공간을 소비하는 사용자가 아니라, 스스로 질서를 만드는 자치의 주역이 되길 바랐다. 1층과 2층을 잇는 거대한 ‘그랜드 계단’은 마을의 광장이 되어 서로 다른 세대가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며 공존을 배운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유연한 ‘꾸러미’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아이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삶의 주도권을 연습하는 실험의 장이다. 계단 밑 하부 공간, 벽면의 포켓 공간, 비밀통로 등은 아이들에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선물 꾸러미 같은 공간이길 바랬다.  


설계 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아빠였다. 건축가이기 이전에 부모의 마음으로, 천진난만했던 삼례중앙초 아이들, 생기발랄한 봉서중 아이들, 그리고 진지하고 사려 깊었던 고산고 아이들과 함께 모형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던 참여 설계의 시간은 설계도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아이들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건축해 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으리라 믿는다. 건축가의 독단적인 생각보다는 모두의 꿈을 실현하려 노력했던 그 시간이 이 공간을 비로소 ‘우리 모두의 마을’로 만들었다. 


언제나 그곳에 가면 2층 요리 교실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한 빵 향기가 가득하다. 강당에 울려 퍼지는 서툰 악기 소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소소리 카페’의 소소한 이야기 소리와 더불어 높이 솟은 굴뚝 공간의 깊이를 느끼고 측창으로 쏟아지는 빛의 향연은 일상의 위로와 쉼을 선사한다. 결국 버려진 폐교를 살려낸 이 작업은 단순히 건축가의 작품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그곳에서 매일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아이들의 현재진행형 마을을 만드는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건축가다. 하루하루 일상에 젖어 그냥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길을 짓는 건축가가 될 수 있다. 완주 삼례의 터전에서 아이들의 활기찬 일상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매일같이 반복되기를, 그리하여 모두의 가슴 속에 ‘꿈이공’이자 ‘꾸미공’이 가득한 삶을 살아내었으면 한다. 오늘을 사는 나, 그리고 여러분도 역시 그러하길...




육광돈 전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북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했다. 지역건축가로 전주에서 건축사사무소 채담을 운영하고 있으며 노송동 천사마을 자활복합공간, 완주 휴시네마 리모델링, 군산 째보선창 예술콘텐츠스테이션, 군산이정아 헤어샵, 부안 행안초 본관동 개축, 부안시외버스터미널, 임실 운암 코티지683, 운암 하루카페 등 삶과 밀착된 다양한 설계와 인테리어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으며, 2025년 학산숲속시집도서관으로 전주시 예술상(건축 부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