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집을 짓고   2026.6월호

고향으로 기억될, 이 집과 이 풍경 
전주 'SIDO HOUSE'


권혁성 스퀘어랩건축사사무소 대표




처음 만난 자리에서 건축주는 가족의 생활 방식과 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직접 정리한 계획서를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면적이나 평수보다 가족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집, 거실에 음식 냄새가 오래 남지 않는 구조, 모악산 풍경을 바라보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건축주는 아주 구체적인 생활의 장면들을 이야기했고, 나는 그것들을 공간의 언어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자랄 수 있는 집을 원한다는 말이 특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전주 평화동 끝자락, 논과 밭이 남아 있는 땅 위에 계획된 이 집은 단순히 아파트를 떠나 짓는 단독주택이 아니었다. 주말부부로 살아가던 아버지, 언젠가 꼭 자신만의 집을 짓고 싶었던 어머니, 그리고 아직은 밤을 무서워해 부모의 방 가까이에 있고 싶어 하던 어린 아이들. 이 가족에게 집은 단순한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 집은 외부로 과하게 개방되기보다 내부로 시선과 생활이 모이는 구조로 계획했다. 'ㄷ'자 형태로 배치된 건물 사이에는 작은 중정을 두었는데, 단순한 비움의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뛰놀고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또 하나의 생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외부에서는 비교적 절제된 인상을 주지만 내부로 들어오면 긴 복도 끝으로 자연광이 흐르고, 거실 창 너머로는 계절에 따라 색이 변하는 논과 멀리 모악산 풍경이 펼쳐진다.


설계 과정은 1년 정도 걸렸다. 가족의 생활 방식에 맞춰 공간은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 갔다. 계단의 위치가 달라지고, 주방은 다시 계획되었으며, 다락방의 필요성도 끝까지 고민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에 대한 가족의 생각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선명해졌다는 점이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성토와 다짐 작업이 이루어졌다. 원래 논이었던 땅을 건축이 가능한 대지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가족들은 이곳에서의 삶을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부부와 아이들은 자주 현장을 찾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공사 중인 집 안을 둘러보았고, 부부는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공간 안에서 앞으로의 삶을 상상했다. 설계자와 시공자, 가족 모두가 함께 아이들의 새집을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실과 주방 앞에는 낮은 담장을 계획해 논과 하늘의 풍경이 실내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했고, 도로 쪽 담장에는 레드로빈을 식재해 주변 풍경과 부드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외부 공간은 잔디 식재를 중심으로 계획했는데, 관리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걱정에도 남편은 직접 잔디를 관리하겠다고 했고, 지금도 꾸준히 마당을 가꾸고 있다. 아이들은 거실과 마당을 뛰어다니고, 부부는 창밖의 논 풍경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간이 일상이 되었다. 특히 설계 과정에서 여러 번 수정했던 주방은 지금 가족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아내의 생활 방식과 시선을 반영하고자 했던 공간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장소를 넘어 가족의 시간이 모이는 중심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좋은 집이란 결국 완벽한 형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나는 건축이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거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건축주가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 아이들이 거실을 뛰어다니는 순간,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하는 저녁식사 같은 평범한 장면들이 결국 집의 진짜 모습일 것이다.


좋은 집은 결국 혼자 만들어낼 수 없다고 믿는다. SIDO HOUSE는 각자의 욕심을 조금씩 덜어내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만들어졌던 프로젝트였다. 이곳은 아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아이들에게도 이 집과 이 풍경이 자연스럽게 ‘고향’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집을 떠올리면 완성된 건물의 형태보다 함께 고민하며 조율했던 시간들이 먼저 생각난다. 나에게 이 프로젝트는 좋은 집 한 채를 넘어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감사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도 이 집 안에서 가족의 시간이 천천히 쌓여가기를 바란다.




권혁성 2016년 전주 스퀘어랩건축사사무소 개소 이후, 건축설계와 감리 분야에서 꾸준히 신뢰를 쌓아왔다. 녹색건축인증 전문가, 교육시설 사전기획 전문가, 부동산권리분석사 등 다양한 전문 자격을 보유. 특히 가족의 삶의 방식과 개성을 담아내는 공간으로써 단독주택 설계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