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진공원 가운데, 지금의 연화정도서관이 있기 전에는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었습니다. ‘전통건축’ 설계과업을 위해 먼저 기존 건축물의 철거가 이뤄졌습니다. 이때만 해도 ‘1동의 한옥을 설계하면 되겠다’ 생각했던 저는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여러 난관을 만났습니다. 첫 번째는 전망공간과 휴게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최초 1동으로 계획했던 건물은 2동으로 나누어 다시 계획했습니다. 현대건축을 전공했기에 ‘전망 공간’이라 하면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적어도 2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공간이 2동으로 분리되니 2층의 지붕과 1층의 지붕이 어딘가 부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주변의 연못과도 이질감이 들었습니다. 전통건축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고, 두 지붕은 나란히 같은 높이로 맞췄습니다. 1층에서 약간의 단차를 두어 전망공간과 휴게공간을 나누었는데, 그 단차는 단 45cm입니다. 전망공간이 되는 누마루는 도서관보다 고작 45cm 높게 설계됐죠. “이 작은 높이에서 전망이 될까?” 저조차도 걱정했지만 연화정은 이 작은 차이로 완전히 다른 풍경을 선물합니다. 그 위에 직접 서봐야만 차이를 느낄 수 있죠. 수십 미터 높이로 압도하는 현대건축과 비교하면 45cm의 전망은 아마 가장 한국적인 전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마루에서 한가지 더 눈여겨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속 기둥입니다. 누마루의 기둥 위에 서 있으면 마치 나룻배를 타고 노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나무기둥을 물속에 시공할수 없어, 석재 기둥을 먼저 물속에 박고 그 위에 나무기둥을 시공했습니다. 여기에는 현대 건축 기법인 마이크로파일 공법을 가미했습니다. 쇠파이프를 암반에 정착시켜 침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죠. 전통건축에 현대건축 기술을 적용한 사례로, 아마 전국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다음 고민은 지붕의 형태였습니다. 연화정도서관으로 들어올 땐 대문을 지나야 합니다. 이 대문의 지붕은 박공지붕입니다. 지붕 물매(경사)가 앞뒤로만 되어있죠. 도서관의 지붕은 박공과 모임지붕을 합한 팔짝지붕 형태입니다. 연못 가장자리를 산책하며 연화정을 조망할 때, 지루하지 않도록 이동하는 위치마다 건물 형태가 다양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화장실 하나에도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호수 한가운데 화장실을 만드는 일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오수 처리 배관을 육지와 연결하는 문제부터 난관이었죠. 막힐 위험이나 파손을 대비해 다리 밑에 2개의 배관을 매달았습니다.
덕진공원은 전주 사람들의 추억이 머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안마당과 후원에는 특히 그 기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숨어있습니다. 해답은 ‘나무’에서 찾았습니다. 건물을 철거하고 남겨진 나무 대부분은 훼손을 최소화했습니다. 오래된 나무들이 자리를 지키는 덕에 연화정은 갑자기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곳에 머물던 시간과 기억들을 공유하는 장소가 됩니다. 과거의 추억을 가진 분들이 나무를 보고 기억을 이어갈수 있길 바랐습니다. 이곳의 나무는 또 다른 역할을 합니다. 여름날 앞마당이 햇빛에 달궈지면 후원에 있는 시원한 공기가 대류현상으로 누마루와 통로를 지나 앞마당으로 이동합니다. 이때 도서관 내부로 시원한 바람이 통하며 상쾌한 바람을 선사합니다. 현대건축에서는 좀처럼 적용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이런 시도들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잠시 빌려온 것입니다.
간단할 것 같았던 설계가 만만치 않게 다가올 때면 선조들의 지혜를 헤아리며 답을 찾았습니다. 연화정도서관은 그 지혜 앞에서 제 능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배우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래도 전통과 현대가 고요히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유유히 서있는 연화정도서관을 보며 작은 위안을 얻습니다.
임채엽
군산에서 ‘태권브이 건축사사무소’를 20년 넘게 이끌어 왔다. 군산대 건축구조학 석사, 전북대 한국건축사 석사 과정을 거쳐 명지대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건축의 큰 틀 안에서 기술, 역사, 과학, 인문학적 영역까지 폭넓은 세계를 다지며 자신의 삶에 대한 책 『초자신감』을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