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없는 귀한 장면을 마주한 순간
지난달에 이어 이번 기획에서도 공동체를 주목했습니다. 글로는 다 전하지 못했지만, 공동체의 의미를 깨닫게 된 몇 가지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진안 봉곡마을은 읍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도착하는 작고 고요한 동네입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점심시간이 되어 마을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주방은 밥 짓는 소리로 분주하고 방에는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처음 보는 기자들을 옆집 손녀딸 대하듯 정답게 맞아주셨습니다. 할머님들과 짧은 수다를 떨고, 먹음직스럽게 차려주신 상에 마주앉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죠. ‘식구(食口)’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먹을 식(食)’과 ‘입 구(口)’. ‘함께 밥을 먹는 사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을에 도착한지 몇 시간 만에 이곳의 식구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마을에 있는 시간만큼은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구나..!’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한 공동체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이장님과의 인터뷰 중 일어난 일입니다. 막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이장님의 벨소리가 울렸습니다. 어느 집 마당에 작은 불이 났다는 전화였습니다. 이장님은 인터뷰를 뒤로하고 달려 나가신 후 30분쯤 지나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큰불로 번지지 않고 잘 해결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인터뷰를 이어갔습니다. 도시에서 불이 났다면 119를 찾았을 텐데, 이 마을에서는 119보다도 이웃을 먼저 찾습니다. 참 놀라운(?) 광경입니다. 공동체란 이렇듯 특별한 게 아니라 이웃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고다인 기자
농악에서 떠올린 영화 한 편
상쇠 이명훈 명인이 고창농악 보유자로 지정된 기사를 정리하며 영화 한 편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왓챠상을 수상한 영화 <공작새>입니다. 고창농악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요즘 문화저널에서 주목하고 있는 ‘공동체’의 의미와도 맞닿아있는 작품입니다.
<공작새>는 평생 농악을 해온 아버지와 절연한 채 서울로 올라간 트랜스젠더 왁킹댄서가, 아버지의 부고를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오며 시작됩니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추모굿을 치르고 받은 유산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겠다는 설정부터가 꽤 파격적입니다. 영화 속 지명은 ‘호창’이지만, 고창의 익숙한 공간들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고창읍성에서 왁킹을 추기도 하고, 전수관 곳곳 고창농악보존회 식구들의 얼굴도 카메오처럼 스쳐 지나가고요.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실제 스트릿 댄서로, 일정 기간 전수관에 머물며 농악을 배웠다고 합니다. 2024년에는 고창농악보존회의 꽃대림축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고, 관객과의 대화도 열렸습니다.
사실 농악, 농촌 문화에 대해 막연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찔찔 울며 <공작새>를 보고 농악은 본래 포용성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 장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 위에서, 연희자와 관객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고, 마을 사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함께 그 판에 들어가서 즐긴다는 점에서요. 영화는 현재 왓챠와 웨이브 등 OTT를 통해 관람할 수 있습니다. 농악을 새롭게 바라보는 하나의 계기가 될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