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아가게 하는 기억
지난 〈인문의 숲〉에서 만난 신경숙 작가와의 시간은 ‘기억’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기억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됐을까”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하며,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부터 인생의 강렬한 기억들, 아주 일상적인 기억과 유독 오래 남아있는 기억까지. 많은 기억이 스쳐갔습니다. 『외딴방』의 주인공처럼, 열여섯 무렵을 떠올려보면 친구들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납니다. 이제는 얼굴과 이름만 남아 ‘기억’에 의지하지 않으면 영영 사라져버릴 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작가는 “오래된 기억, 그러니까 어린 시절 봤던 크고 작은 기억들이 현재의 내가 겪는 고통이나 갈등의 어둠을 비춰주는 빛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기억에는 그만큼 우리 삶을 지탱하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아프고 슬픈 기억조차도 결국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용기가 생깁니다.
이번 강연을 기다리며 출간 30주년을 기념해 나온 『외딴방』 개정판을 사서 읽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작가는 책에 이 한 문장을 적어주었습니다. ‘새꿈꾸셔요’. 지나온 기억과 새로운 꿈을 함께 안고 나아가면 앞으로 더 잘 나아갈 수 있겠죠. 여러분을 나아가게 하는 기억, 그리고 꿈은 무엇인가요?
고다인 기자
아쉬움 끝에 만난 영화 <회생>
이번 연극 포럼의 화제 중 하나는 지역의 비평문화였습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전북에는 전문 평론가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비평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저 역시 짧은 공연 리뷰 하나를 쓰는 데에도 온종일 고민하고는 합니다. 분명 좋은 지점과 아쉽다고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는데도, 나만 이렇게 느낀 것은 아닐지 걱정하다 결국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평은 단순히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일이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고 언어로 설득하는 과정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8편의 작품을 보았습니다. 어쩐지 보고 싶은 작품이 많지 않아 예년처럼 많이 챙겨보지는 못했습니다. 국제경쟁 대상작 <서서히 사라지는 밤>은 개인적으로 크게 인상 깊지는 않았습니다. 한국경쟁 대상작 <흘려보낸 여름>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관객 평이 대체로 좋지 않습니다.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은 다큐멘터리에 집중되어 있는데요. 여러모로 프로그램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해였던 것 같습니다.
아쉬움 속에서 발견한 하나의 작품은 김면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회생>입니다. 법무사인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아들. 빚으로 고통받으며 개인회생을 신청하러 오는 사람들, 스님인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베트남전 참전군인이자 고엽제 피해자인 할아버지까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삶과 빚의 굴레가 이어지지만 영화는 뜻밖에도 자기연민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교적인 어떤 의연함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언뜻 우울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부자의 대화는 때로 만담처럼 웃기기도 합니다. 극장에서 꼭 다시 보고 싶은데, 개봉할지 모르겠습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