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서해 앞바다 고군산군도가 아직 뱃길만 허락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때 나는 선유도의 한 어부를 주인공 삼아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다. 60대 중후반의 그는 검게 그을려 주름진 얼굴 안쪽으로 신산스런 가족의 이력을 품고 살았는데, 사연인즉 이러했다.
1960년대 즈음 서해 북쪽에서 조업하던 그의 큰형은 납북되었다가 몇 달 후 송환되었지만 당시의 서슬 퍼런 반공법이 그의 가족을 가만두지 않았다. 모진 고문과 옥살이 끝에 마음의 병을 얻은 큰형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분단과 이념이 삼킨 큰형과 달리 그의 작은형은 폭풍을 머금은 거센 파도가 삼켰다. 어부의 가족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상처의 근원이었다.
바다가 지긋지긋해진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 섬을 떠났다. 날품팔이에서 공장노동자로, 자그마한 회사의 외판원으로 옮겨가며 그는 서울에서 아득바득 돈을 벌었다. 다시 섬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그 저주스런 공간에는 자신의 뼈를 묻을 수 없노라고 그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 모은 종잣돈으로 그가 종로에 자그마한 가구점을 열었을 때, 그는 그곳이 그의 아내와 외동아들이 함께 할 보금자리가 되어주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IMF 사태가 한반도를 덮쳤고, 거기에 직격탄을 맞은 그는 홀로 고향 섬에 돌아왔다. 한편 손아래 동생은 선유도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집 앞 어선 위에서 뛰어놀다 익사한 어린 아들 때문에 동생은 한동안 폐인으로 살았다. 낙향을 결심한 그에게는 홀로 남은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명목이 있었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알았다. 그의 삶은 실패했고, 이제 이 사람을 품어줄 공간은 그가 나고 자란 바로 이곳 섬임을.
“우리 집 막내가 여동생이었다오. 얼굴도 갸름하고 예뻐서 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 시집 잘 가서 자식 낳고 그렇게 예쁘게 늙어갈 줄 알았는데 마흔 줄에 암으로 허망하게 떠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선유도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누이의 무덤 위 풀을 뜯으며 나이 든 어부는 눈가를 훔쳤다. 섬이란 그런 곳인가. 삶과 죽음이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혼재하는 고독과 고립의 땅. 그때 거센 파도 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마따요시 에이끼의 소설 <돼지의 보복>은 일본 변방의 오랜 섬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류큐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역사를 간직해 오던 이 섬나라는 일찌감치 근대화의 문을 연 일본 본토에 의해 강제 복속 당했다. 19세기 말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에는 미군이 점령군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일본 본토와는 역사와 문화, 심지어 인종마저 다른 오키나와인들은 그렇게 20세기를 ‘아웃사이더’의 자의식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1947년 이곳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마따요시 에이끼는 소위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중편소설 <돼지의 보복>은 마따요시 에이끼의 대표작이자 1996년 그에게 아쿠타가와상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본시 아쿠타가와 상은 일본 문단 신인 작가의 훌륭한 작품을 매해 한 편씩 골라 수상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마따요시 에이끼는 우리 나이 셈으로 쉰 살에 이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그가 오키나와 문단에 데뷔하고도 20년이 지나서 벌어진 일이니, 어찌 보면 일본도 한국만큼이나 ‘중앙과 변방’의 문화 차별의식이 만만찮음을 방증해 주는 것 아닐까. 여하튼 생각의 곁가지를 잠시 접고 일단 책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스무 살의 류큐대학교 학생 쇼오끼찌는 ‘달빛 해변’이라는 오키나와 바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 돼지 한 마리가 난입한다. 도로 한복판에 전복된 트럭 화물칸에서 탈출한 돼지였다. 바에서 일하는 세 명의 호스티스 미요, 와까꼬, 요오꼬는 깜짝 놀란다. ‘너무 놀라면 넋이 떨어진다’는 오키나와 민간신앙이 있는데, 이 넋 빠진 세 여인은 쇼오끼찌를 붙잡고 “넋을 다시 집어넣어 줘”라며 간절하게 부탁한다. 쇼오끼찌는 답한다. “우리 동네 우따끼에 가서 빌면 액운이 떨어질지도 몰라요.”
‘우따끼’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모시는 일종의 신전(神殿)인데 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쇼오끼찌의 제안에 솔깃해진 세 여인은 가게 문을 닫고 다음 날 쇼오끼찌와 함께 그의 고향 마지야섬으로 향한다. 이곳 우따끼에서 그들을 덮친 ‘돼지의 저주’를 씻어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쇼오끼찌에게는 다른 속셈도 있었다. 12년 전 마지야섬에서 객사한 자신의 아버지 풍장(風葬) 자리를 찾아 유골을 수습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문중 어른들의 마뜩잖은 채근에 시달리던 쇼오끼찌에게 마침 마지야섬 동행자들이 생긴 셈이었다.
그러나 섬은 쇼오끼찌의 귀향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날은 잔뜩 흐린데다 숙소로 자리 잡은 섬 민박집에서는 자꾸 요상한 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마지야섬에서의 2박 3일. 과연 쇼오끼찌는 아버지의 유골을 잘 수습하여 문중 묘에 모시고, 아울러 ‘달빛 해변’ 호스티스 세 명의 떨어진 넋까지 다시 찾아줄 수 있을까.
<돼지의 보복>을 읽다 보면 내가 마치 그 섬에 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키나와 특유의 지리와 생태 환경,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와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오랜 시간 전승되어 온 민간신앙 그리고 일본 본토와 미국에 의해 ‘빼앗긴 땅’으로 전락한 그들의 비극적 운명 의식까지. 소위 ‘오키나와의 내면’이 작품 곳곳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행간 속에서 독자들은 오키나와의 파도 소리를 듣고,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섬 특유 식물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그럼으로써 되려 생의 의지가 어느 뭍보다 더 활활 불타오르는 공간. 애써 외면하고 싶어도 끝내 돌아가 화해할 수밖에 없는 안개 너머 미로와 같은 곳.
‘체험하는 문학’으로서의 섬을 만끽하고 싶다면, 마따요시 에이끼의 소설 <돼지의 보복>을 읽어볼 일이다. 이 작품을 끌어안고 설움과 한의 파도 속으로 풍덩 빠져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