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설 연휴를 목전에 두고, 나는 왼쪽 고관절 봉합수술을 받았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 전신마취가 깬 회복실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몸뚱어리 제대로 간수 못한 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지긴 했지만, 덕분에 취업 후 13년 넘게 누릴 수 없었던 꿀 같은 휴식을 두 달 반이나 가질 수 있었다. 고관절 한쪽 내주고 얻은 이 천금 같은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 어차피 목발 신세이기에 어디 쏘다니지도 못할 처지였으므로, 그간 쌓아두고 읽지 못했던 책이나 왕창 읽어두자는 쪽으로 계획을 잡았다.
우선, 오랜 시간 묵은 숙제처럼 여겨오던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 열 권에 손을 댔다. 박경리의 <토지>는 매해 네 권씩 5년에 걸쳐 섭렵하자는 장기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두 작품 모두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 모처럼의 열독 프로젝트는 순항을 거듭했다. 직장 일을 핑계로 십여 년 삐걱대던 내 독서 드라이브의 엔진이 제법 속력을 내게 된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그것’ 한 번 실행해 볼까?”
‘그것’이란 바로 도스토옙스키 완전 정복. 20대 때부터 막연히 꿈꿔왔던 그 도전을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며 나는 마음속에 배수진을 쳤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펴 들었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첫 소설 말이다. 그 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까지 약 반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도스토옙스키 전 작품을 다 독파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1천 명? 2천 명? 아니, 넉넉하게 잡아서 약 5천 명 정도라고 치자. 여하튼 그 수치를 감안해도 5천만 인구의 대한민국에서 나는 0.01%의 집단에 포함되는 것 아닌가!’
그런 유치한 숫자놀음에 꽤 오랜 기간 히히대다가 지난 2020년 어느 날, 나는 또 하나의 엉뚱한 계획을 품어보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전 작품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독파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그 독서의 과정을 글로 정리해 보면 어떨까.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총 14회에 걸쳐 이곳 <문화저널> 지면에 ‘이휘현의 도스토옙스키 읽기’를 연재하게 된 연원이다. 졸고였을지언정, 그 14개월의 과정은 내 맘속에 제법 신나고 뿌듯한 감정으로 채워져 있다. 2021년은 마침 도스토옙스키 탄생 2백 주년이었기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었지만 나는 내 일련의 작업에 꽤 의미 부여도 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열네 달의 대장정을 마치고 나니 또 하나의 계획이 스멀스멀 머리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병 수준이 아닌가 싶다가도, 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획을 멈추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세운 세 번째 계획은 바로 ‘도스토옙스키 문학기행’. ‘그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주요 무대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의 문학 정취를 기행문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해 보는 거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문제적 인간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 터질 거야! 나는 바야흐로 자타공인 대한민국 도스토옙스키 최고 전문가이자 권위자로 등극하는 거다. 흐하하!!’
그러나 좋은 기획도 실행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그저 공염불에 불과할 뿐. 팬데믹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핑계 삼아 ‘언젠가는 그곳에 갈 수 있겠지!’를 되뇌기만 하던 어느 날, 나는 중고 서점에서 눈에 번쩍 뜨이는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약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니 우리나라에 이런 책이 있었다고??’
놀라움과 허탈과 질투심이 정확히 삼등분되어 내 심장을 쥐어짰다. 책의 제목은 <매핑 도스토옙스키>. 설마 했는데, 후다닥 책을 펼쳐보니 내 짐작이 맞았다. 도스토옙스키 문학기행이었던 것이다. 발행 연도는 2019년.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의 원고들이 어느 신문에 연재되고, 그 후 보기 좋게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까지 끝낸 이 책을 두고 그렇게 허황한 기획에 심취해 있었으니, 이것 참 뒷북도 이런 뒷북이 있을까….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게으름과 안일함이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내 뒤통수를 날린 것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매핑 도스토옙스키>의 저자 석영중은 고려대학교 러시아문학과 교수이다. TV나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미 대한민국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몇 개를 한국어로 직접 번역 소개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도스토옙스키 분석 저서를 여러 권 보유하고 있으니, 그런 사람이 러시아 현지를 몇 차례 다녀오며 쓴 문학기행에 무얼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어느새 놀라움은 빠지고 허탈과 질투심이 양분되어 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으로 기대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점잖은 교수님이 쓴 글인데 대중적인 책들보다는 좀 재미가 떨어지지 않겠어? 만약 내가 썼다면 대중매체 종사자의 감각으로 좀 더 재밌게 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매핑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자 내 마음속 허탈과 질투심은 어느새 휘발되어 버리고, 그 안에 경탄의 감정만 가득 싹트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야, 이렇게 알찬 정보를, 이렇게나 쉽고 재밌게 풀어내다니!’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주요 무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가 시베리아 유형의 끔찍한 체험을 토로했던 옴스크 지역, 유배지에서 풀려나 사병으로 근무했던 마을 세미팔라틴스크, 그의 첫 아내 이사예바와의 신혼 보금자리가 여전히 잘 보전되어 있는 소도시 트베리, 그리고 작가의 출생지이자 불행한 유년의 기억과 그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빈민병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스크바까지.
책은 술술 잘 읽혔다. 석영중 교수의 발품 판 흔적이 현장감 살린 생생한 문장으로 책 속에서 팔딱대고 있었던 것이다. 간만에 멋진 기행문을 하나 읽었다 싶어 며칠 전 아내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그러자 아내 왈, “아니 도스토옙스키 소설도 읽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누가 이런 기행문까지 읽어?”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아내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래 그게 엄연한 현실이지. 그럼에도 전쟁 포화에 휩싸이기 전의 러시아 이곳저곳 도스토옙스키 흔적을 후비고 다닌 석영중 교수의 노고에만은 힘찬 박수를…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