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영화 <마들렌>을 보고 나서의 일이다. 20여 년 전 풋풋했던 조인성이 가난하지만 건실하고 또 책을 많이 읽는 청년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그가 짝사랑하는 여자친구(역시나 지금보다 훨씬 풋풋했던 신민아)에게 읽어준 책이 바로 폴 오스터 작품 <달의 궁전>이었다. 일단 외모는 빼고, 가난하지만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면에서 영화의 주인공과 공통 분모를 찾은 나는, 당시 극장 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이 작품에 제법 매료되었었다.
청춘의 달은 기울어가고, 대책 없는 앞날은 그저 막막하기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읽기만큼은 부지런했던 당시의 내 빈궁한 처지에, 나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을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에 나는 조금 안도하지 않았을까. 당연한 수순처럼 서점 안을 기웃거리다가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집어 든 나는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 책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행복한 독서. 나는 폴 오스터의 이 소설에 영화 <마들렌>보다 더 크게 매료되었다. 우선 첫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어쩐지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본 다음, 거기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폴 오스터, <달의 궁전>, 5쪽)
주인공 마르코 스탠리 포그는 가진 게 없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열한 살 때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그는 숙부의 집에 맡겨졌다. 괴팍한 성격의 숙부 빅터도 마르코가 어른이 될 무렵 죽고 말았다. 대신 꽤 많은 양의 책을 조카에게 남겨주었다. 심성 고운 마르코는 이 책들을 야금야금 팔아 빈궁한 자신의 생계는 물론 가난한 이웃들의 처지까지 보살피는 신공을 발휘하는데, 그러다가 키티 우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바람둥이 친부가 키운 딸이었다. 마르코와 키티는 우연히 괴짜 화가 토머스 에핑의 삶을 기록하는 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마르코는 세상과 단절하고 은둔형 예술가로 살아가는 노인 에핑에게 점점 경도되어 가고, 그러다가 어느 날 놀라운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제법 두꺼운 분량의 이 소설에 나는 푹 빠져버렸고, 그 후 눈에 띄는 폴 오스터의 책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다. 물론 그의 책이 다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어떤 책은 흥미로웠고 또 어떤 책은 난해하고 따분했다. 그 사이 앞길이 구만리 같던 내 삶에 볕이 들어 백수 신세를 면하게 된 이후에도, 나의 폴 오스터 도서 구입은 계속되었다. 하나 잘 읽지 않았다. 내 가난했던 청춘을 상기시키는 매개로서 폴 오스터의 책은 내 집 한 귀퉁이에서 쌓여갔지만, 그뿐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내가 폴 오스터의 <겨울 일기>를 읽기로 마음먹은 것은 몇 주 전의 일이었다.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우연히 폴 오스터의 부고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폴 오스터가 죽었다고?’ 둔기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듯 머리가 띵했다. 내 젊은 날 쌓아두었던 내밀한 성채 하나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 잠시 접어두고 있던 시간에 대한 감각이, 누구든 소멸의 절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실존의 절대 명제가, 내 심장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그렇다. 폴 오스터는 단순히 한 명의 유명 작가가 아니라, 내 청춘의 한 시절을 오롯이 버티게 해준 하나의 상징이자 든든한 배경이었던 것이다. 그의 죽음이 내 무뎌진 감각을 일깨웠다. 나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쌓아두고 방치해두었던 폴 오스터의 책더미 앞에 섰다. 스무 권의 도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죽은 폴 오스터처럼. ‘나 혼자만의 애도 기간을 갖자. 그 시간 동안 함께 할 물건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책 한 권을 빼어 들었다.
<겨울 일기(Winter Journal)>는 2011년 폴 오스터가 예순네 살이 되었을 때 발표한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인생의 ‘겨울’에 진입했다고 느낀 그는 자신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펼쳐 보이기로 결심했다. 다만 연대기 순의 따분한(?) 구성 대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자유롭게 오가며 써내려갔다. 폴 오스터 버전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시점은 ‘나’가 아닌 2인칭 ‘당신’을 택했다. 나는 그것이 폴 오스터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실화지만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아련한 기억들 속에는 시간과 죽음에 관한 예리한 감각이 한 겨울의 차가운 공기처럼 그의 문장들을 감싸고 있다.
“오늘 아침 당신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늦든 빠르든 언젠가 한평생이 끝나게 되리라는 단 한 가지 필연적인 사실만 제외하고는 다 부수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폴 오스터, <겨울 일기>, 12쪽)
세 살 반 때 뉴어크의 백화점에서 친구와 뛰어놀다 왼쪽 뺨이 못에 찔려 얼굴 반쪽이 찢긴 큰 부상 이후, 60년간 그의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상처들은 폴 오스터가 과거의 기억으로 파고드는 좋은 통로가 되어주었다. 그에게 자신의 몸은 살아있는 자서전이었던 것이다.
불행한 가족사. 그를 거쳐 간 많은 여자들.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좌절 그리고 성공에의 환희. 이런저런 사건사고들. 차마 부끄러워 쉽사리 밝힐 수 없었던 내밀한 비밀들까지. 폴 오스터의 60여 년 삶이 폭풍우 같은 이야기로 몰아친다. 하지만 문장은 담백하다. 거기엔 작가적 상상력이 개입할 틈이 없다. 그는 오롯이 ‘폴 오스터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듯하다. 그 진정성이 이 책이 가진 힘의 원천이다.
<겨울 일기> 출간 후 13년이 지나 그는 세상을 떠났다. 2024년 4월 30일 몰(歿). 향년 77세. 그가 기록하지 못한 13년의 마지막 계절은 누가 채워줄까. 폴 오스터는 소멸했고, 대신 그가 남긴 수십 권의 책이 남았다. 이제 그 빈 공간은 남은 자들이 가진 기억의 몫으로 들어차겠지. <겨울 일기>의 마지막 문장이 자꾸만 내 귓가에 맴돈다.
“문이 닫혔다. 또 다른 문이 열렸다.
당신은 인생의 겨울로 들어섰다.”
(위의 책, 247쪽)
나에게도 서늘한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내 몸의 감각이 예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