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현의 숨은 책 좋은 책      2024.8월호

나의 인질은 올림픽입니다!

오쿠데 히데오, ‘올림픽의 몸값’ 



이휘현 KBS전주 PD





내 기억 속 첫 올림픽의 시공간은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영화음악 전설 존 윌리엄스의 웅장한 LA올림픽 주제가가 귓가에 맴돌고, 곧이어 레슬링 그레꼬로만형에서 첫 금메달을 안긴 국가대표 김원기가 국기 게양식 단상에 오른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우리의 자랑스런 태극용사 김원기의 얼굴이 눈부신 금메달과 오버랩하던 순간의 먹먹함. 일가친척들 모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차오르는 감동을 애써 억누르고 있을 때, 말석에서 누가 볼세라 눈가를 몰래 찍어대던 애국 소년이 바로 나였다. 국제 화상 통화로 “우리 이쁜 아그 뭐 먹고 싶냐?”라는 부모의 물음에 “떡볶이가 겁나게 먹고 잡네”라며 능청 떨던 잠자리 안경의 궁사 서향순 선수는 물론이거니와, 꺾인 허리 부여잡고 금메달 단상에 올라 펑펑 울어대던 레슬링 자유형의 유인탁 선수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절, 국가대표 선수의 영광은 곧 국가의 영광이었고, 국가의 영광은 곧 국민의 영광이었다. K팝도, 영화 <기생충>도, 손흥민도 없던 그 시절, 올림픽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뽕의 최전선이었다.


상황이 그러했을진대 1988년의 추억은 말해 무엇하랴. 88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은 곧 88서울올림픽인 그야말로 ‘물아일체’의 시대 아니었던가. ‘88’은 세상 어디든 통하는 만사형통의 수식어였다. 88담배는 물론 88오토바이, 88수퍼마켓, 심지어 88다방까지. 그 시절 한국인의 마음은 상모 쓴 호돌이의 빅토리 수신호에 맞춰 정말 ‘팔팔’하게 끓어올랐었다.


그런데 이웃 나라 일본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야기다. 1945년 패전을 딛고 한국전쟁 특수를 통해 재건에 성공한 일본이 세계만방에 신흥 경제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한 게 바로 1964년 도쿄올림픽이었다. 당시 마지막 성화 주자가 1945년 원폭 투하 날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청년이었다는 건 매우 상징적이다. 그들은 이제 패전의 치욕 따윈 없고 오로지 앞날의 무궁한 영광만이 함께 하리라는 확신을 선포한 것이다. 그 후 일본은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전까지 수십 년간 실로 엄청난 번영을 누렸다. 1964년 도쿄올림픽은 그야말로 일본 경제 리즈 시절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즈음 이런 영광스러운 국제 스포츠 행사를 코앞에 두고, 국가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며 엄청난 몸값을 요구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도 그 인질이라는 게 다름 아닌 ‘도쿄올림픽’ 그 자체였다면 당신은 이 사건을 믿겠는가?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어디 소설에나 있을 법한 이야긴데, 설마 이런 황당한 얘기를 누가 소설로나 쓰겠어?” 


만약 당신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라고. 1964년 일본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이 황당한 이야기를 소설로 쓴 사람은 있다. 작가는 <공중그네>로 유명한 오쿠다 히데오. 소설명은 <올림픽의 몸값>(2009)이다.


소설의 주인공 시마자키 구니오는 개천에서 난 용이다. 아니, 용이 될 뻔했던 청년이다. 도쿄에서 좀 떨어진 농촌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열심히 공부해 도쿄대에 진학한 수재였다. 외모도 준수해서 그는 마을의 자랑거리로 통했다. 구니오는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까지 진학하며 용이 되어 승천하는 꿈을 꿨으나, 현실은 그를 빈한한 농토의 미꾸라지로 발목 잡았다. 막노동판에서 돈 벌어 구니오의 학자금을 보태곤 하던 그의 이복형이 마약 중독자로 살다가 끝내 사망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은 구니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흙수저는 죽을 때까지 흙수저라는 잔혹한 운명의 현실감각 앞에서 그는 주저앉았다. 형은 그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았는데, 세상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방방 떠 있었다. 구니오의 분노는 폭발하고 만다. 


‘공부는 해서 무엇하나! 내가 공부하는 경제학?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제학이란 말인가?’


이복형의 장례식을 치른 그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다. 형의 일터였던 공사판에 취직해 일하는 척하다가 다량의 다이너마이트를 손에 넣는다. 그는 이 폭발물을 쥐고 테러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목표는 단 하나. 도쿄올림픽을 보이콧 하는 것!


소설의 주요 인물은 구니오 외에 두 명 더 있다. 테러리스트의 정체를 쫓는 경시청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 그리고 구니오의 도쿄대 경제학과 동기이자 고위 경찰 간부의 아들인 스가 다다시. 


시마자키 구니오가 일본 경제 번영의 그늘에 가린 하류 계급의 비참한 굴레를 상징한다면, 금수저 집안에 태어나 일류 대학 졸업 후 폼나는 스포츠카 타고 여자 연예인과 노닥거리는 스가 다다시는 일본 상류 계급 흥청망청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만 법대에 진학해 고위공무원이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방송국 피디로 취업해 날라리 시티 보이 행세를 하는 게 집안에서 삐딱선을 탄 스가 다다시의 유일한 도발이 아니었을까. 대학 동기지만 극명히 대비되는 두 인생 사이에 경시청 경찰 오치아이 마사오가 자리하고 있다. 신흥 아파트 단지 입주를 앞두고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푼 그는 당시 도쿄 소시민의 전형을 보여준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따박따박 월급 잘 모아 중산층에 편입하려는 모범 시민인 것이다. 


이 상·중·하 인생들이 여러 사건과 우연으로 엮이면서 이야기는 파국으로 향해간다. 일본 경제 번영의 축포와도 같았던 1964년 도쿄올림픽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비극은, 기실 전후 일본의 자본주의가 수많은 ‘구니오 가족’의 피와 땀과 눈물을 즈려밟고 세운 잔인한 왕국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묘하게도 24년 후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시공간과 겹친다. 아마 그 시절 한국판 구니오 가족들이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신음하며 무수히 스러져갔을 것이다. 당시 서울 달동네에서 국가 이미지 제고 및 환경 미화를 이유로 강제 철거당한 이주민이 1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 영화 <상계동 올림픽>(1988)은 그 기록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거나 세월은 무감히 흘러갔고, 어느새 그들의 절망과 고통은 잊힌 지 오래다. 이제 올림픽의 몸값은 오로지 국뽕의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세상사가 대개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