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작가 위화(余華)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허삼관 매혈기>일 것이다.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중국 시골마을 평범한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이야기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과 희생, 용서와 화해라는 세계 보편의 숭고한 감정이 출렁거린다. 그래서 읽다 보면 가슴 깊은 곳에 뜨거운 감정이 차오르고 끝내 눈가가 촉촉해지는 경험을 한다.
<인생(원제 : 살아간다는 것)>도 좋은 소설이다. 중국 현대 격동기를 꿋꿋이 버티며 살아가는 민초의 생명력이 심장을 울린다.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이 겪는 몰락, 고통,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어느 특정한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공감의 순간들. 그 아릿한 심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끝내 긍정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인생 내공으로 꽃피는 순간, 우리는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작품만으로도 소설가 위화는 매우 따뜻하고 순한, 그러면서도 그 안에 유머를 한 움큼 장착한 휴머니스트로 우리에게 인식된다. 하지만 그것은 위화의 작품세계를 반만 들여다본 꼴이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작품이 <허삼관 매혈기>나 <인생>처럼 온기를 품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위화가 위의 두 소설을 발표하기 전, 그러니까 1980년대 중국 현대 문학 ‘전위파’라는 일군의 젊은 작가 중 한 명으로 분류되던 시절의 그가 발표한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생경한 분위기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20대의 패기 넘치던 청년작가 위화의 또 다른 면모. 그 안에는 죽음과 폭력이라는 서늘한 광기가 묵직한 안개처럼 감돌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의 한국 내 인기에 힘입어 이미 20여 년 전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나, 위화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낯선 작품집. 나는 이 지면을 통해 그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책 제목은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世事如烟)>. 이제 그 어둡고 눅눅한 안개 마을로 들어가 보자.
산강과 산봉 형제는 몸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한 집에서 각자 아내와 아이 하나씩을 부양하며 산다. 어느 날 형 산강의 어린 아들 피피가 동생 산봉의 아기를 죽인다. 소년이 살해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기는 피피에게 안겨 마당에 패대기쳐진 후 아주 짧은 생을 마치고 말았다. 피피는 그것이 사촌동생과 행한 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근친 살해는 피피의 해맑은 동심과 환상이 어우러져 현실의 비극으로 잉태된 것이었다.
자식을 잃은 산봉은 조카 피피에게 살의를 느낀다. 산봉의 형인 산강이 그런 동생을 다독이려고 애쓴다. 그렇게 조용히 이 비극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산강이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동생 산봉은 기어코 자신의 조카 피피를 마당에 내동댕이쳐 죽이고 만다. 졸지에 대가 끊겨버린 두 형제. 아들의 시신을 수습한 형 산강은 잠시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 산봉을 집 앞 큰 나무 기둥에 묶어 살해한다. 이 과정을 지켜본 산봉의 아내는 길길이 뛰며 남편을 죽인 시아주버니 산강에게 앙갚음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는 힘이 없다. 동생을 죽인 산강은 허둥지둥 읍내로 피신하지만 곧 무장 경찰에게 붙잡히고 만다.
한 달 후.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산봉의 아내는 설레는 맘 안고 동네 사찰 옆 풀밭으로 향한다. 그날 시아주버니 산강의 공개 처형식이 거행되기 때문이었다. 아기-피피-산봉-산강으로 이어지던 복수의 고리는, 하지만 산봉의 아내가 산강의 처형 장면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실 산강이 당국에 붙잡혀 있는 동안 산봉의 아내는 자신이 산강의 아내인 척 꾸며 처형 후 그의 시신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다.
“그녀는 의사들이 산강을 어떻게 토막낼까를 머리 속으로 상상해보았다. 그녀의 입꼬리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73쪽)
이 잔혹한 복수의 연쇄극은 산봉 아내의 승리로 마무리될까? 아니다. 반전이 하나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어이없는 반전이다. 어쩌면 너무 놀라 헛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그게 뭔지 궁금하다고? 이 작품을 접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스포일러는 삼가겠다. 양해 바란다.
소설집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에는 총 네 편의 중편소설이 실려 있다. 그 중 <강가에서 생긴 일>이라는 작품 또한 앞에서 소개한 <어떤 현실>만큼 센 소설이다. 한 마을에서 잔혹한 살인이 연이어 벌어진다.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동네의 한 광인은 연쇄살인 혐의로 포착될 강력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지만 정신병을 이유로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고삐 풀린 미치광이. 이대로 두면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결국 사건을 담당했던 베테랑 형사 마철은 살인이 벌어졌던 현장에서 비무장 상태의 광인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살인으로 연쇄살인이 마무리된다. 마철의 행동은 사적 제재를 통한 정의 구현일까 아니면 단순한 분노의 표출일까. 이 이야기 또한 엉뚱한 종착점으로 향한다. 어이없다는 반응이 절로 나오기 마련인데, 그게 또 묘한 감흥을 선사한다. 이 소설집이 가진 또렷한 개성일 것이다.
우리가 종종 쓰는 비속어 중 “삑사리 났다”는 말이 있다. 영화감독 박찬욱과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일컬어 누군가는 ‘삑사리’ 미학의 정수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삑사리라는 단어에도 이제 어떤 예술적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뜻일 게다.
완벽한 듯하지만 허술하고, 근엄한 듯하지만 유머러스하고, 진지한 듯하지만 얄팍하고, 잔혹한 듯하지만 무언가 인간적인, 그리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정서를 환기시키는 작품의 개성들. 20대 후반 청년 작가 시절의 위화가 써내려간 작품들에서 우리는 엉뚱하게도 그 삑사리 미학을 제법 만끽할 수 있다. 위에 소개하지 않은 나머지 두 편의 중편소설(<옛 사랑 이야기>와 표제작 <인생사는 연기와 같다>) 또한 삑사리 정서가 장착되어 있는데, <허삼관 매혈기>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느끼고 싶다면, 이 생소한 소설집을 집어 들기에 주저마시길. 놀라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