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소외받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공감한다. 하지만 내가 장애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장애인이 없기 때문에 장애 관련 담론은 뒤로 미루어진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 개선은 그들의 목소리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이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바꾸기 위해서는 절대다수의 힘찬 목소리가 필요하다.
4월 20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이를 기념하여 장애에 대한 고전적인 관념을 뒤집는 책들을 소개하니, 장애 관련 담론에 함께 뛰어들어보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위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번 '권하는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둘 중 어떤 삶이 더 낫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장애를 개인이 가진 특별한 개성으로 바라보기도 하며, 장애인 스스로도 이를 당연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 다다서재 | 2023
저자인 가와우치는 '전맹 미술 관람자' 친구 시라토리와 함께 전시를 보러 다닌다. 가와우치가 작품을 말로 설명하면 시라토리는 그 느낌을 받아들인다. 시라토리와 함께 '대화'하며 작품을 보는 것은 가와우치에게 새로운 전시 감상법을 제시하고,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뒤흔든다. 문화저널 2023년 12월호에서 '배리어프리, 문화예술의 경계를 지우다'라는 제목으로 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를 다룬 바 있으니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사이보그가 되다
김원영, 김초엽 | 사계절 | 2021
SF소설 작가인 김초엽과 변호사 김원영의 대담집이다. 이들은 청각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장애 당사자들이다. 사이보그는 SF세계관에서 완벽한 신체를 가진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기술과 결합하여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 사이보그'는 미래 담론에서 중심이 되지 못한다. 현재의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고통과 장벽을 해결하는 일을 ‘언젠가’ 기술이 발전할 미래로 유예한다. 김초엽과 김원영은 몸과 과학기술의 만남, 그 안에서 다양한 신체와 환경을 가진 개인의 삶을 주목한다.
우리 성장속도는 시속 10km
소성현 외 5인 | 기역 | 2018
장애 아동의 학습권은 종종 소외받는다.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여기며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매체에서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 책은 여섯 명의 특수교사의 특수교육 현장 에세이다. 장애학생 합창단 이야기, 장애학생에 대한 차별과 편견 이야기, 지적장애인의 자립과 미래, 장애학생들의 진로, 장애를 가진 가족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특수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학생 감소에도 특수교육대상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전북도교육청 또한 특수학교 신규 설립을 예고하고 있다. 특수교육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 이 책은 새로운 공감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의존을 배우다
에바 페더 키테이 | 반비 | 2023
저자는 철학자이자 중증 인지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이다. 그는 전통 철학이 인간의 개념을 '이성'적 사고를 가진 존재로 정의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인지장애가 있는 나의 딸은 인간 밖의 존재인가? 자신이 평생을 연구한 철학이 사랑하는 딸의 존재를 부정하자 그는 '의존'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한다. 독립하지 못하고 의존하는 이들은 도태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의존하며 살고, 의존을 통해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며 의존하는 삶의 중요성을 전한다.
산책을 듣는 시간
정은 | 사계절 | 2018
소설의 주인공 수지의 모어는 수화다. 그에게 청각장애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입술의 모양과 손짓, 눈빛으로 대화하는 일상을 아름답게 여겼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라고, 나는 축복 받은 거라고. 하지만 세상에 나가 사회를 마주하며 장애의 불편함에 대해 체감하고, 인공 와우 수술은 그를 '침묵의 세계'에서 '소음의 세계'로 이끌었다. 낯선 세상에 적응해나가는 수지는 이제 눈이나 귀가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사라 헨드렌 | 김영사 | 2023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너무나 커다랗고, 행동이 느려지는 어르신들에게 세상은 너무나 빠르다. 신체 일부가 잠시만 불편해도 세상이 내 몸에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장애가 있지 않더라도 아이를 키우면서, 어르신을 돌보면서, 다쳐서 몸이 불편할 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경험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다운증후군 아이를 키우면서 '몸'과 '세상'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이미 '지어진 세계'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다른 몸'의 삶들이 있다. 저자는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