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는 책   2024.7월호

같은 언어로 말해서 다행이야


문득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시집을 뒤적거리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의 목소리를 듣다가. 반짝거리는 문장들을 마주치면 그날의 일기에 옮겨 적고는 한다. 최근에는 아이유의 <겨울잠>을 듣다 일기장을 꺼냈다. '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별 띄운 여름 한 컵 따라다', '빼곡한 가을 한 장 접어다', '새하얀 겨울 한 숨 속에다'와 같은 가사가 주는 울림은 사계절을 오롯이 겪는 한국인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을 테다. 한국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것에 감사해지는 순간들이다. 


언어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 그 사회 속에서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의사소통'이란 단순히 말하고 듣는 것을 지나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까지를 이른다. 이번 권하는 책에서는 아름다운 순우리말, 우리말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는 한자, 감으로 선택해서 사용하던 유의어, 인터넷을 떠도는 '밈'까지. 우리의 언어를 감싸고 있는 다양한 면면을 살피는 사람들의 책을 만난다.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김경수 | 필로소픽 | 2024


스마트폰과 삶을 분리할 수 없는 시대, 인터넷 '밈'은 현대인에게 하나의 언어와도 같다. 밈을 모르면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모두가 웃을 때 홀로 눈만 깜박거리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목차 전체가 밈으로 되어 있어 목차만 읽어도 인터넷 중독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이 책은 인터넷 밈의 정의와 기원부터 가장 최근의 밈까지 그 계보를 그린다. 한편으로는 밈이 현대인의 삶의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지 인문학적으로 풀어낸다.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야인시대 밈 이미지에 대한 매체적 연구>가 책의 근간이다.






하루 한문 공부

임자헌 | 유유 | 2023


문해력 논란의 중심이었던 '심심한 사과', '금일' 등의 단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자어라는 것. 한자 교육이 필수처럼 여겨졌던 과거와는 달리 입시와 취업에 유리한 외국어, C언어 등이 대세가 되며 한자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한자는 우리말을 배울 때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 겉으로 표기되지는 않지만 우리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한문 공부'는 하루 한 줄, 한문의 의미를 따라가며 일상에서 자주 쓰지만 막연하게만 알았던 한자어를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술 잡지 기자로 일하던 중 우연히 한학의 매력에 빠져 한문번역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임자헌 번역가가 썼다.







우리말 어원 사전

조항범 | 태학사 | 2022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을 뜻하는 '부랴부랴'가 사실 '불이야! 불이야!'의 줄임말이었단다. 이처럼 우리가 쓰는 말들은 지난 수십,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변해왔다. 『우리말 어원 사전』은 국어학자 조항범 교수가 우리 '말'들의 탄생과 소멸,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각 낱말의 어원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친족 낱말의 어원까지 이해를 확장한다. 그 과정에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시대상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영어 단어는 어원까지 외워가며 공부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우리말 어원으로 그 시선을 옮겨보자. 








단어의 집 

안희연 | 한겨레출판 | 2021


안희연 시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의 문을 열어보는 쪽으로 나의 시가 움직였으면 좋겠다"(빚진 마음의 문장,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현대문학)고 말했었다. 심지어 산문집 『단어의 집』에서는 스스로를 시인이 아닌 '단어 생활자'라 소개한다. 잔나비걸상, 선망선, 적산온도, 내력벽, 탕종 등 그의 수첩에는 일상에서 채집한 단어들로 가득하다. 저자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비(非) 시적이고 비(非) 문학적인 단어들로 가장 문학적인 사유의 통로를 여는 그의 일상을 만난다.






낱말의 장면들 

민바람 글, 신혜림 사진 | 서사원 | 2023


불안장애와 공황 증세에 시달리던 저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몸과 마음을 달래던 중 순우리말 사전을 선물 받았다. 사전 속에 담긴 낯선 낱말들에서 용기와 위안을 얻었고, 그 순간들을 산문으로 옮겼다. '알쭌한', '풀쳐생각', '곰비임비' 등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통해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여전히 세상을 걷는 걸음걸이가 어색한 나는 자전거 위에서 생각한다. 지금의 모습도 알쭌한(온전한) 나이고, 나는 나인 채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우리말 어감 사전 

안상순 | 유유 | 2021


30년 넘도록 사전을 만든 안상순 국어학자가 엮은 일종의 '유의어 사전'이다. 우리는 비슷한 단어들을 문맥에 따라 적절히 '감'으로 선택하여 사용한다. 가령 '내정' 뒤에는 '간섭'이 와야 하고 '지나친' 뒤에는 '간섭'과 '참견' 모두 올 수 있다는 것을 감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제대로 선택한 것이 맞는지 알쏭달쏭한 느낌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는 군중과 대중과 민중, 구별과 구분, 비평과 평론, 감정과 정서와 감성 등 미묘하게 뜻이 다른 비슷한 단어들의 의미를 좀 더 섬세하게 밝히며 '감'으로 알고 있던 우리말의 쓰임을 명확하게 짚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