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게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간다.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꿈을 이루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그 주인공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때로는 영영 공감할 수 없는 그 이야기들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입시, 취업, 결혼, 직장 생활, 노후 준비... 책장을 덮으면 기다리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10월의 권하는 책에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소설들을 소개한다. 여느 소설 같지 않게 마치 우리의 일상을 CCTV로 찍어 옮긴 듯한 이야기들. 주인공들은 딱히 어떤 것을 이뤄내지도, 성취하지도 않은 채 덤덤하게 일상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소설 속 이야기들을 읽어보자.
달까지 가자
장류진 | 창비 | 2021
이름난 기업에 입사하고도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 직장동료가 함께 '코인열차'를 탑승하며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다. 가상화폐의 한 종류인 이더리움에 투자하며 '떡락'과 '떡상'을 반복하는 이들. 과연 일확천금의 미래가 있는 '달'까지 갈 수 있을까? 근로소득만으로는 결혼도, 집도 살 수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각종 투자와 재태크로 눈을 돌리고 있는 현재의 청년 세대를 잘 나타낸 소설이다. 판교 IT회사 직장인 출신으로 직장인의 현실을 사실감 있게 표현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장류진 작가가 썼다.
알바생 자르기
장강명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
"과장님, 제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4대 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았더라고요. 알바몬에서 상담을 받아 보니까 그게 불법이라며, 이런 경우에 보험취득신고 미이행으로 회사를 고소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요. 회사가 부담되지 않았던 4대 보험료만큼을 저에게 따로 주실 수 없을까요?" 미디어 속 악역은 일반적으로 사장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묘하게 알바생도 얄밉다. 알바생이 요구하는 것은 노동법상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알바생 혜미를 해고하려는 사장과 중간 직원인 은영, 알바생 혜미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
가키야 미우 | 흐름출판 | 20212
28살 외동딸 도모미를 둔 주인공 지카코는 문득 딸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서른 전 도모미를 결혼시키고 싶은 지카코는 부모 대리 맞선(!)에 나간다. 자녀들이 아닌 부모들끼리 만나 당사자 직업, 연봉, 시부모 합가 여부 등이 적힌 서류를 들고 손익을 따지는 부모 대리 맞선은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손익 관계를 따져 만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잘 나타낸다. 일본 소설이지만 한국인이 읽기에도 공감할 부분이 많으며, 비혼과 비출산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현대사회를 엿볼 수 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송희구 | 서삼독 | 2024
직장 생활과 부동산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하이퍼리얼리즘 소설. 사원부터 부장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1권 김 부장, 2권 정대리와 권 사원, 3권 송 과장의 이야기를 다룬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작가가 개인적으로 연재하던 글이 부동산 카페를 비롯,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며 출간되었다. 웹툰으로 제작되어 네이버에서 연재 중이며,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남궁인 외 7인 | 문학동네 | 2024
제목부터 현대인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주변에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은가. 이 소설집은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며 결성된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소설 앤솔러지다.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 등 8명의 작가가 프리랜서 아나운서, 프랜차이즈 영업직원 등의 사실적인 노동과 삶의 현장을 다룬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
최진영 외 20인 | 은행나무 | 2024
기사가 아닌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연재되었던 문화일보 기획 시리즈가 종료된 후 앤솔러지 형태로 다시 탄생되었다. 한국 현대 문학을 이끄는 21인의 작가들이 거지방, 고물가, 오픈런, 번아웃 등 다양한 키워드의 초단편 소설로 한국 사회를 살핀다. 작가들이 선택한 대부분의 키워드가 부정적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소설 속 작은 선행을 베풀고, 함께 연대하는 인물들을 통해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