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또 한 살을 먹는구나! 나이가 드는 일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숨부터 나올지도 모른다. 정신머리는 그대로인데 나이만 먹어간다고 자조하기도, 괜스레 떡국 먹기를 거부하며 아직은 아니라고 우겨보기도 한다. 행정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자 한 살 젊어져서 좋다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나이, 그 숫자가 뭐라고 하나 바뀔 때마다 마음이 들썩거린다. 주어진 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철 좀 들으라'는 소리를 들은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젊게 좀 살으라'는 말이 들려온다. 여기 나이듦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새해를 앞두고 싱숭생숭한 마음이 든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이 책들과 함께라면 '나이듦'이 썩 괜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 포레스트북스 | 2024
매해 열리는 어르신 센류 공모전의 걸작선 여든여덟 수를 추려 담았다. 센류는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를 말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고 난 이들만이 쓸 수 있는 풍자와 해학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분명 유쾌한 이야기들인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어쩐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 가슴의 먹먹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대상 작품을 맛보기로 소개한다. 연상이 / 내 취향인데 / 이제 없어 (야마다 요우, 92세)
어쩌면 괜찮은 나이
헤르만 헤세 | 프시케의 숲 | 2017
나이 듦에 대한 헤르만 헤세의 글을 모아놓은 선집이다. 젊은 시절 여러 위기를 겪으며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헤세가 써 내려간 노년의 이야기는 매우 깊다. '사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란 없다. 모두 예전에 적당한 크기로 이미 경험했던 것들이다. ··· 그럼에도 그것은 새롭고 진정한 경험이다.' 나이가 들고 알 수 없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면, 혹 불안하다면. 헤세가 '어쩌면 괜찮은 나이'일 것이라고 말해주는 이 책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딘 리클스 | 을유문화사 | 2024
나이 드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삶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오늘이 나의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이라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는 것도 잠시. 멍하니 앉아 소셜미디어 속 쇼츠를 내리며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시간이 무제한으로 주어진다면 정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철학과 현대 물리학을 연구하는 딘 리클스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깨우쳐 주고, 그 소중한 시간을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전한다.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하정 | 좋은 여름 | 2019
저자가 우연히 유럽의 버스 안에서 덴마크 여자 쥴리를 만나 그녀의 집에서 함께 며칠을 지내며 시작된 이야기다. 다음 해 여름, 쥴리네 가족을 다시 찾아 한 달간 함께 살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제목 속 '귀여운 할머니'는 73세 은발 똑단발의 주얼리 디자이너인 아네뜨, 쥴리의 엄마다. 일상을 다정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아네뜨의 모습에서 내 노년의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출간 5주년을 맞아 아네뜨가 만든 소품 등으로 서울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었다고.
스무살
김연수 | 문학동네 | 2000
스무살은 참 이상한 나이다. 성인이 된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별거 없다. 주변 어른들은 청춘을 귀하게 보내라 하는데 막상 당사자가 되면 혼란스럽기만 하다. <스무살>은 김연수 소설가의 첫 소설집으로, 스무살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찰이 담겨있다. 절판되었다가 15년 만에 다시 펴냈다. "스무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살 이후가 온다." 나이가 들어 다시 스무살을 되돌아보며 읽어도 좋겠다.
나이듦에 대하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 사회평론 아카데미 | 2024
대체 나이가 든다는 건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그 질문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13명의 교수가 대답한다. ‘나이듦’이라는 주제로 쓴 13편의 담론을 담고 있다. 문학, 언어, 철학, 역사학, 미술사학 등 각 분야의 학자들의 ‘나이듦’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 삶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역사와 회화에 나타난 나이듦’, ‘고전에서 찾는 나이듦’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지금, 나이듦’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