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영화 <소공녀>(연출 전고은, 2018)에서 주인공 '미소'가 내뱉는 이 한마디는 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미소는 담뱃값이 오르자 집을 포기하는 캐릭터다.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하룻밤씩 묵는 일종의 노숙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와 위스키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하는 선택. 누군가는 미소가 철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의 끝없이 치솟는 집값을 바라보는 오늘의 청년들에게 미소의 이야기는 결코 먼 얘기만은 아니다.
사람에게 '집'이란 과연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월세인지, 전세인지, 자가인지. 아파트의 브랜드는 무엇인지. 집은 사람을 계급화하는 불편한 상징이 되었고, 그럼에도 휴식처이자 피난처, 취미 생활을 즐기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활발해진 환경에서는 집이 곧 일터가 되었다. 이번 권하는 책에서는 ‘집’에 대해 묻는다. 시집과 장편소설, 그리고 비문학 책들까지 함께 엮어 다양한 시선으로 집이라는 공간을 바라보고자 한다.

자기만의 집
전경린 | 다산책방 | 2025
전경린의 장편소설 『엄마의 집』이 출간 18년 만에 개정판 『자기만의 집』으로 세상에 나왔다. 주인공 '호은'은 스물한 살의 대학생이다. 어느 날 이복 여동생 '승지'를 맡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아빠. 호은과 승지는 엄마 '윤선'의 집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고, 그곳에서 호은은 자신만의 미래를 조금씩 그려나간다. 이 소설에서의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고난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면서 일상을 가꾸어나가는 자기만의 공간이다.

집
민음사 편집부 | 민음사 | 2024
민음사의 인문잡지 『한편』이 집에 대한 글들을 담아냈다. 불문학자 김영욱의 「장자크 루소, 집 없는 아이」, 철학자 이지선의 「21세기 우주인의 귀향」, 환경사회학자 박진영의 「나의 깨끗한 집 만들기」, 사회학자 육주원의 「이슬람 사원 짓기」, 인류학자 오은정의 「후쿠시마의 주민들」, 경제학자 조원희의 「전세 제도의 미래」,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의 「집이 없어, 하지만!」,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이재임의 「쪽방의 장례식」, 호스피스 병원 의사 김호성의 「마지막 둥지를 찾아서」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집'에 대한 단상을 볼 수 있다.

탈주택
야마모토 리켄, 나카 도시하루 | 안그라픽스 | 2025
일본의 두 건축가가 현재의 '핵가족 중심 거주 형태'를 비판하며, 건축을 통해 새로운 주거 방식을 모색하는 책이다. 부제는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현대 사회 지역사회가 단절되고 공동체가 사라져 가는 이유가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닌 건축과 주거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짚는다. 이웃과의 관계 형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는 주거 형태라는 것. 책에서 두 사람은 현대판 사랑방 '시키이'(閾)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이쪽과 저쪽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을 모색한다.

집 없는 집
여태천 | 민음사 | 2025
등단 25년을 맞이한 여태천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집은 개인의 편안한 휴식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시인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동안 떨칠 수 없는 '몸'이자 '이름'이다. 1부에 모인 시들 ‘생각의 집’, ‘별들의 집’, ‘겨울의 집’ 등에서 집은 구체적인 삶의 면면보다 희미하고 추상적인 형상으로 제시된다. 2부의 집은 무겁고 구체적이며 지리멸렬한 먹고사는 일, ‘생활’을 자각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시들 끝에 3부에서는 16편의 '포비아' 연작 시가 고해성사처럼 이어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해천 | 자음과 모음 | 2011
한국의 '아파트'를 통해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 역사 전반을 고찰하는 책이다. 1부는 픽션이다. 문학의 형태로 까마귀의 시선에서 1936년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을, 군인과 건축가의 시선에서 1962년 마포아파트 등을 풀어낸다. 2부에서는 건조한 톤으로 1부의 원문이 된 내용들을 서술한다. 마포아파트, 한강맨션, 강남의 아파트 단지, 신도시 분당과 용인의 모델하우스 등이다. 엄태화 감독의 동명의 영화도 이 책을 보고 만들어졌다고 한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의 인문학 총서 '하이브리드 총서'의 일환으로 세상에 나왔다.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장민지 | 서해문집 | 2021
여성이자, 청년이자,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해 왔으며, 혼자 살아가는 이들 열두 명에게서 들은 ‘집’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집에 관한 기존 담론은 주로 가족과 함께 사는 중산층, 특히 남성 가장의 시선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이나 가족 부양을 위해 집을 떠났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의 여성 청년들은 대학 진학과 더 많은 경험을 위해 독립적인 삶을 선택한다. ‘자취하는 여성’을 둘러싼 사회의 섹슈얼리티적 시선에 분노와 불안을 느끼면서도, 가부장적 가족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경험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