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는 책   2025.9월호

거장의 옆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칭송받는 사람들의 옆에는 항상 그들의 창작을 돕는 조력자들이 있었다. 화려한 작품 뒤에서 묵묵히 아이디어를 다듬고, 기획과 홍보를 도맡고, 때로는 생계까지 책임지며 작업을 뒷받침했다. 단순히 옆에서 지켜보는 존재가 아니라 창작의 동지로서, 예술적 결실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였다. 


때로는 조력자가 넘어 스스로 예술가로서의 영향을 펼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 연구자들에 의해 재조명받은 경우도 많다. 여자라는, 동성 연인이라는 시대와 사회적 편견 속에서 ‘누군가의 연인’ 혹은 ‘뮤즈’라는 이름으로만 불리며 존재가 지워졌다. 이러한 숨은 조력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단순한 재발견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불평등한 구조를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권하는 책에서는 거장의 옆에서 함께 예술 활동을 이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난다.







빈센트를 위해      

한스 라위턴 | 아트북스 | 2025


무명 화가였던 반 고흐가 사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화가가 된 데에는 동생 테오의 아내 '요 반 고흐 봉어르'가 있었다. 그는 빈센트 형제가 죽은 뒤 미술계 인사들이 고흐에 대한 글을 쓰게 하고 전시회를 기획했으며,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펴냈다. 유능한 기획자였던 요의 이야기를 네덜란드 빈센트반고흐미술관과 미술관 수석 연구원인 한스 라위턴이 10여 년의 연구 끝에 책으로 펴냈다.







조지 오웰 뒤에서: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 생각의 힘 | 2025


조지 오웰의 아내 아일린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는 『1984』보다 먼저 〈세기말, 1984〉라는 디스토피아 시를 썼으며, 『동물농장』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등 오웰의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일린은 오웰이 창작하는 동안 생계와 가사를 담당했으며, 스페인 내전에 함께 참여하고, 오웰과 오웰의 원고를 구출했다. 이 책은 단순히 아일린을 재조명하는 것을 넘어 위대한 작가 뒤의 조력자가 어떻게 지워지는지를 현실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 프란츠 | 2021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가 쓴 책이다. 이브 생 로랑 사후 수신 불가능한 편지들을 써 내려가며 늘 함께했던 자신들의 일생을 회고한다. 그는 극장을 운영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을 지원하는 등 문화계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또한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를 인수하여 편집권의 완전 독립을 지키는 등 사회운동가로서의 행보도 독특하다. 패션계에 길이 남을 한 디자이너와 동반했던 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월하의 마음  

김향안 | 환기미술관 | 2005


시인 이상의 전 부인이자 화가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이 썼다. 본명은 변동림으로 김환기와 결혼하며 김향안으로 개명하였다. 김환기의 프랑스 유학 시절 함께 공부하였으며, 김환기 사후 환기재단 설립 및 환기미술관 개관을 통해 박물관인으로서의 발자취도 남겼다. 그에게는 항상 이상과의 관계, 김환기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지만, 누군가의 여자가 아닌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으로서 세계 각국을 누비며 여성이자 지식인으로 많은 글을 남겼다. 월하의 마음은 이러한 김향안의 에세이를 모았다.






젤다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 에이치비프레스 | 2019


『위대한 개츠비』의 스콧 피츠제럴드의 뮤즈이자 아내로만 알려진 젤다의 주요 작품들을 묶은 책. 스스로의 삶을 투영한 듯한 단편소설 <재능 있는 여자>, 스콧의 소설을 재치 있게 논평한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젤다의 대부분의 작품은 스콧과의 공저로 발표되어 그녀 생전에 작가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 어려웠다. 1970년대에는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21세기에는 미국 재즈 시대를 대변하는 작가 중 하나로 재평가되고 있는 그의 작품을 만난다.






나의 사랑 백남준

구보타 시게코 | 아르떼 | 2016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의 회고록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유능한 예술가인 시게코가 있었다. 도쿄교육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자신도 전위적 예술운동을 펼쳤던 그녀는 백남준에게 아내이면서 예술적 동지였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예술가 부부로 40년을 함께 해 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