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늦여름이 추석까지 이어지더니, 갑자기 썰렁한 바람이 스치며 패딩을 꺼내입을 날씨가 되었다. 단풍도 올해 유난히 더디다. 길가의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기도 전에 푸르딩딩한 모습으로 떨어지고, 가지는 벌써 앙상하다. 그나마 든 단풍마저 색이 곱지 않다.
지역의 대표적인 명산인 내장산과 강천산 등은 올해 11월 10일쯤부터 단풍 절정을 맞는다. 기상청에 따르면 단풍 절정은 최근 10년 대비 약 4~5일 늦어지고 있다. 기후 변화 때문이다. 일조량이 줄면 잎의 광합성이 멈추며 색이 변하지만, 가을이 짧아지면서 이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단풍이 들기도 전에 떨어지는 것이다. 가을은 이제 스쳐 가는 계절이 되었다. 곧 떠나보내야 할 이 짧은 계절을 붙잡으며, 가을의 색을 품은 책들을 소개한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아쉬워하듯, 책의 표지를 넘기며 잦아드는 가을의 청취를 느껴보자.

오늘의 착각
허수경 | 난다 | 2020
허수경 시인의 유고 산문집이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 동안 문학 계간지 『발견』에 연재했던 것을 모았다. 시와 음악, 뉴스와 책 등 그는 모든 것에서 ‘착각’을 끄집어내고, 때로는 스스로 ‘착각’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착각'이라는 주제로 풀어낸 시론집처럼 읽히기도 한다. "다만 어떤 상황을 착각으로 살아내는 미학적인 아픔의 순간이 시에는 있을 뿐이다." 표지는 시인이 끝내 먹지 못하고 창가에 놓아두고 떠난 귤의 빛을 담아내었다.

저항의 멜랑콜리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알마 | 1989
20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의 현대문학의 거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이다. <사탄 탱고>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작은 마을에 도착한 유랑 서커스단의 거대한 고래, 그리고 이를 통해 벌어지는 마을 곳곳의 불길한 사건을 다룬다. 고래는 구약성서 '욥기'의 괴수 리바이어던의 상징이다. 알마에서는 라슬로 작품을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표지로 통일하고, 책들이 가지고 있는 '우울'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패니 플래그 | 민음사 | 1987
여성주의 소설이자 레즈비언 소설의 현대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1980년대 말에 만나 우정을 나누는 두 여인과 1920~30년대에 만나 사랑을 나누는 두 여인이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인종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했던 시절이 배경이지만, 세상의 폭력에 매몰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보호막이 되어주며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원작이 출간된 지 40년이 흘렀으나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작품이다.

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 밝은세상 | 2017
사는 곳은 다르지만 동시대를 사는 세 여성을 하나로 엮어냈다.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평생 타인의 분변을 치우며 살아야 하는 스미타, 삼대째 이어온 시칠리아 전통 공방을 위해 열여섯에 학교도 그만두고 노동자로 일해온 줄리아, 사적인 삶을 도려낸 채 '대형 로펌의 임원'으로 살아온 캐나다의 사라. 그들은 세상의 고단함에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하며 무너져 내리다가도,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한다.

괴물들
클레어 데더러 | 을유문화사 | 2024
로만 폴란스키, 파블로 피카소, 마일스 데이비스, 헤밍웨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예술가라는 것이고, 동시에 성폭행과 마약 중독자, 포주 등 끔찍한 스캔들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우리는 흠모해 왔던 스타를 과거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숭배와 혐오라는 양극단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괴물들'의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딜레마에 빠진 관객들의 상황에 부딪쳐 보는 책이다.

신악서총람
장정일 | 마티 | 2022
2015년에 발간된 <악서총람>에 이은 장정일의 두 번째 음악책 서평집이다. 114권의 책을 77편의 서평으로 다룬다. 바흐, 베토벤부터 핑크 플로이드, 데이비드 보위에서 황금심, 조용필, 서태지와 아이들, BTS까지. 힙합, 종교 음악, 북한의 선전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이야기하며 소설, 시, 이데올로기, 역사, 기술 등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가 '음악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보여준다. 음악으로 보는 사회학, 인문학 서적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