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대한민국은 2024년 12월 3일의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엄숙한 한 해를 보냈다. 사회 곳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유머는 조롱이 되었으며, 농담은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웃음이 사라진 사회, 농담이 금기시된 시대다. 그래도 연말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여전히 모인다. 송년회, 회식, 동창 모임에서 누군가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아재개그 하나쯤은 장전하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꺼내보자. 단, 이제는 남의 외모나 처지를 희화화하는 농담은 유머가 될 수 없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웃음을 나누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품격이 있는 유머를 배울 수 있다는 마음으로, 몇 권의 책을 골랐다.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를 쓴 한승헌 변호사는 생전 이런 유머를 했었다. “제가 기부의 어원 연구를 좀 했는데 그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어로 도네이션(Donation)이라고 하는데, 이건 우리말 ‘돈내시오’, ‘더내시오’, ‘다내시오’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부 많이 하십시오.” 독자 여러분, 앞으로도 마당과 문화저널에 많은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후원 부탁드립니다!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
한승헌 | 이지출판 | 2022
필화사건과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르며 ‘시대의 양심’으로 불렸던 한승헌 변호사가 남긴 유머집이다. 1970년대부터 이어진 그의 유머 글쓰기는 <유머산책>, <유머기행>, <유머수첩>으로 묶여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시대의 긴장과 억압 속에서도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울한 사회 현실과 부당한 권력에 맞서면서도 고난을 견디게 한 힘이 유머에 있었음을 그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5년을 사는 지금, 다시 그의 유머를 펼쳐보는 일은 웃음이 건네는 위로를 새롭게 환기시킨다.

적정 코미디 기술
금개 | 오월의봄 | 2025
팟캐스트 진행과 인권 행사 사회 등, 사람들과 함께 웃는 자리를 만들어온 활동가 금개가 안내하는 ‘코미디 활용 기술’에 관한 책이다. “나에게 코미디는 예술 장르라기보다는 인생의 태도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코미디가 삶의 경험을 소화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연극인, 유튜버 등의 인터뷰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코미디 연습문제로 마련된 ‘익힘책’ 코너도 있으니 옆 사람에게 바로 실험해 보자.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 | 자이언트북스 | 2021
희극인 박지선의 1주기를 추모하며, 그가 남긴 꽁트와 강의록, 메모들을 친구들이 함께 엮어낸 책이다. 생전 적어둔 207편의 글 가운데 95편이 선별됐다. “즐겁게 사는 것과 열심히 사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했는데, 즐겁게 살다 보면 열심히 살아진다”는 그의 말처럼, ‘즐겁게 산다’는 일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여도 치열한 고민과 예민한 감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유쾌하면서도 세심했고, 웃음을 위해 끝없이 고민했던 그의 모습이 글마다 담겨 있다. 웃음이 잘 나지 않는 날에 꺼내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필로겔로스
히에로클레스 | 마름쇠 | 2021
옛날 사람들은 어떤 농담에 웃었을까? <필로겔로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버전의 '깔깔유머집'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삶을 살며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철학과 역사, 예술을 통해 고상하고 어려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리스, 로마 문명의 일상 속 여러 모습은 '필로겔로스'에서는 농담의 소재가 되어 오늘날 한국 사람들에게도 가깝게 다가온다. 고대 그리스 'EBS 지식채널e'에서 소개된 바 있으며 전자책으로만 만날 수 있다.

대머리는 수영모를 쓰지 않는다
이휘 | 유월서가 | 202
16년 차 예능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유쾌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1부에서는 가족, 지인들과 함께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며 2부에서는 1인가구로서 스스로 어떻게 웃으며 살아가는지, 3부에서는 예능 작가로서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웃고 웃기는 일을 사랑하는 그는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에서 불평하고 화를 내기보다는 깔깔 웃어내며 '다큐에서 시트콤'으로 인생 장르를 바꾼다. 대머리는 수영모를 안 써도 되니 좋은 점이 많다고 말하는 제목처럼 말이다.

아재개그를 권함
김철호 | 뿌리와이파리 | 2021
오랜시간 출판사 편집자이자 글을 주제로 책을 써온 김철호 작가가 '아재개그', '부장개그' 등으로 불리는 중년층 남성 특유의 개그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아재개그야말로 남녀노소 즐기며 “시공을 관통하는 우리 모두의 본능”이라고 예찬하며,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아재개그의 기원과 일상 속 개그대화법도 소개한다. 제목은 순자 ‘권학(勸學)편’과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을 권함’을 패러디했다. 4부까지 읽으면 아재개그 고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