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계절이다. 이번 '권하는 책'은 침대에서 귤을 까먹으며 읽기 좋은, 겨울과 눈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들을 소개한다. 겨울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 오래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폭설로 길이 막히고, 밤이 길어지고, 추위로 몸이 움츠러든다. 연말이 지나간 도시는 한층 조용해지고, 때로는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작품 속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이동이 제한된 계절 속에서 인물들은 저마다의 장소에 머물며, 외면해 왔던 기억과 감정을 더는 피할 수 없게 된다. 고요하고 차가운 환경은 오히려 그들의 감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녹지 않은 채 계속 쌓이는 눈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들은 연말의 따뜻함과 포근함을 약속하는 겨울 책들은 아니다. 다만 겨울이라는 계절 속에서만 드러나는 감정과 선택을 천천히 따라간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 민음사 | 2002
눈 내리는 풍경을 담은 문학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배경은 눈으로 유명한 일본 니가타현의 유자와 온천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직접 이곳에 머물며 집필했다. 눈 내리는 지방의 자연 풍경과 생활 풍습,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문체로 담겨 있다. 일본 문학에 첫 노벨문학상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는 첫 문장은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폭설이었다 그다음은
한연희 | 아침달 | 2020
시인의 첫 시집이다. 제목 그대로 폭설이 내린 ‘그 다음’의 시간을 중심에 두고 읽으면 더 잘 와닿는다. 시집에는 주로 ‘정답과 멀어진 내가 좋은’ 비뚤어진 마음의 화자들이 등장한다. 발문을 쓴 박상수 시인은 이를 매 순간 우리를 특정한 틀에 가두고 교정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으로 읽었다. “솜이불 밖으로 나온 두 개의 발이 / 너무 차가워서 어루만져주었다 / 여러 개의 작은 발들로 늘어났다 / 방학에는 얼마든지 늦잠을 자렴 / 잃어버린 걸 찾기 전에는 눈뜨지 말렴”― '겨울방학' 중에서

윤희에게 시나리오
임대형 | 클 | 2020
김희애와 나카무라 유코 주연의 영화 〈윤희에게〉 시나리오집이다. 대사가 아름다워 시나리오집으로 읽어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일본 오타루의 눈 덮인 겨울을 배경으로, 단둘이 살아가는 모녀에게 일본에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녀는 함께 오타루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는 엄마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남아 있다. 허리께 쌓인 눈과 눈을 치우는 장면 등은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눈보라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 녹색광선 | 2020
러시아 문학의 거장 푸시킨의 단편소설집으로, 민음사의 『벨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돼 있다. 비교적 가볍고, 익숙한 사랑 서사를 변주한 다섯 작품이 수록돼 있어 추운 겨울 이불 속에서 부담 없이 읽기 좋다. 표제작 「눈보라」는 한밤의 폭설로 인해 엇갈린 세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러시아의 클래식 작곡가 '스비리도프'가 이 소설을 보고 동명의 음악을 작곡했고, 널리 연주되고 있다. 음악과 함께 감상하며 읽어도 좋을 책이다.

소설 보다: 겨울 2025
박민경, 서장원, 하가람 | 문학과 지성사 | 2025
〈소설 보다〉는 문학과 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해 엮는 단행본 프로젝트로, 2018년 시작됐다. 올해는 계절 과일을 모티프로 한 표지 디자인이 적용됐다. 이번 책에는 박민경의 「별개의 문제」, 서장원의 「뱀이 있는 곳」, 하가람의 「5월은 창가의 호랑이」 등 세 편의 소설과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하얀 눈을 밟고, 때로는 눈 덮인 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며, 각자의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 2023
1980년대 아일랜드 소도시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석탄 상인으로,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불법적인 장면과 마주한다. 겨울은 종종 낭만적으로 묘사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계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겨울은 그런 얼굴을 하며 소시민의 도덕적 동요와 내적 갈등을 섬세히 따라간다.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