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생각보다 빠르게 바뀐다. 오래된 간판이 사라지고, 담벼락이 헐리며, 익숙한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그것들은 대부분 길을 걷다 그냥 지나쳐버리게 된다. 맨홀 뚜껑을 들여다본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고, 구름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날씨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별것 아닌 것들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이 된다.
이번 '권하는 책'에서는 걸으며 마주할 수 있는 장면들을 관찰하고 기록해 온 책들을 소개한다. 골목골목을 걸으며 나만의 관찰 대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길거리를 탐구하고 관찰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곳을 지나쳤던 어느 날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사소한 관찰이 쌓여 익숙했던 공간은 새롭게 다가오고, 때로는 뜻밖의 기쁨을 건넨다.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찰의 즐거움을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노상관찰학 입문
아카세가와 겐페이 외 2인 | 안그라픽스 | 2023
길거리 관찰도 학문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1986년 일본에서 노상관찰학회를 발족한 세 명의 학자가 쓴 것으로, 이들의 노상관찰에 대한 대담과 각종 관찰 일지를 볼 수 있다. 관찰 대상은 그저 맨홀 뚜껑에 새겨진 마크 모음 같은 사소한 것.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관찰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 세상의 물체는 거의 의도가 있는 것들뿐이서 지친다. … 우리는 관찰을 통해 그 의도의 선상에서 벗어난 부분을 발견하려고 한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장혜영 | 지콜론북 | 2020
간판은 가게를 소개하는 안내판이자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오래된 한글 간판으로 도시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지금 한국의 도시, 특히 단기간에 산업화가 이루어진 서울은 다양한 간판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다. 함석판에 적힌 붓글씨부터 네온 간판, 외래어 표기 이전에 생겨나 어딘가 어색한 단어가 쓰인 간판 등 시대의 흐름을 담은 간판의 흔적을 따라 도시의 다양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산책의 언어
글 우숙영, 그림 이민선 | 목수책방 | 2022
산책하며 만난 단어들을 '사전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냈다. '햇싸라기', '빛여울', '닻별' 등 우리 주변에 늘 존재했으나 잘 몰랐던 구체적인 자연의 모습과 다양한 지구의 구성원들을 단어로 소개한다. 이미 익숙한 단어라면 그 뜻을 다시 음미하고, 처음 본 낯선 단어라면 그 단어로 인해 주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만들어준다.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세심하고 예민하게 자연을 바라보고 인식하지 않고 있는 현대인에게 자연과 더 가까워지고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개빈 프레터피니 | 김영사 | 2023
천사의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가닥들을 나부끼는 권운(새털구름). 여명의 순간 루비 같은 다홍색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고층운(높층구름). 곧잘 기적 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하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자연현상이 있다면, 단연 구름이다. 이 책은 저자가 구름감상협회를 만든 후, 그의 ‘솜털 친구들’(저자가 구름을 부르는 애칭)을 옹호하기 위해 썼다. 구름의 과학적 원리부터 구별법, 재밌는 신화와 예술, 감상법까지, 구름에 관한 모든 것을 한 권에 담았다.

버드와처
변영근 | 사계절 | 2025
탐조하는 취미가 생긴 수채화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든 그래픽노블이다.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지내는 청년이 어느 날 작은 새를 만나며 일어난 일을 담았다. 잠시 본 파랑새를 찾아 탐조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좁은 방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의 일상이 몰입도 높은 연출과 정교한 수채화로 펼쳐진다. 새를 조용히 기다리고, 세심히 관찰하고, 발견하고, 이윽고 새를 바라보면서 어느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탐조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현재를 감각하는 자연 관찰 노트
존 뮤어 로스 | 갈라파고스 | 2025
자연 관찰자 존 뮤어 로스가 40년간 자연을 누비며 터득한 흥미로운 관찰 기술과 노트 쓰기 노하우를 담았다. 자연 관찰이 어떻게 삶의 기술이 되는지 궁금하거나, 선뜻 관찰 노트를 쓰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조언과도 같은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모른다’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의도적인 호기심’을 품은 채 질문을 던지면 신비로 가득한 삶의 풍요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느긋하게 앉아서 조용하게, 무언가를 보고 또 보는 일에 대해 잊고 있던 즐거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