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는 책   2026.6월호

지산지소 책의 시대


출판이 늘 서울과 파주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 지역에도 자신만의 시선과 언어로 책을 만들어가는 출판사들이 있다. 이들이 다루는 이야기가 꼭 ‘지역’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다. 지역의 역사와 삶은 물론, 다양한 사회 의제들을 섬세하게 길어 올리며 출판의 폭을 넓혀간다. 책은 특정한 중심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로 나올 때 더 풍부해진다.


이번 ‘권하는 책’에서는 이러한 지역출판의 흐름을 따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출판사들을 소개한다. 물론 여기서 다 다루지 못한 곳들도 많다. 전북만 해도 여러 출판사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역출판사들은 함께 힘을 모아 ‘한국지역도서전’을 열기도 한다. 격년으로 도시를 옮겨가며 열리던 이 행사는 올해부터 제주에서 매년 개최된다고 한다. 더 많은 출판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 현장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전주 '흐름출판사' 

사실을 만난 기억 | 오항녕 | 2024 


기축옥사는 조선 선조 22년, 정여립의 역모 고변에서 촉발된 대규모 권력투쟁 사건이다. 사료가 대부분 유실된 탓에 이 사건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항녕 전주대 교수는 이를 두고 무엇이 타당한 사실인지 하나하나 따져간다. 기축옥사에 대한 기존 연구와 인식을 다각도로 비판하며,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라면 그 ‘사실’은 무엇인지, 나아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까지 함께 짚는다.








고성 '온다프레스'

사회적응 거부선언 | 이하루 | 2023


파도문고는 온다프레스의 연속기획으로, 생태·평등·노동의 위기에 맞서는 작은 파도 같은 이야기들을 담아낸 시리즈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음악가이며 동물해방 활동을 이어온 이하루의 여행 산문집이다. 2014년 한국을 떠나 2021년 귀국할 때까지 60여 개국, 4만4천 킬로미터를 걸은 여정 속에 다양한 사회문제와 그에 대한 질문을 함께 담아낸다.







통영 '남해의 봄날'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 윤이상 | 2019 


작곡가 윤이상이 1956년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떠난 유학길, 5년 간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수백 통의 편지를 모았다. 가족에 대한 사랑, 유학 생활의 외로움과 생활고의 어려움 속에서도 빛나는 음악에 대한 깊은 열망, 고향 통영에 대한 향수,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간 윤이상은 물론 그의 음악작품에 드러나는 세계관까지 엿볼 수 있다.







옥천 '포도밭출판사'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 조애나 러스 | 2020 


오늘날 한국에서 김초엽, 정세랑, 조예은 등의 SF작가들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조애나 러스의 SF 비평집으로, SF가 젠더 역할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남성의 관점에서 서술되던 기존의 신화, 하지만 SF 세계관 특유의 환상적이고 새로운 신화라면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순천 '열매하나' 

음악으로 가득한 | 다카기 마사카쓰 | 2024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와 <괴물의 아이>를 비롯해 영화, 방송, 광고 등 여러 분야에서 다채로운 음악을 만들어 온 다카기 마사카쓰의 산문집이다. 그는 전통 생활양식이 남아 있는 작은 산골 마을에 살며, 자연의 소리에 즉흥 연주 형태의 멜로디를 더한 음악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책에는 음악, 자연, 관계, 추억, 실패와 도전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삶의 요소들을 구체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주 '한그루'

고병문 농사 일기 | 이혜영 | 2024


“모든 삶은 사회적이다”라는 기치 아래 개인의 삶으로 시대를 읽어내는 ‘한사람 생활사’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제주 조천읍 선흘리에서 땅을 일구며 살았던 농부 고병문의 일기를 통해 1960년대 제주 농경사회를 들여다본다. 1964년부터 1965년까지 ‘농가경제조사’의 일환으로 기록된 이 일기에는 화폐개혁과 경제개발 계획 등 변동기 속 물가와 마을의 변화가 생생히 담겨 있다. 농업 기록을 넘어 당시 사회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