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은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 관계다.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에 나의 단점이 상대에게서 보일 때 한층 불편해진다.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사랑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로 살아가는 것과 자식으로 살아가는 것, 어느 쪽도 쉬운 일은 아니다.
모녀, 부녀, 모자, 부자 등 다양한 관계를 다룬 책들을 소개하려 했지만 돌아보니 딸의 시선, 특히 모녀 관계를 다룬 책이 세 권이다. 페미니즘의 확산과 함께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활발해지면서 모녀 관계가 중요한 서사의 하나로 다뤄져 온 영향도 있을 것 같다. 반면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된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대부분 에세이인 이 책들은 저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놓인 복잡한 감정을 들여다본다. 자식의 입장에서 읽는다면 더욱 깊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 문학동네 | 2026
저자는 인도 출신으로, 부커상을 받은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온 사회 참여적 논픽션 작가다. 그런 그가 어머니 메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 자전적 에세이다.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쳤으며 진보적인 교육자였지만, 자식들에게는 정서적 폭력을 가했던 어머니. 존경과 상처, 사랑과 원망이 뒤섞인 양가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내가 엄마를 떠난 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 이야기장수 | 2026
아티스트 이랑이 자신의 내밀한 가족사를 풀어낸 책이다. 정신질환을 앓았던 어머니와 그로 인해 평범하지 않았던 유년기,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어떤 여자들은 왜 대를 이어 미친년으로 자라는 것인지'를 묻고,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국의 역사 속에서 가족의 상처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를 이야기한다. 어머니에게 처음 원고를 보여줬을 때, 그는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 채 “내가 그렇게 미쳤었니”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하재영 | 휴머니스트 | 2023
논픽션 작가 하재영이 어머니 고선희 씨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어머니의 구술과 작가의 해석이 이어지는 공동 회고록 형식으로, 모녀의 이야기를 넘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세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어머니의 삶을 해석하고 비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쓰면서 판단이나 비판 대신 그 삶의 ‘필경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애증이나 연민, 평가를 덜어냈다. 에밀리 디킨슨의 문장에서 가져온 제목은 ‘나를 낳은 여자의 분신으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원칙
요나스 하센 케미리 | 민음사 | 2024
스웨덴 작가 요나스 하센 케미리의 장편소설이다. 노인이 된 아버지, 아버지가 된 아들, 어머니가 된 딸이 서로의 달라진 역할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돌아보는 열흘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린 시절 부모는 나를 보호하는 존재였지만, 어느 순간 내가 부모를 돌봐야 하는 때가 온다. 가족이라면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관계의 변화다. “처음에 저는 아이였고 아버지는 어른이었죠. 그러다가 저는 어른이 되고 아버지는 아이가 되었어요. 더 늦기 전에 우리 둘 다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 1984Books | 2024
개인적 경험을 서술해 사회 전체로 시선을 넓혀온 아니 에르노가 아버지의 생애를 회고하며 쓴 소설이다. 노동자 계급인 부모와 부르주아 사회로 편입한 딸, 자녀 세대에서 대리하여 이루어진 계층 이동과 그 과정에서 어쩐지 멀어진 부모-자녀 사이의 자리와 거리를 이야기한다. “책, 음악, 그런 건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내가 살아가는 데는 필요 없어.” 찬사나 비관 같은 문학적 수사를 덜어내고 필요한 말만으로 건조하게 아버지의 삶을 기록한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 은행나무 | 2024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그의 사후 책으로 엮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카프카의 삶과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학은 아버지로부터의 도피처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카프카는 책에서 아버지와의 응어리를 ‘종결되지 않은 끔찍한 소송’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출판사의 버전으로 나와 있는데 은행나무 출판사는 카프카의 양육관을 엿볼 수 있는 『누이동생 엘리에게 보내는 편지(1921)』를 부록으로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