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2024.3월호

매체생태계 변화, 극장이 위험하다



이현민
 로앤컬쳐 대표ㆍ대중문화평론가



‘홀드백’이란 한 편의 영화가 영화관이 아닌 다른 수익 창구를 마련하여 IPTV나 OTT를 통해 대중을 만나는 시기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지난해부터 이 홀드백의 시기를 법제화하자는 논의가 시작되면서 영화계는 물론 콘텐츠 업계 전반이 뒤숭숭하다. 논의 초반 정부는 홀드백을 반드시 법제화할 것이라는 강경 기조가 아닌, 업계 상황을 살펴 적용할 것이라는 방침으로 한발 물러난 상태이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홀드백 법제화,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한국 영화시장이 힘들다. 팬데믹 핑계를 대며 버텨왔던 자존심이 무너져버렸다. 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이 뚝 끊긴 것이다. 거기다가 홀드백 기간이 더욱 빨라지면서 영화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홀드백 법제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매체 생태가 변화하면서 콘텐츠 시장 전반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영화관은 이러한 변화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매체의 변화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패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집단’ 보다는 개별화, 개인화된 삶에 더욱 익숙해졌고, 콘텐츠의 소비도 자신만의 디바이스로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이 더욱 즐겁고 익숙해진 상태에서 영화관 출입은 더욱 뜸해질 수밖에 없다. 


OTT 콘텐츠는 사실상 대중들의 생활양식 변화를 견인하였다. 영화만의 장점을 충분히 흡수한 OTT 콘텐츠는 ‘영화 못지않음’을 넘어 이제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급성장하였다. 이렇듯, 다양한 OTT 콘텐츠의 홍수는 대중들이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가장 단순하고 1차원적인, 대중들이 영화관을 가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는 비싼 티켓값, 둘째는 짧은 홀드백 기간이다. 그만큼 빠른 홀드백은 현재의 영화 시장 침체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개봉일 기준, 단 몇 주 안에 개봉작이 IPTV나 유료 콘텐츠로 유입되고, 그것도 모자라 또 몇 주안에 가격이 인하되거나 OTT로 직행하여 결국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계가 독립영화, 중소 영화사와 제작사, 메이저 영화사와 배급사 등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영화인들이 한목소리로 ‘홀드백 기간을 강제하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고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투자를 받고 상영된 영화의 최종 목표는 가장 많은 대중들이 해당 영화를 보고 즐기는 것이고, 이를 통해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동안 영화의 상영 기간과 관객 유입 속도 등을 통해 영화의 흥행 여부를 점쳐왔던 만큼, 만약 흥행이 묘연한 영화가 홀드백의 의무 규정 때문에 수익 창출의 기회마저 잃는다면, 제작자, 대중 모두에게 너무 큰 손실이 될 수밖에 없다. 콘텐츠가 나오고 사라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반드시 그 영화가 아니어도 대체될 콘텐츠가 많은 현재의 콘텐츠 생태계에서 의무 규정이란 이름의 족쇄는 오히려 영화 시장의 침체를 더욱 가속화할지 모른다.


오히려 그동안 미루어왔던 해외 OTT 망 사용료의 법제화 등에 대한 논의나 OTT의 영상물 심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마련 및 법제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에 대한 기준과 법제화 마련에 힘을 쏟기보다는 OTT 영상물에 대한 기준을 세분화하는 것이 콘텐츠 생태계 전반을 상생시키는 일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는 어렵게 가능하던 영상물의 수위조절이 정보통신망법의 규제를 받는 OTT에서는 쉽게 가능한 것도 영화 시장의 침체와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OTT에는 투자금도 많이 유입되는데다 규제 또한 자유롭다는 인식이 오히려 영화업계에서의 생존이 아닌 OTT 시장으로의 방향 전환이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더 좋은 콘텐츠는 영화판이 아닌 OTT시장이다!’는 시장 인식이 팽배해질수록 악순환은 가속화된다. 


만약 반드시 홀드백 법제화를 적용할 것이라면, 좀 더 대대적인 영화인들의 의견과 목소리를 통해 가능한 다양한 변수를 생각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특히 홀드백 기간의 차등 적용 등에 대한 고민이 급선무다. 결국은 망해버린 단통법처럼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부작용을 낳은 사례도 있는 만큼, 빠른 성과를 위한 빠른 법제화보다는 진짜 성과를 위한 다양한 의견의 종합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창작자의 보호, 신선한 창작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창작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콘텐츠 시장 전반에 ‘새로운 이야기’가 유입될 수 있는 조치 또한 필요해 보인다. 홀드백 법제화 이슈,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현민  

대중문화평론가이자 한중 콘텐츠 연구자로, 고려대학교 문화콘텐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간지와 웹진 등에 꾸준히 대중문화 비평글을 쓰고 있으며 저서로 <대중문화, 이슈로 답하다>, <OTT 스토리텔링 생존 공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