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 서울 도봉구 중심에 오스트리아의 한 건축가가 설계한 2,000평 규모의 미술관이 문을 연다. 미술계와 사진계가 동시에 주목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새로운 분관인 사진미술관이다. 내년 봄에는 금천구 독산동에 서서울미술관이 개관하며 서울시립미술관의 네트워크형 미술관 형태가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계속해서 내용과 규모를 확장해가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최근, 전국적으로 향후 몇 년 이내에 개관을 앞두고 있는 시립미술관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미국의 유명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의 건축 철학이 담긴 강릉의 공공미술관 솔올미술관이 먼저 문을 열었다. 이후 2026년 개관 예정인 전주시립미술관을 비롯해 약 7개 지자체가 시립미술관 건립을 준비 중이다.
공립미술관의 연이은 건립 추진 소식이 들리는 이 시점에, 공립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공공미술관의 소장품과 모든 기획 프로그램, 건축물은 공공재이다. 예술작품과 다양한 배움, 공공프로그램을 통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고 창의적인 상호 소통 형태의 교육, 문화다양성 및 미술관 접근성 향상 등이 모두 미술관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건립한 공립미술관은 더 많은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특히 지역사회, 지역 공동체, 지역 작가들과의 연계를 통해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그들 생태계가 균형을 가지고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은 단기간 소수의 인력, 소규모의 예산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건축물과 개관전 등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하지 않고 내실있는 장기적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시간, 인력, 예산 등 전폭적인 정책지원의 규모 아래에서 결정된다. 물론 기관장을 포함한 전 미술관 구성원들의 전문가적 자질, 태도와 의식 역시 빼놓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공공미술관의 건립은 단순한 지자체의 비전을 보여주기 위한 방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랜드마크로 문화관광의 거점을 마련한다든가 물리적 공간 확보를 통한 미술향유의 수적 확대 차원이어서도 안된다. 해외 사례에서처럼 스타 건축가의 미술관 외관이 자아내는 스펙타클, 그로 인한 지역 문화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마냥 긍정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위험하다. 공공미술관의 역할은 보다 다층적인 차원에서 정책이 마련되어 지원되었을 때 수행될 수 있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빈번하게 우리에게 들려오는 단어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다. 여러 기업과 문화예술기관들에서 너나없이 이야기하는 이 지속가능성은 가장 우선적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즉 그 수명을 축소하지 않으려는 정책이자 가치를 뜻한다. 미술관의 지속가능한 정책에 한정지어 이야기를 한다면, 이것은 현재의 필요성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미래의 가능성을 빌려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미래의 가능성이란 앞서 언급한 지구 생태계를 포함하며, 미술관의 인력, 예산, 고용 등 모든 문제에 걸쳐져 있다. 미술관에서 생산, 소비되는 것의 모든 문제를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어떻게 미술관의 운영이 지속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를 경영과 행정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에까지 이른다. 건립 추진, 건축 설계와 준공, 그리고 이어지는 개관전 이후의 상황까지. 눈앞의 가시적 효과가 아닌 훨씬 먼 미래를 내다보는 지속가능한 정책이 뒷받침되었을 때만이 공공미술관의 탄생은 의미를 갖는다.
다시 서울시립미술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2025년에 총 9개관을 운영하게 되는 서울시립미술관은 본관과 각 분관이 수평적 시스템 속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지닌 역할과 기능을 소화해내고자 한다. 물론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예산과 인력 등 모든 요소들이 균형있게 지속적으로 맞물려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단순히 서울시의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며 구역을 전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예술적 실천의 생산을 위해, 또한 공공재의 보다 창의적이면서도 민주적인 확산을 가져오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개관할 여러 공공미술관들 역시 안정적인 운영을 장기적으로 담보할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소라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후 동 대학원의 조형예술학 석사와 박사를, 영국 런던시티대학에서 문화정책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립 큐레이터와 연구자로 활동하며 온라인플랫폼 ‘네트쇼’를 운영,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서울시 공공미술심의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