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우리나라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떠들썩한 이때, 책이 정말 싫다는 고백을 해야 하는 내 심경은 참으로 아프다. 자칫하면 한반도 남쪽에서 추방될지도 모른다. 누가 이 고통을 위로해 줄 것인가. 하지만, 아무도 위로해 주지 못한다 해도 나는 고백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해해 주시길!
나는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하늘 높이 휘두르며 국뽕과 전쟁, 광신의 희열을 느끼는 대신 침잠과 고뇌, 성찰과 모색의 혼란을 제공하는 책이 정말 싫다. 광란과 외침의 환희 대신 고요의 세계를 헤매는 나의 고통은 오로지 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나는 빵집 앞 수천 명 틈에 줄을 서고, 사치품 매장에 오픈런하는 대신 아무도 찾지 않는 임실군청 주변 총각무 맛난 백반집에서 초라하게 밥을 먹도록 이끄는 책이 정말 싫다. 나도 줄 서서 먹고, 뛰어다니며 돈 쓰고 살고 싶다. 그렇게 발바닥에 땀 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이 책이라는 존재 탓에 내 발바닥 대신 심장과 뇌에서 땀이 흐른다. 이놈의 땀은 36.5도가 아니라 3650도에 달해 내 삶을 다 태워버릴 태세다.
또 나는 ‘0000 조선족’ ‘0000 공산당’ ‘0000 이슬람’ ‘0000 동성애자’를 외치며 단일민족, 단일체제, 단일종교, 단일사랑을 추구하는 이들 대신, 세상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며, 저 사람과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책이 정말 싫다. 내가 단 하나의 별, 단 하나의 나라, 단 하나의 당, 단 한 명의 신, 단 하나의 사랑만 존재하는 순수한 세계를 거부하는 까닭은 책 때문임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무리에 속하지 못한 채 고독한 여우로 살아갈 팔자가 되고 말았다.
또 나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을 죽이고, 수십, 수백만 원을 베팅하며, 수십 시간을 순삭해 주는 게임 대신, 이성을 품은 수백 단어, 냉철로 장식된 수천 글자, 침묵의 띄어쓰기로 뇌의 회로를 단속(斷續)하는 한 권의 책이 정말 싫다. 내가 거리에서, 버스 안에서, 방안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눈 내리깔고 이웃과 세상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이웃의 승부욕을 바라보는 물끄러미가 되고 마는 것은 바로 그들이 신봉하는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나는 남이 가진 핸드백과 남이 타는 자동차, 남이 먹는 음식, 남이 입는 옷과 남이 차는 시계, 남이 신는 구두와 남이 거는 금목걸이 대신, 오르한 파묵의 《눈》과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양식집》과 올카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와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황동규의 《미시령 큰바람》을 소중히 여기는 내가 정말 싫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 소중한 것들은 다 책이기 때문이다.
또 나는 서울 금싸라기 땅에 물가리 악세서리 가게와 차넬 화장품 가게와 누이뷔똥 가방 가게 대신 들어서 떡 하니 자리한 서점이 참으로 싫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누추한 지성의 들보 대신 목숨을 팔아서라도 가져야만 인정받는 찬란한 자본의 장식품을 팔아야 한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성스러운 실천이기 때문이다.
또 나는 뜯고 마시는 대신 대학 4년 내내 나를 사로잡은 로욜라 도서관, 집 주변에 자리한 서대문 도서관과 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들이 치가 떨리도록 싫다. 그것들만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흥식이 열 마리 치킨과 스타독스(Star dogs)를 창업해 재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또 나는 아파트와 주식과 비트코인과 펀드와 부동산 대신 어려서부터 눈앞에 꽂혀 있던 온갖 책들이 싫다. 이 책들만 아니었다면, 나는 《안중근재판정참관기》나 《징비록》(그래도 이 책은 많이 팔렸다), 《한글전쟁》, 《백 번 읽어야 아는 바보》 같은 책 대신 《아파트로 번 돈에 깔려 죽어라》, 《주식으로 쌓은 바벨돈》, 《비트코인도 모르면 접시에 코박아라》 같은 책 써서 팔자에 없지만 팔자를 바꿀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을 것이다.
또 나는 인류 문명(그게 과학문명이건 역사적 성과건, 철학적 사유의 결과건)을 자기가 다 아는 척하며 저술한 피터 왓슨의 책들, 《생각의 역사 1, 2》, 《저먼 지니어스》, 《무신론자의 시대》, 《컨버전스》, 《거대한 단절》이 너무나도 싫다. 이 책들은 오직 진리만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표절로 가득한 논문에 학위를 수여하기도 하는 수많은 대학의 한 학기, 아니 한 학년 커리큘럼을 능가하니, 대학 교육을 무력화시키는 암적인 존재가 분명하다(그러고 보니 오직 책 읽다가 졸업한다는 미국의 유명 대학이 떠오른다).
또 나는 5만 원권 지폐뭉치, 1kg짜리 금괴 몇 개, 결혼식 때 받은 1캐럿 다이아몬드, 아파트 등기부 등본 대신 내 금고 속에 고이 간직한 1968년판 어린이 위인전 《새 세계를 움직인 사람들》 6권(본래 7권인데 한 권이 55년을 거치는 동안 사라졌다)이 정말 싫다. 내 자식, 손주, 증손주에게 전해 줄 것이 다 헐어, 넘기기도 힘든 6권의 책(100번도 더 읽은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르겠다)이라는 사실이 어이없게도 나는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손주들은 “할아버지, 왜 금고 속에 허섭스레기만 있어요?” 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싫은 것은 지금 내 방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책들이다. 누군가는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아무도 모르시겠지만, 이 글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한 말이다)한다고 하지만, 멋진 유럽산 상품과 푹신한 가구, 평안한 등받이 안마의자와 긴 수명을 약속하는 온갖 실내용 운동기구로 꾸민 인테리어를 방해하는 이 수천 권의 책들이 너무 싫다.
그러나 나는 ‘그대를 사랑해’의 반대말이 ‘그대에게 아무 관심이 없어’라는 사실도 안다. 그러하기에 위의 ‘싫다’라는 단어를 ‘관심없다’로 바꾸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대신 상식이 죽고, 지성이 자취를 감추며, 사색을 파묻어버린 이 가을에 ‘사랑한다’라는 동의어로 치환하는 아량을 베풀기로 한다.
덧붙임: 위 글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가 두 번 등장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낸 기이한 존재들은 그 ‘아무’가 아님이 분명하다. 축하드린다.
김흥식
1989년 도서출판 서해문집을 설립. 인문사회·역사·고전 분야 책을 주로 만들며 역사와 고전을 사람들과 가깝게 하는 일에 주목해 왔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비롯한 다수의 책을 썼고, 책에 대한 애정과 출판계 독설 비평, 서평 등을 거침없이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