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도시’ 전주에 자주 다녀온다. 그러나 전주가 젊은 도시라고 느낀 적은 별로 없다. 언젠가 강연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전주가 젊은 도시냐고. 고개를 흔드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전주가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도시이길 바란다. 나는 한 도시가 가질 이상(理想)은 관광과 여행하기 좋은 도시보다 ‘내 아이를 데리고 살고 싶은 도시’여야 한다고 믿는다. 전주는 과연 그런 곳일까?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위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국회의원들의 민첩한 대응과 시민들의 목숨을 건 저항으로 맞서 막아낸 것은 감동적 승리였다. 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을 외친 군중의 상당수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놀라운 연대의식도 보여주었다. 청년들이 중심이 된 것도 놀라웠지만 그들의 문화가 생동감, 상상력, 재기, 설득력, 연대의식 등을 마음껏 발현하는 데에 더 놀랐다. 몸을 들썩이며 합창하는 그들의 모습은 시위가 아니라 하나의 축제에 가까웠다. 분명히 새로운 문화였다. 그들의 문화는 더 참신하고 멋졌다. 우리는 서로 응원하고 서로 고마워했다. 그렇게 세대의 벽은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 그동안 우리는 청년들이 너무 정치에 무관심하고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자신의 즐거움과 이익에만 몰두한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래서 정치에 무심한 청년들을 야속하게 여겼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그릇된 생각이었는지 청년들은 멋지게 증명해보였다. 이 난세의 위기를 막은 건 청년들이었다!
기성세대는 MZ세대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건 모든 역사의 공통점이었다. 그러나 이해와 응원은 어른의 몫이지 청년의 그것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MZ세대를 이해하고 있을까? 1980년도 이후 2000년대에 태어난 그들은 생각도 일하는 방법도 노는 방식도 기성세대와 다르다. 마치 신인류와도 같다. 그들은 정보화사회의 시작이며 신자유주의의 시작이고 민주화운동의 분출 시기에 태어났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세례를 받고 성장했다. 무엇보다 정보 처리 능력이 탁월하다. 이들은 가정, 사회, 직장에서도 달랐다. 소통방식이 다르고 개성이 강하며 기존의 조직문화에 젖어있던 기성세대들을 놀라게 한다. 그 어느 세대보다 정의·인권·공정·평등에 민감하고 권위주의에 질겁하며 저항한다. 그들에게 자율성은 공기와도 같다. 자율권을 주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한다. 지금은 이미 초역전의 시대이다. 사원이 임원보다, 학생이 교수보다, 자식이 부모보다 똑똑한 세상이다.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즉 젊은 멘티가 나이 든 멘토를 지도하는 게 정상인 세상이다.
나이 든 사람의 무기는 지식과 지혜이다. 그러나 이제 지식은 오히려 젊은 세대가 더 많이 소비하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지혜는 다를까? 지혜는 지식이 삶으로 구현되면서 축적된다. 나이 들어 아무리 지식과 경험이 많아도 그게 없으면 쓸모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어른의 지혜는 청년을 이해하고 응원·지지하며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과감하게 그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넘겨야 한다.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우리가 울타리가 되고 디딤돌이 되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출산 감소 위기에 젊은이들이 의사를 결정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칠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는 건 청년이지 어른이 아니다. 정부에도 청년부나 청년청은 없고 지자체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과감하게 청년에게 맡겨야 한다. 그들이 옳다. 그들이 우리의 스승이다.
나는 강연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전주가 젊은 도시가 되길 원하시냐고.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다면 어찌 하시겠느냐 다시 물었다. 답이 없었다. 막막할 것이다. 여러 날 곰곰 생각해봤다. 결론은 이렇다. 이제 청년들에게 도시의 운전대를 맡겨보자! 청년이 옳다는 믿음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어른은 자문의 역할에 충실하며 그들이 세운 정책을 신뢰하며 실천하는 게 시대정신이고 곧 미래의제이다. 1970년대에 이미 김대중, 김영삼이라는 두 젊은 정치인은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나섰다.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유진산은 젖비린내 난다고 비웃었다. 그때 유진산이 65세였다. 내 나이보다 적었다. 2025년이다.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힘과 미래는 청년의 기개에서 온다. 머뭇거릴 게 아니다.
나는 제안한다. 이제 우리도 30대 시장을 만들어보자고. 어른들 눈에는 미숙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능력과 비전을 갖췄다. 부족한 경험과 지혜는 어른이 도우면 된다. 그들은 지역의 토호세력에 흔들릴 일도 덜하다. 청년 시장은 일방적 명령보다 직원들과 토론하고 외부의 자문에 귀를 기울이며 집단지성을 이끌어낼 것이다. 그게 미래지향적 역동성을 이끌어낸다. 30대 시장?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내려놓으면 가능하다. 30대 전주시장이나 익산시장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 자체가 전국적인 뉴스가 된다. 미래를 선택한 도시로 각인된다. 국회의원은 국가의 입헌기관이니 경륜 있는 4,50대를 뽑으면 된다.
이제 나이 든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자. 어른들이 모든 걸 독점하는 건 역동적 미래로 가는 길을 막는다. 민주당이 다음 지방선거에서 30대 시장을 공천하여 주권자에게 선택받게 하는 프로젝트를 지금부터 준비하시기를. 시민들이 응원하면 가능하다. 그렇게 뽑히고 성장한 사람이 나중에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다. 쉽지 않다고 미리 주저앉을 일이 아니다. 다시 이런 기회를 갖기는 쉽지 않다. 전주를 젊은 도시로 만들고 전북을 역동적인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마련할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 위대한 선택을 꿈꿔본다. 청년이 옳다! 그들에게 맡겨보자.
김경집
전 가톨릭대학교 교수이자 김경집어른연구소 대표. 늘 책과 함께하며 배우고, 가르친 뒤, 현재는 글을 쓰고 문화운동을 하며 삶을 채우고 있다. 인문교양서 『어른의 말글 감각』, 『인문학은 밥이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