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2025.4월호

더 나은 창작의 씨앗, 비평


문윤걸 예원예술대학교 교수


우리 지역에 비평문화가 자리잡지 못해 문화예술계 전반이 활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비평이 무엇이길래! 우리 사회에서 비평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90년대가 아닌가 싶다. 80년대 민중문화가 꽃피우면서 아무나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숭고하고 고상한 취향의 차원에 있던 예술과 문화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며,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를 드러내는 하나의 시그널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창작자와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도 확장되었다. 


이 시기에 예술과 문화는 텍스트나 이미지 중심의 해석에서 사회적 맥락이나 문화적 맥락과 관련하여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의식이 투영되어 해석되기 시작하였다. 비평 영역의 확장은 곧바로 우리 사회에 낯설면서도 다양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였고, 그 결과 문화예술의 다양성이 크게 확장되었다.


비평이란 단순히 텍스트나 이미지에 대한 감상문이 아니다. 비평은 텍스트나 이미지에 담긴 맥락과 상징, 표현 등을 또 다른 사회현상이나 문화예술의 맥락과 연관하여 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해석과 이슈를 제안함으로써 의미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비평은 감상자에게는 텍스트나 이미지를 보다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창작자에게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동시에 또 다른 시각, 관점을 형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문화와 예술은 각각의 문제의식과 시각, 관점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분화되어 가며 갖가지 풀과 꽃, 나무가 어우러지는 멋진 정원처럼 문화적 다양성을 만들어 나간다. 때로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 가야 할 문제를 제기하면서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길잡이 역할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비평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예술은 물론, 우리 사회가 변화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사회적 역동성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말과 같다. 비평이 없는 문화예술은 울림이 없는 메아리처럼 공허하다. 창작자가 오랜 기간 숙고하며 공들여 내놓은 작품에 대해 공감하든 공감하지 못하든 아무런 언급조차 없다면 그는 어디에서 창작의 활력을 얻을 수 있을까? 또 우리 사회가 발현하는 다양한 문화현상에 대해 적절한 분석과 해석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사회의 징후들을 알아채고 그것이 가져 올 미래를 예견하고 대응할 수 있을까? 


비평이 없는 문화예술은 대화가 없는 무미건조한 저녁식사 자리와 같다. 좋은 비평은 문화와 작품에서 다양한 질문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질문들을 사회적 대화의 장에 올려 하나의 담론으로 만들어 간다. 이 담론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여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으며 더 나은 창작의 길잡이이자 씨앗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비평에는 다소 용기와 이해가 필요하다. 아직도 비평을 비난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비평과 비난은 절대로 같은 말이 아니다. 비평이 창작자와 같은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지만 창작자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어 모든 비평이 다 창작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해석을 비난과 비평 중 무엇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 이해와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비평문화가 자리잡기 쉽지 않다. 


비평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창작자와 작품,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문화예술 소비자의 관계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창작자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그것이 비록 창작자의 주관적인 의도로 생산된 산물이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은 창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소비자의 관점에서 얼마든지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 그리고 그 해석은 또 다른 창작물로 인정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드러나는 생각의 차이는 그 자체로 문화적 다양성일 수 있다. 이에 공감한다면 생각의 차이는 서로의 문화예술적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사회적 공감을 확보해가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쳐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라 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지금 시대가 이전보다는 비평문화가 자리잡기에 훨씬 더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다 더 폭넓게 문화와 예술을 접하고 있고, 그만큼 경험과 정보의 양도 늘어났으며, SNS 등 활용할 수 있는 매체도 다양해졌다. 딱 한 가지. 비평과 비난을 구분하는 감각과 문화와 예술작품에 대한 다양한 발언을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이것에 우리가 공감하고 합의하는 마음가짐이 좀 더 필요할 뿐이다. 

 





문윤걸 

음악칼럼니스트로 문화예술 활동을 시작,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지역의 크고 작은 문화행사 기획과 연출분야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예원예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문화비평가로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