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2025.6월호

문화예술에 ‘구독’을 더하다


강진우 문화칼럼니스트


MZ세대와 함께 성장한 구독 경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비는 곧 소유였다. 정해진 값을 주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면 곧 내 것이 됐으며, 고장 등의 문제가 생겼거나 소장 가치가 떨어져서 대체 제품과 서비스를 새로 사기 전까지는 좋든 싫든 그것을 이용해야 했다. 이 같은 전통적 소비 패턴에서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경험 확장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우리 사회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MZ세대는 이러한 소비 경험에 의문을 제기했다. 세계적 불확실성 확대, 우리나라의 저성장 기조, 까마득한 취업 절벽, 높아진 내 집 마련 진입장벽 등을 겪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이전 세대보다 가난해진 최초의 세대’라고 불리게 된 이들의 구매력은 부모 세대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MZ세대 사이에서 무언가를 소유하는 행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정적인 소유 대신 다양하고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매월 일정액을 내면 소유 대신 여러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구독 경제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MZ세대와 만난 구독 경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힘차게 범위를 넓히고 있다. 도시락에서부터 자동차, 무료 배송 서비스, 기업 대상 솔루션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구독 경제가 침투하고 있는 것. 무채색에 가까운 현대인의 일상에 다채로운 색깔을 더하는 문화예술도 구독 경제의 영향권으로 들어온 지 오래다.


구독으로 눈을 돌린 문화예술

대표적인 문화예술 구독 서비스는 가장 보편화된 구독 서비스이기도 한 OTT 플랫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외출이 힘들어지면서 급성장한 OTT는 드라마와 영화를 소비하는 기존 방식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한때 시청률이 최소 30%를 넘겨야 성공작으로 분류됐던 TV 드라마는 이제 10%만 넘겨도 ‘대박’이라는 말을 듣는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2억 7천만 명에 가까웠던 국내 영화 관객 수는 2024년 약 1억 3천만 명으로 50% 이상 급감했다. 구독자 수 1위 OTT 플랫폼의 이름을 딴 ‘넷플릭스 보기’는 ‘자전거 타기’와 같이 여가 생활을 일컫는 조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예술기관인 세종문화회관은 지난 2024년 공연예술계 최초로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최대 40% 할인된 가격으로 2024시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서비스는 500명 물량이 판매 당일 소진됐으며, 2차 구독분 300명도 금세 동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세종문화회관은 올해도 구독 서비스를 확대 출시해 2년 연속 매진 기록을 달성했으며, 이에 힘입어 광야아트센터 등 여러 극장들도 속속 공연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예술의전당과 국립극장은 오프라인 구독 서비스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각각 ‘디지털 스테이지’,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공연 상영 플랫폼을 구축한 것. 두 플랫폼은 현재 무료로 공연 실황 영상을 제공하며 자체 온라인 구독 서비스의 성공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중이다.


도서 구독 서비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교보문고는 이북(eBook), 오디오북, 강의 동영상, 학술 논문 등을 아우르는 지식문화 구독 서비스 ‘sam’을 2013년부터 꾸준히 운영하며 자기계발에 ‘진심’인 MZ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구독형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는 전자책을 넘어 웹소설, 웹툰 등으로 콘텐츠 영역을 넓혔으며, 전국 곳곳에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오프라인 독서 친화형 공간을 열고 북토크, 독서모임 등 독서 커뮤니티 형성에도 나서고 있다. 이 외에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예술품 구독 서비스, 미술 작품 해설 구독 서비스, 이메일을 통한 작품 발송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 구독 서비스가 인기리에 이어지고 있다.


문화예술 경험 확장의 키워드, ‘적당히’

문화예술 구독 경제의 확대는 여러 갈래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비교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구독 서비스를 남용하면 여러 부작용도 겪을 수 있다. 구독하는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부담해야 하는 구독료가 크게 높아질 수 있으며, 구독 서비스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정작 집중해서 즐겨야 할 양질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놓치는 경우도 때때로 발생한다. 

자칫 구독 서비스가 제안하는 문화예술의 틀에 갇힐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OTT의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장르 혹은 분야의 영상 콘텐츠를 등한시하게 되고, 심한 경우 내 취향이 아닌 콘텐츠를 무작정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일까지 일어난다. 문화예술 경험 확장을 위해 선택한 구독 서비스가 오히려 문화예술 경험의 폭을 좁히는 아이러니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문화예술 구독 서비스를 활용할 때도 ‘적당히’가 중요하다. 다양한 결의 문화예술을 경험하겠다는 본질적 목적을 잊지 않는 가운데 적당하게 즐긴다면, 문화예술 구독 서비스는 행복한 삶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강진우 

객관적인 정보와 색다른 시선으로 각종 매체에 문화 및 트렌드에 대한 기사를 쓴다.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현안, 분야에 몰입하며 소설 『선물』 , 자기계발서 『칼럼니스트로 먹고살기(공저)』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