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2025.9월호

위로가 자동화되면, 관계는 어디로 가는가


원종윤 동명대학교 교수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 나는 점점 그 속도에 맞춰 끌려가고 있다. 자료를 정리하는 데 걸리던 시간이 몇 시간에서 몇 분으로 줄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속도도 전에 비해 훨씬 빨라졌다. 성취감이 있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많이 해낼 수 있다니.’ 그런데 어느 순간 고개를 든다. 잠깐, 뭐지? 이래도 되는 건가? 발전하는 느낌은 분명 좋은데 내가 원래 바라던 방향과 맞는 건가? AI의 속도에 맞춰 달리다 보면 내가 나를 추월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럴 때 챗GPT는 나를 붙잡아 세우기보다 내가 던진 질문에 빠르고 정돈된 답을 건넨다. 논리적이고 때로는 다정하다. 중간에 내 말을 끊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 비판 없는 경청이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현실 속에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으려면 만나야 하고 그를 위해 시간을 내야 하며, 언젠가는 그 받은 위로를 갚아야 한다. 위로는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흐르는 것이니까. 하지만 AI에게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할 수 있다. 마음의 부채가 없다. 필요할 때 불러내고 필요 없으면 꺼버린다. 관계의 유효기간을 내가 정한다. 편리하다. 그러나 가끔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건 너무 이기적인 방식이 아닐까.


얼마 전, 일 때문에 처음 뵌 분께 밥을 사겠다고 하자 그는 웃으며 “제가 빚을 지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다 국밥집에 들어갔는데, 그날 돈이 있는 아이들만 밥을 먹고 용돈이 없는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 앉아만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서로 밥 한 끼 사주고받는 일마저 계산과 부담의 영역이 된 세상. 이렇게 마음의 부채를 두려워하는 문화에서는 AI에게서 위로를 받는 일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AI는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니까.


사실 예전에는 책에서도 많은 위로를 받았다. 책은 나를 판단하지 않았다.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비판 없는 깨달음과 조언을 건넸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책을 읽는다는 건 이미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고르는 일이었다. 서점에서 손이 가는 책은 대개 내가 필요로 하거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었다. 챗GPT와의 대화도 다르지 않다. 질문을 던지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답을 받아들이는 일. 결국 우리는 책이든 AI든 듣고 싶은 위로와 조언을 스스로 찾아 나선다.


하지만 책과 AI는 다르다. 책이나 드라마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과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간접 경험이다. 안전한 거리에서 타인의 삶을 체험하며,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책과 드라마가 ‘간접 경험’을 전해준다면 AI는 ‘경험을 시뮬레이션’해 보여준다. 수많은 데이터 속 타인의 경험과 감정을 조합해 마치 그 상황을 겪어본 듯한 어조로 대답한다. 그래서 언제나 안정적이고 상처 주지 않으며, 적절한 조언을 한다. 그러나 그 안정 속에는 한 가지 결핍이 있다. 바로, 그 경험을 몸으로 겪어낸 존재만이 줄 수 있는 체온이다.


『경험의 멸종』에서 크리스틴 로젠은 기술 매개 경험이 직접 경험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표정을 읽고, 기다림을 견디고,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는 훈련의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AI와의 대화는 편리하고 안전하지만 그만큼 관계 속 불편함을 견디는 법을 잊게 만들 수도 있다. 마치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는 아이처럼, 상처받을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회복력도 약해지는 셈이다.


게다가 위로는 받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안다. 주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기술 매개 경험이 늘어나면서 감정을 주고받는 기회가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위로 받는 일에만 익숙해진 나는 언젠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법을 잊게 되지 않을까. 주는 과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성장과 충만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AI에게 받는 위로는 혼자 하는 위로다. 내가 위로받는 데 남의 도움이 필요 없듯, 나 또한 남들에게 필요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각각 홀로서게 되고 시뮬레이션에게 위로받게 된다. 마음으로 인정받는 일은 줄어들고 AI로 인해 높아진 생산성과 일의 성과로만 인정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일을 더 잘해야 ‘필요한 사람’이 되고 따뜻한 마음은 불필요한 능력이 될 위험이 있다. 효율적이고 빠른 세상, 감정이 오가지 않는 세상. 그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미래일까.


때로는 남에게 기대자. 내가 기꺼이 신세지려는 걸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분명 있다. 그 순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원종윤

동명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2022 AI연계 창작자 양성사업의 과제책임자로서 AI융합 교육을 시작, KBS뉴스7 부산에서 '아핫AI' 코너를 진행하는 등 생성형 AI 관련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