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근과 미각. 우리 시대가 탐닉하고 있는 두 가지 이슈다. 성형과 헬스는 이제 필수 코스가 되었고, 먹방과 맛집 순례는 일상의 축이 되었다. 그 결과 전 세대의 외모는 눈이 부실 지경이고, 미각의 강도는 유사 이래 절정을 치닫고 있다. 거기다 K-팝의 신명은 전 세계인들의 감성을 사로잡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신화 속 요정들의 세계에 산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데, 지금 한국인은 대부분 불행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이가 거의 드물다는 뜻이다. 청년자살율 1위,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의 확산이 그 명백한 증거다. 오죽하면 미국의 한 심리학자는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명명했을까. 단군 이래 이토록 ‘겉과 속’이 어긋나는 시대가 있었던가.
자본주의, 경쟁의 심화, 경제위기 등의 뻔한 진단은 됐고, 이제 질문을 좀 바꿔보자. 헬스로 복근을 만들고 미각을 충족하고 K-팝으로 흥이 넘친다면, 그에 못지않게 내면도 충만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삶의 의욕이 넘쳐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왜 밤엔 잠들지 못하고 낮엔 우울하고 무기력한가? 복근이 내면의 근육, 즉 뱃심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또 이상하다. 뱃심이 복근보다 힘이 더 ‘세다’는 건데, 그럼 그걸 튼튼하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그 방면으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뱃심은 오직 정신활동, 곧 자신과 세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자존감이 높아지겠는가. 그것은 마치 낯선 오지에 갔는데, 날은 저물고, 말은 통하지 않고, 길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처지다. 그때 필요한 건 지도다. 방향을 잡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지도. 인생도 마찬가지. 삶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자기 배려와 세계 인식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오직 독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독서의 정수가 바로 ‘고전 읽기’다. 고전은 ‘책 중의 책’이기 때문이다.
고전에는 최소한 3천 년 이상의 시공간이 담겨 있다. 따라서 고전을 펼치는 순간 우리의 시야는 단번에 시공간적 도약을 이루게 된다. 물론 고전은 어렵다. 언어와 문화, 습속 등의 장벽을 돌파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마음의 근육인 뱃심이 필요하다. 거꾸로 고전을 독파하다 보면 뱃심이 두둑해진다. 왜 두뇌가 아니고 뱃심일까? 고전은 인생과 세계에 대한 심오한 통찰의 보고(寶庫)다. 통찰력은 생명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두뇌 플레이만으론 불가능하다. 전신의 에너지를 온전히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꾸준히 밀고 갈 수 있다. 그래서 뱃심이다.
그런 점에서 뱃심은 곧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비로소 타자와의 소통과 교감이 가능해진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앎은 필연적으로 타자를 향해 나아간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면 더 이상 ‘에고’에 갇히지도, 에고를 고집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에고로부터의 해방, 그것이 바로 교감의 출발이다.
요컨대, 삶에서 가장 소중한 덕목은 통찰과 교감이다. 공자의 인(仁), 붓다의 열반, 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등, 이 모든 고전을 관통하는 이치 또한 그러하다. 천지인의 이치를 터득하고 모든 존재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 소크라테스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서양 고전을 가로지르는 원리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 고전이 조금 더 ‘인간중심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긴 하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고전이라고 해서 다 오래된 텍스트인 건 아니다. 21세기의 최고 고전은 현대물리학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20세기와 함께 출현한 이 두 이론은 뉴턴 이래 300여 년을 지속한 고전물리학의 세계를 전복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우주를 펼쳐보이고 있다. 그 시공간에선 시간/공간, 중력/질량의 절대성은 사라진다. 아울러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 역시 해체되고 만다. 한마디로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세계다. 다시 말해 현대물리학의 성취는 동양고전의 심오한 이치와 깊이 상응한다.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늘 주역과 불교, 장자를 동원하는 건 그 때문이다. 기술문명을 주도하는 이론들과 가장 오래된 고전의 원리가 절묘하게 ‘크로스’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SNS는 모두 양자역학의 산물이다. 또 우리는 오랫동안 동양고전의 문화적 토양 속에서 살아왔다. 양자역학과 동양고전이 기묘하게 융합되는 이 ‘시대정신’을 체득하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다. 한편으론 미각의 향연, K-팝의 신명에 빠지고, 다른 한편으론 우울증과 불면증에 몸부림치는 이 지독한 간극을 벗어나 사유의 지도, 인생의 비전을 멋지게 그려가야 할 때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근보다 뱃심!’
고미숙
주요 활동은 ‘읽고 쓰고 말하기’다. 고전을 통해 삶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며 여러 도서를 발간하고, 강연활동을 해왔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나는 왜 이 고전을’, ‘청춘을 위한 인문학’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