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가 끝났다. 그 어느 선거보다 요란했던 지방선거였다. 전국적으로 여론조사나 언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거 결과가 나왔고, 여기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해 부실선거와 참정권 논란까지 보태지면서 지금까지도 선거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요란한 선거가 지나고 나니 정작 지역에 대한 성찰과 모색은 거의 들어보지 못한 듯해서 아쉽다.
문화정책의 차원에서는 그 갈증이 더하다. 대다수의 정치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K-컬처’를 칭송하고 ‘문화의 시대’라며 ‘미래 산업·일자리로서 문화’를 강조하지만, 이번에도 문화정책은 전국의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찬밥’ 신세였다. 문화적 가치와 철학에 기반한 공약은 고사하고 형식적인 문화공약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늘날 세계화된 일상 속에서 시민들은 문화 환경의 변화로부터 커다란 영향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용 슬로건, 포스터, 현수막, 선거송, SNS 캠페인까지... 무엇하나 문화와 무관하지 않지만 대규모 지역개발, 부동산, 일자리, 지원금 등 치열한 이권이 각축하는 지방선거에서 순진한 문화정책에게 내줄 자리 따위는 없다.
그러나 ‘지역’(로컬리티)과 ‘문화’를 연결해야 하는 것은 명백한 시대정신이다. 인류는 지금 기후위기(생태)와 인공지능(기술)으로 표출되는 문명 전환의 다중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이는 서구 근대 문명 중심의 성장주의·결과주의가 가져온 지구적(행성적) 재난이며 우리 사회가 직면한 초고령화, 서울·수도권 집중화(지방소멸), 사회 양극화 등도 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개별적인 지역 개발과 국가 경쟁력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이 지구적 차원의 본질적이고 복합적인 위기는 기존의 ‘성장-경쟁-성과’가 아닌 ‘순환-협력-과정’의 가치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역문화’다. K-컬처를 비롯하여 비서구권, 특히 아시아 문화가 세계적으로 부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앞으로 인류가 탈성장, 탈중심, 탈경계 등의 가치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거점이 바로 제국적, 행정적 구획이 아닌 문화적 가치로서 ‘지역문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문화 자체가 정해진 답은 아니다. 행정적 관리 체계로서, 서로 경쟁하는 이권 공동체로서, 서울·수도권으로 상징되는 서구 근대의 성장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해 온 낡은 지역주의로는 지역문화 생태계를 다르게 일궈낼 수 없다. 그렇다면 지역과 문화의 가치를 연결하기 위한 정책 방향은 무엇일까. 먼저 사회변동에 대한 국가정책의 연결과 대응으로서 지역문화 정책을 접근해야 한다. 지역문화는 시대적 국정 과제가 통합적이고 구체적인 생활 정책으로서 구현되는 곳이다. 다중 위기의 시대에 대응하는 생태문화, 커뮤니티와 관계의 복원, 치유와 회복,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한 정책이 지역문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다음으로 ‘국가-중앙-인간-성장-경쟁 중심’에서 ‘시민-로컬-생태(공존)-지속가능-협력 기반’으로 지역정책의 철학과 가치관이 대전환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앙 정부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 지역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관료주의 행정 중심의 개별화된 사업 관리 체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 지금 지역문화 생태계에 필요한 정책은 행정 주도의 나눠주기식 공급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주도(협력적 거버넌스)에 기초한 지역문화 생태계를 꾸준하게 회복하고 재활성화하는 흐름을 형성하는 것이다.
시인 백무산은 〈기원에 대하여〉에서 “처음 돌도끼는 시였다가 / 훗날에 가서야 연장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문화정책이 돌도끼가 아니라 다시 시가 되기를 바란다. 문화정책은 눈앞의 이권을 위한 연장이 아니라 지역의 삶을 담은 시가 될 때만이 그 가치와 효용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원재
경희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이자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으로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서울문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 문화정책의 이해』, 『문화의 미래에 대한 11가지 생각』의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문화연구자-문화운동가-문화기획자가 불규칙적으로 융합된 삶을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