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윤
폴란드 태생의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우리에게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세상에 이야기는 넘쳐나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들도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문제는 ‘새로운 방법론’이다. 주광성 생명체들이 한 줄기 빛을 찾아 나서듯이, 예술가들은 언제나 새로운 미적 방법론을 탐색하면서 일생을 보낸다. 그걸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화가의 방법론
3월 어느 날 서학예술마을 ‘펴락’에서 만난 진창윤 화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물화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2월 한 달간 서학예술마을도서관에서 열렸던 <진창윤 초대전>에서 만난 인물화의 인상이 강렬했던 걸 기억한다. 안창호, 여운형, 한용운 등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백석 시인과 전태일 열사 등 남성의 얼굴을 만났었다. 올해는 여성 독립운동가와 여성으로서 시대를 앞서나갔던 이들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그가 인물화를 그리는 이유는 하나다. 시대와 시대가 통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 역사적 인물의 내면에 끓어올랐던 시대를 향한 열정과 갈등 그리고 말할 수 없어서 굳게 침묵해야 했던 고뇌의 순간을 우리 시대에 살려놓으려고 한다. 그건 어쩌면 우리 시대가 그와 같은 열정과 고뇌를 요구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림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20년 넘게 인물화만 했어요. 풍경화는 별로 재미를 못 느꼈어요. 인물화를 그리다 보면 인물의 인상 속에서 어떤 강한 느낌,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온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작년에 전시했던 독립군 같은 경우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험난한 세월을 살아낸 삶의 흔적을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시기를 버텨내기 위해 열심히 인물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인물 역사화를 손에서 놓았습니다. 그런 후에는 풍경화, 특히 환경미술에 관심이 생겨서 열심이었지요. 그때만 해도 제가 인물화를 다시 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인물화에 붓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후퇴하는 역사라는 말이 합당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정치 사회적 삶의 방식이 기형적으로 퇴행하는 것을 보고는 한가롭게 풍경화를 그릴 수는 없었죠.”
진창윤 화가가 역사 인물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예술의 본질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예술이 인간 삶의 가장 밑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살아 있는 꽃이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때로 예술이 뿌리 없는 조화처럼 이상세계에 탐닉하는 순간이 있다. 한 개인의 내면을 뜬구름처럼 막무가내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것이 예술이라는 광범위한 인간 행위라는 데 동의하지만, 진창윤 화가에게 예술론은 이거다. “내가 발 딛고 사는 현실, 이 시대의 이야기 속에 감동이 있으니, 이 시대의 이야기를 하자.” 그런데 이즈음의 사는 형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삶과 역사에 대한 왜곡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역사를 왜곡하고, 삶을 왜곡하는 일은 우리 인간을 역사로부터 그리고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게다가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역사적 사실에 관해 침묵하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그래서 손 놓았던 역사 인물화를 다시 그리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붙들고 늘어져서 그들이 살아냈던 역사적 진실을 우리 시대에 거울처럼 반영하고 싶어서다.
그래서일까? 진창윤 화가의 인물화는 인물의 역사적 맥락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인물화마다 표현하는 방법이나 붓질이 다르다. 언뜻 보면 다른 작가의 작품들처럼 보인다. 그만큼 진창윤 시인의 역사 인물화가 역사적 인물에 천착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 개인의 치열했던 삶이 그대로 새로운 예술적 방법론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진창윤 화가는 말한다. “그의 삶과 내 삶이 통하는 지점을 발견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씨름합니다.” 이것이 그림을 그리는 진창윤 화가가 발견하는 우리 시대의 삶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이다.
시인의 방법론
알다시피 진창윤 화가는 201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시인이기도 하다. 2021년에 시집 『달칼라 현상소』를 펴냈고, 올해 초 오디오북 『잠깐에도 무게가 있다면』을 내놓았다. 화가의 삶과 시인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게 보인다. 그래서 그는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는 일과를 정교하게 마련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진창윤 시인은 무작정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쓴다. 이때의 방법론은 ‘무작정’이다. 오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이것저것 재고 생각할 틈이 없다. 써지면 써지는 대로, 안 써지면 또 안 써지는 대로 언어의 샅바를 붙잡고 한바탕 씨름한다. 견고하고 유연한 언어 앞에서 번번이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지만, 가끔은 멋진 뒤집기에 성공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모아온 시가 벌써 시집 한 권 분량이 되었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많고, 시 쓰는 사람이 많은데, 나까지 이런 일에 참여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자의식이야말로 개인의 미학적 열정에 불을 지피는 일이 아닐까?
진창윤 시인ㆍ화가의 작업실 한쪽에는 캔버스와 물감이, 한쪽에는 시집이 있다.
“30대 초반에 기형도 시집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 바람에 그림을 한 2년 손 놓고 살았죠. 곧장 시집 200권을 사서 무작정 읽었습니다. 그쯤 읽으니 시라는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싶어서 신춘문예에 도전했어요. 그러다가 마흔아홉이 되었을 때 생각했어요. 내 시는 왜 안 될까? 그게 궁금해서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첫 시간에 안도현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깨달았어요. 함축하지 말고, 시를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시처럼 쓰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동안 함축하려고 했고, 기형도를 너무 좋아해서 기형도 스타일로 썼던 거죠. 제 시는 오랫동안 거기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시를 쓰면서 매년 5개 신문사에 시를 투고했다. 그렇게 20년을 투고했으니 적어도 100번은 떨어진 셈이다. 그 100번을 누군가는 실패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진창윤 시인은 100번도 넘게 다른 시적 방법론에 도전한 것이다. 30년 넘게 그림을 그렸지만, 여전히 그림이 어려운 것처럼 시도 마찬가지다. 그건 시 쓰기를 늦게 시작해서가 아니다. 선과 색이라는 유형과 물질을 다루는 그림 그리기는 감각할 수 있어서 좀 더 직접적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어떻게든 도전해볼 수 있다. 하지만 시는 언어를 다루는 일이다. 언어는 감각이 아니라 관념이고, 관념은 형체가 없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시를 쓰다 보면 안개를 헤매는 기분이고, 미궁에 갇혀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무작정’의 방법이 최선이다. 쓰다 보면 시를 향해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걸어온 시적 행보를 상상하다 보니, 진창윤 시인이 최근에 발표한 시가 떠오른다.
코뿔소 한 마리가 대문 앞에 앉아 있다
앞발을 모으고
눈을 지그시 감고
이상한 일이다, 자바섬이나 수마트라섬에 있어야 할 짐승이
털 없는 각질 피부, 어깨에 혹 달고, 뒤쪽도 볼 수 있는 눈을 달고
풀 한 포기 없는 딱딱한 도로 위에서 흥얼거리다니
반갑게 맞이해야 하나,
나를 찾아온 건지 길을 잃어 잠시 쉬어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코뿔소가 있다」 (『작가의 눈』 30호) 중에서
이 시에 나오는 ‘코뿔소’야말로 ‘시’의 한 모습이지 않을까? 화가 진창윤의 대문을 찾아온 시. 그래서 진창윤 시인이 가슴 속에 시라는 코뿔소 한 마리가 엎드려 있는 것이라고 상상한다. 우직하게 자기 길을 걷는 코뿔소처럼 진창윤 시인은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시를 써나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펴락’을 나서는데, 마당에 동그란 나무토막 하나가 물에 반쯤 잠겨 있다. 전주천에 베어져 버려진 걸 힘들여 가져왔다고 한다. 이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터 나오기를 바라면서. 그뿐이 아니다. 진창윤 화가는 나무의 잘린 단면을 화폭에 옮기는 중이다. 분명 그 나무도 역사가 될 것이다. 진창윤 화가가 그렸던 인물화 속의 위대했던 선인들처럼, 무참하게 잘려버린 그 나무도 다시 살아 한 시대를 증언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시와 그림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반드시 그렇게 해준다.
사진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