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완주군 소양면으로 향하는 길. 눈을 들면 사방이 온통 초록으로 밀밀(密密)하다. 멀고 가까운 곳에 나무의 왕국이 펼쳐진 듯하다. 나무는 비탈과 평지를 가리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양지와 음지를 구분하지 않고 자기를 꽉 채운다. 그중에서도 7월은 나무의 대관식이 펼쳐지는 것 같다. 7월의 숲은 가장 푸르고 가장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그런 나무를 보고 있으면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보다 먼저 이 땅을 점령했던 나무는 인간에게 많은 걸 나누어주었다. 인간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지었고, 불을 지폈으며,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품목들을 만들었다. 그뿐인가? 나무의 열매로 끼니를 채웠고, 나무의 뿌리에서 약을 얻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은 나무가 있어서 혹독한 지구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나무는 인간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숲을 조금 가까이에서 관찰해봤다면 나무가 저마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바람에 밀리는 날들과 눈비를 맞는 날들, 그리고 햇볕과 물을 얼마나 받았느냐에 따라 나무는 각자의 성질로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는 종류에 따라 목질의 단단함이나 빛깔이 다르다. 나는 나무의 그러한 특징을 사람의 표정과 비교해본다. 살아온 내력이 고스란히 표정으로 나타나듯, 나무도 생태환경에 따라 저마다의 물성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나무라고 해서 다 같은 나무가 아니라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발걸음은 소양면에 있는 공방에 이르렀다.
물성과 인성의 조화
권원덕 소목장이 소양에 터를 잡은 건 4년 전이다. 오랫동안 익산에서 작업을 해오다가 좀 더 안정적인 작업 환경을 찾아 소양으로 옮겼다. 그에게 소양은 젊은 날 특별하게 인연을 맺었던 곳이다. 그는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소양면 소재 예비군훈련장에서 군 생활을 했다. 소양을 마음에 둔 건 그때부터였다. 대민 지원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소양은 그에게 인상적으로 남았다. 게다가 소양면 인근 용진면은 그를 소목장의 길로 이끌어준 조석진 소목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소양에 작업실을 마련한 권원덕 소목장. 어린 시절부터 늘 나무 곁에서 놀았던 그는 지금 나무와 인생의 시간을 나누고 있다.
“제가 살았던 집이 비교적 외딴집이라 친구들이 멀리 살았어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다가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가고 나면 나 혼자 산자락을 걸어 집에 왔죠. 그러다 보니 대개는 동생하고 산속에서 나무와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만졌던 나무에 대한 기억들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데, 알다시피 장난감이 없으니까 나무를 깎아서 이런저런 것을 만들어 놀았잖아요. 그런 영향이었던 것 같아요. 그 무렵에도 목수가 멋있게 보였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목수는 디자이너였잖아요. 머릿속에 생각한 것을 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그런 일을 꿈꾸던 것 같아요.”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에 나무는 매력적인 놀잇감이었다. 특히 나무는 물성이 인간 친화적이어서 좋다. 단단하지만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딱딱하지만 잘 휘어지는 게 나무다. 나무를 다루는 소목장에게 나무의 물성은 끝없이 탐구해야 할 대상이지만, 한편으로 나무의 물성이 사람의 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나무는 같은 수종이라고 하더라도 자라온 환경에 따라 그 특성이 차이가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는 목질이 좀 더 내밀해진다. 작업을 하면서 권원덕 소목장이 고심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나무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특성을 최대로 표출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럴 때 완성된 작품은 단순한 목가구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밀착해 있는 작품이 된다.
“나무는 다룰수록 어렵습니다. 처음 시작해서 나무라는 소재를 접했을 때는 깎기 편하고 주변에 널려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미세한 것들을 느끼다 보면 만만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죠. 나뭇결 하나를 두고 오래 고심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사소한 일이지만 나무의 물성을 따져가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그만큼 나무는 어려운 대상인 거죠.”
그의 말처럼 나무는 나무가 살아온 흔적을 결과 무늬로 남긴다. 나무는 비를 맞았던 날의 그 빗방울 무늬라든지, 눈부시도록 쏟아졌던 햇살의 고운 결이랄지, 눈 내리는 날 저녁의 희고 막막했던 순간이랄지, 밤하늘의 별빛과 안개 낀 날의 서늘함 같은 것들을 제 몸에 새긴다. 그러니까 나무는 온몸으로 세상을 껴안고 보듬으며 세상을 자기 품에 가두는 것이다. 권원덕 소목장은 나무의 그런 걸 살피고 다독이고 만들어간다.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품이 많이 가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작업을 하면 할수록, 나무를 만지면 만질수록, 알 수 없는 게 나무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 나무도 한 번 칼날이 지나가면 복구가 안 되니까.
법고창신: 미적 상상력의 세계
어느 분야든 장인에게 필요한 것은 대상과 도구다. 소목장에게 대상은 나무이고, 도구는 각종 연장이다. 그래서 장인들은 연장을 펼쳐놓고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해한다. 하지만 도구는 나무를 다루는 방편일 뿐, 궁극적인 대상은 나무다. 그런 의미에서 권원덕 소목장은 도구에 대한 애착은 있지만, 그것에 빠지고 싶지 않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좋은 나무를 보면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그는 나무를 매만져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을 더 좋아한다. 좋은 나무보다는 나무를 좋게 만들어내는 일이 더 즐겁다는 것이다.
“아직은 즐겁습니다. 그런데 매번 즐겁냐고 한다면 그건 고민입니다. 새로운 작업을 하고 결과물이 나올 때는 즐겁지만, 뭘 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은 힘들어요. 슬럼프가 오기도 하고, 나무 다루면서 부딪치는 부분도 있어요.”
소목장의 일은 나무에 자기 자신의 삶을 새겨넣는 게 아닐까? 하나의 작품에는 그 작품과 마주하고 앉은 자기 자신이 스며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에는 작가의 영혼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권원덕 소목장이 나무나 연장보다는 결과물에 더 신경 쓰는 이유가 이것이다. 조금 부족한 나무라도 진심으로 다루는 일이 그의 몫이다. 그렇지만 그의 작업은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전통 짜맞춤 가구는 반닫이, 장롱, 소반 같은 옛 품목을 복원하는 차원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권원덕 소목장도 그러한 작업을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미하려고 노력한다. 좀 더 화려한 형태를 구상하기도 하고, 오히려 극도로 단순한 것을 상상하기도 한다. 때로는 제작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만들고자 하는 품목은 대체로 전통적인 것에서 가져오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한다. 나무의 물성과 어울리는 대상을 다양하게 실험하여 돌이나 한지 장판 등을 작품에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