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짓는’ 사람들   2024.9월호

몸 언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 안무가 최재희  



문신
 시인ㆍ편집위원




누구였을까, 인간을 몸과 영혼으로 헤쳐놓은 최초의 사람은? 그 시기를 거슬러 갈 수는 없지만, 그때부터 우리의 몸이 영혼이나 정신이 담긴 하나의 그릇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시작된 건 틀림없다. 정신의 고결함에 비해 몸은 언제나 비천한 대상으로 치부되었고, 몸이 반응하는 감각 정보는 자주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몸은 우리 영혼과 정신이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하나의 사물화된 대상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몸은 유한하지만, 영혼과 정신은 영원하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널리 퍼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활동 자체가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학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몸은 정신의 객체가 아니라 오히려 정신의 근원이자 원천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오랫동안 부차적 지위로 격하되었던 몸(신체)이 자기 권위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몸의 움직임, 몸의 역동성이 보여주는 순수하고 고결한 이야기에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뜻이다.


이것이 최재희 안무가를 만나기 전에 나름으로 정리했던 무용에 관한 생각이었다. 몸짓은 인간이 창조해 낸 예술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행위다. 지금도 우리의 감정은 말보다 몸을 통해 진실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몸은 감각과 감정과 사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창문 같다. 창문은 표면적으로 투명하게 자기를 드러내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감추어버리는 역설을 만들기도 한다. 다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이 표현하는 몸의 역동이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몸의 ‘표현’ 영역을 우리의 정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짓의 본질을 우리는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몸의 언어를 정신의 언어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몸의 감각은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가장 진실한 언어, 몸짓

최재희 안무가가 무용의 길로 들어선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특활 시간에 무용부에 들어가 한국무용을 배웠다. 그때의 경험이 중학교에서도 무용부에 들어가는 힘이 되었고, 현대무용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무용부 선생님의 제안으로 본격적인 무용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 인연으로 최재희 안무가는 1988년 전북대학교 무용학과에 1기로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이 생각만큼 즐거웠던 건 아니다. 연습실은 창고나 다름없었고, 바닥도 마루가 아니라 시멘트였다. 게다가 80년대 후반의 대학가는 이런저런 일들로 어수선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학가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새로운 변화와 직면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공부가 될 리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제가 생각했던 대학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니까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졌잖아요. 이상하게도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놀고 싶은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뒤늦게 사춘기가 온 듯해요. 노는 재미에 빠져 2학기 등록을 하지 않았어요. 당연히 제적을 당했고, 그 일로 아버지에게 크게 혼났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면서 학생운동을 하거나 이런저런 사유로 제적된 대학생들을 구제해준 적이 있어요. 그때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죠. 그런데 그때 제적되었던 경험이 저를 지금까지 안무가의 길을 걷게 해준 원천이었어요. 제적당해 쉬는 동안 무용에 대한 열정이 더 커졌던 것이죠.”



뾰족한 지렁이의 발톱(2016)



돌이켜보면 그때 무용의 세계에서 떠나 있었던 일은 최재희 안무가의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이었다. 무용에서 한 걸음 떨어져나와 객관적으로 그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는 자기 몸이 원하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꿈에서 자주 춤을 추었고, 잠에서 깨어나면 희미한 빛을 등지고 다양한 몸짓 형상을 창조해보기도 했다. 이런 시간이 나이테처럼 몸에 새겨지는 동안 최재희 안무가는 무용의 진심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인간 내면에서 저절로 파장을 일으키는 감정을 오롯이 몸의 감각으로 형상화하는 일에 전념하면서 그것들을 무대에서 완성된 작품으로 구조화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현대무용 작품이 예술작품으로서 가장 필요한 건 형식이에요. 즉흥적인 춤보다는 이야기의 형식을 갖추고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글쓰기만 해도 시, 수필, 소설 등의 형식이 다른 것처럼, 현대무용도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대상에 따라 몸짓의 형식이 달라야 합니다. 안무가의 중요한 역할이 바로 그런 겁니다. 구상하고 있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어떤 형식을 선택할까 결정하죠. 이러한 형식을 결정하는 건 오랜 경험이 필요하죠.”


안무가에게 중요한 건 무용수와 관객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야기를 창작하는 일이다. 그래서 안무가의 상상이 무용가의 몸짓을 통해 형상화되고, 그것을 관객의 몸이 공명하고 공감할 때 비로소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렇게 창작된 이야기가 관객의 몸을 울려서 전율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최재희 안무가의 창작 세계가 아닐까?




2024 국립현대무용단 코레오커넥션 작품 '켜켜'


최재희 안무가




영혼을 위로해주는 무용을 위하여

모든 예술 장르가 그렇듯, 최재희 안무가도 무용이 관객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단순한 몸짓이지만 그 안에 우주적인 상상력이 담길 수 있다. 한 명 한 명의 무용수가 개별적인 몸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주제를 향해 서로 소통하면서 살아 움직인다. 무한한 우주의 질서처럼, 몸짓들이 하나로 모아 완성된 작품과 마주할 때의 감동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우리나라에서 권위 있는 무용제 가운데 서울무용제가 있어요. 서울지역 무용단이 참가하는 경연인데, 지방 무용단의 경우 자유 참가 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아야만 서울무용제에 참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 작품이 2006년도 자유 참가 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아 2007년 서울무용제에 참가할 수 있었죠. 공연 이후에 승무 이수자인 국수호 명인께서 저를 불러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무용을 처음 시작할 때는 나를 위해서 한다. 조금 성숙해지면 다른 사람, 사회를 위해서 한다. 그런 다음에야 영혼을 위로해주는 무용을 한다. 그런데 당신의 작품이 바로 그런 힘이 있다.’라고. 그때 선생님의 칭찬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마음이 벅차오른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 모두가 기립하여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작품 안에서 개별 무용수들이 일심동체가 되었던 게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 단원들이 자기 무용을 돋보이기보다는 전체 작품 안에서 기꺼이 하나가 되어 주었다. 그럴 때 안무가는 보람을 느낀다. 그런 보람을 최재희 안무가는 지역 주민들의 무용 교육으로 전환해내고 있다. 그는 꿈의 댄스팀 군산의 무용 감독을 지내면서 지역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몸의 아름다움을 가르쳤다. 청소년에게 줄 수 있는 무용의 교육적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청소년들은 무용을 통해 자기 몸의 역동적인 모습을 하나씩 배웠고,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 몸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쳤다.


최재희 안무가가 표방하는 건 춤의 일상화 혹은 일상에서의 춤이다. 그런 활동의 연장에서 2021년부터 군산국제무용축제를 만들어 군산의 고유 자원을 활용하고 군산의 정체성에 맞는 무용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회를 맞이하는 올해는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베트남, 중국, 호주, 우리나라 등이 참여하여 9월 5일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최재희 안무가는 ‘켜켜’라는 작품으로 9월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국립현대무용단 지역상생 프로젝트 ‘코레오 커넥션’에 참여한다. ‘켜켜’라는 작품명에서 연상되듯, 이 작품은 시간의 누적, 층위의 흔적들을 공간화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의 흔적들을 새롭게 해석해낸다. 무한히 열린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과 최재희 안무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세계를 기대해본다.





사진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