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풀렸다. 기린봉 두꺼비의 산란도 20여 일이나 빠르다. 마음만큼 몸도 가벼워지면 좋겠다 싶어 간절기에 적당한 낡은 가죽점퍼를 꺼냈다. 거의 10년 만이다. 환경운동가가 웬 가죽점퍼냐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유행도 지나 다시 입을 일은 없을 것 같았던 옷이다. 그런데, 요즘 검정 가죽점퍼를 입은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고, 홈쇼핑 광고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유행은 돌면서 진화하기 때문일까. 레트로 감성에 힘입어 다시 걸쳤지만, 어딘가 촌스러운 느낌이다.
도시를 흐르는 강에도 유행이 있다. 초창기 유행은 수도 서울 한강이 선도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디자인한 한강 개발은 홍수 방지와 택지 조성이 컨셉이었다. 여의도 윤중제 축조, 강변도로 건설, 잠실지구 매립 등의 과정에서 넓은 모래사장과 모래톱, 하중도가 사라졌다.
올림픽을 앞둔 전두환 대통령은 수질 개선과 친수 공간 조성을 중심에 둔 한강종합개발계획을 발표했다. 강물에 유람선이 떠 있는 한강을 위해 빗물과 오수를 나누는 하수관로와 하수처리장, 콘크리트 호안 조성, 수중보 건설로 수심 확보, 수변에는 한강시민공원을 조성했다. 영화 ‘괴물’은 더 많은 콘크리트 토목사업으로 자연 하천의 모습을 잃어간 한강을 배경으로 만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삽질을 시작한 경인 운하와 4대강 사업은 콘크리트 토목사업의 절정이었다. 16개의 보를 설치하고 수심 6m 깊이로 자갈과 모래를 퍼냈다. 수변의 습지를 메우고 나무를 베어서 체육시설과 공원을 설치했다. 보에 막혀 멈춰 선 강에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죽음의 녹조가 뒤덮었다. 외계 생명체 같은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했고, 물고기 떼죽음도 빈번했다. 텅 빈 공원은 흉물이 되었다. 이명박은 생명의 강을 파괴하는 테러리스트였다.
다음 강의 유행은 로컬 브랜드 전주천이 이끌었다. 이명박의 4대강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보를 철거하고 조성한 여울과 소는 원단의 패턴 같았고, 늘어진 버드나무 이파리는 헤어 디자인처럼 멋이 났다. 그 속에 숨어 사는 쉬리와 수달, 삵은 포인트를 주는 명품 장신구 같았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천연기념물 수달이 산책 나온 시민과 눈을 맞추고, 귀하디귀한 흰목물떼새도 자갈밭에 알을 낳았다. 오염에 강한 물고기만 겨우 살아남았던 전주천이 물고기 천국이 되었다. ‘쉬리’와 ‘돌고기’ ‘참종개’ 등 빠르게 헤엄치는 물고기와 ‘납자루’, ‘붕어’, ‘모래무지’ 같이 고여 있는 곳을 좋아하는 물고기가 30여 종 넘게 산다. 초가을 저녁 삼천 상류에는 늦반딧불이가 사랑의 비행을 한다. 무주 못지않다. 자연성을 회복한 전주천의 선물이다. 전주천을 배우고자 다른 도시 공무원과 시민단체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전주천의 기적은 환경운동을 하는 우리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시민의 환경 의식을 높이는 것도 백 마디 말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비유하자면 전주천 스타일은 지역 브랜드이지만 글로벌 브랜드가 다수 포진한 유럽 명품 스타일이다. 가서 배워온 것도 아닌데 ‘자연 기반 해법’을 적용해 도심하천 생태복원에 성공한 사례와 비슷하다. 인공 구조물을 줄이고 하천의 생태 구조와 공간에 맞는 생물종다양성 확보, 홍수관리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친수공간 마련에 중점을 두는 것이 세계 표준이라는 점에서 전주천 스타일은 이미 글로컬이다.
그런데. 지난 6일 난개발의 끝판왕, 우범기 전주시장이 4대강 사업의 전주천 판을 내놨다. 이름하여 ‘전주천·삼천 통합문화공간 조성계획’이다. 핵심은 수변 문화 관광거점 조성과 수변 여가 활동, 지역 활성화가 중심이다. 전주천과 삼천이 청계천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공 폭포와 물놀이장을 만들고 갈대와 물억새 베어내고 체육시설을 추가하고, 수달과 원앙, 삵이 서식하는 보전 구간에도 환한 조명을 밝히겠다는 계획이다. 낡은 콘크리트 토목사업에 기반한 4대강 사업과 판박이다.
기후 위기 탄소중립과도 거리가 멀다. 하천법은 자연성 회복에 기반한 탄소흡수원 확충을 강조한다. 그런데 전주시는 탄소흡수원인 버드나무 군락과 갈대 달뿌리풀로 덮인 수변과 하중도를 없애고 있다, 여울과 소 등 하천의 고유 공간을 사라지면 탄소흡수원 기능도 떨어진다. 홍수 예방을 앞세워 버드나무를 베고 대규모 준설을 해대더니, 이제는 반대로 물 흐름을 방해하고 홍수 피해만 키우는 이율배반적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전주천은 밤에도 불을 켜는 감옥이 아니다.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삵, 천연기념물 원앙이 사는 생태계의 핵심 구간인 한벽보 일대에 밤마다 LED 경관조명을 밝힌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삼천 상류에도 설치한다는데 신평교 구간까지 내려온 늦반딧불이는 또 어디로 가란 말인가. 시민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으슥한 우범지대에 불을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 압권은 전미동 하수처리장 처리수 14만 톤을 전주천과 삼천 상류로 퍼 올려 다시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맑은 물이 무릎 높이로 찰랑대는 수면을 유지해서 물과 사람을 모으겠다는 것이 목표다. 하수처리수는 법적 방류수 수질 기준치 이내라고 해도 전주천 상류와 비교하면 더러운 물이다. 가뭄 대비 용수 공급용도 아니고 전주천과 삼천에 물이 마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돈을 들여 더러운 물을 깨끗한 하천에 흘려보낸단 말인가. 초등학생도 웃을 일이다. 25년 전 전주천 물놀이 보트장 계획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하천의 특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다. 우리나라 하천의 평균 하상계수는 1:300이다. 갈수기와 홍수기의 하천 유량이 300배가량 차이가 난다. 따라서, 물을 가둬두는 것은 자연적이지도 않고, 수질과 수생태계에 좋지 않다. 홍수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시장의 전주천 난개발 사업에는 윤석열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녹조가 가득한 4대강 보를 닫고, 국가물관리계획에서 ‘우리 강 자연성 회복’을 날리고, 대대적인 하도 정비 사업을 추진한다. 전주천 상류의 국가하천 승격도 윤정부와 발을 맞춘 결과다. 하지만 전주천 관리 정책만큼은 환경부와 윤석열 정부가 하수다. 환경부가 관리하는 전주천 국가하천 구간은 다섯 개의 거대한 취수보가 물의 흐름을 막고 있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도 심하다. 송천동과 팔복동 사이 신풍보 상류에는 오염에 강한 물고기 9종만 서식하고 있다. 하천 퇴적토의 중금속 오염도가 매우 높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