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환경리포트   2024.4월호

버드나무 학살자, 너의 이름은

잘려나간 전주천의 생명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내 이럴 줄 정말 몰랐다. 전주천 한옥마을 남천교에 40여 그루 남은 버드나무까지 다 자를 줄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2월, 우범기 전주시장이 명품 하천을 만든다면서 생물 다양성을 훼손하고 홍수 피해 키우는 콘크리트 사업을 예고했다.(문화저널 3월호) 그래서 버드나무 안부가 궁금해 자주 전주천을 찾았다. 전날도 현장을 다녀왔다. 보송보송 버들강아지들이 은색 털을 떨군 갯버들은 예초기로 쳐냈고, 모래톱의 작은 버드나무들도 모두 벴다. 그래도 작고 노란 꽃 수술과 연초록 이파리를 품은 남천교 아름드리 버드나무는 건재했다. 


그런데 2월 29일, 6.25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시민들이 산책에 나서기 전인 이른 새벽, 버드나무의 비명이 어둠을 갈랐다. 작년에 살아남은 한옥마을 남천교 버드나무 35그루, 완산다리 위 버드나무 8그루가 새벽 도둑 벌목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삼천교 일대에서도 40여 그루의 버드나무를 베어냈다. 무차별적인 버드나무 벌목에서 시민들의 항의로 겨우 살아남은 나무였다.



버드나무는 한옥마을을 빛나게 하는 존재였다. 싸전다리에서 둑길을 따라 남천교, 향교 홍살문을 지나서 오모가리탕 화순집까지 이어졌던 버드나무 가로수는 한옥마을의 상징이었다. 전주 사람은 안다. 그 일상의 풍경은 얼마나 정겨웠던가. 그런데, 한옥마을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보행로 확보를 위해 버드나무 가로수를 느티나무로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환경단체는 가로수 수종을 바꾸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군데군데 죽은 나무나 빈자리가 있었고, 꽃가루 날림 민원이 많았으며, 걷기 좋은 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즈음 둑방 길 버드나무 씨앗이 바람에 날려 전주천 물가에 내려앉았다. 이렇게 자연이 심고 기른 버드나무를 시와 시민이 함께 가꿔나갔다. 물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가지를 치고 솎아냈다. 무럭무럭 자란 물가 버드나무는 둑방 길 버드나무 빈자리를 대신했다. 그렇게 한옥마을 버드나무 풍경은 예전과 다르면서도 한편 더 멋지기도 한 풍경으로 이어졌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징검다리 위에서 버드나무 숲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수십억 원을 들여도 만들 수 없는 관광 자산을, 자연성을 회복한 전주천이 선물한 것이다. 


물가의 버드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노란 꽃과 이파리, 씨앗은 이른 봄 깨어난 꿀벌과 곤충들의 먹이가 된다. 곤충과 애벌레를 먹기 위해 새들이 온다. 법적 보호종인 수달, 원앙, 삵도 버드나무 아래 몸을 숨겼다. 물에 잠긴 버드나무 뿌리는 맹그로브숲에 든 느낌이다. 하천의 물도 맑게 한다. 물고기가 몸을 숨기고, 알을 붙이고, 뜯어 먹기도 한다. 근처 물속에서 쉬리와 꺽지를 비롯한 토종 물고기와 강도래, 날도래 같은 여러 물살이의 서식처이다. 많은 이파리는 공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고 그늘을 만들어 물의 온도를 낮춘다.


버드나무의 고향은 물이다. 쥐어짜면 푸른 물이 나올 것 같다. 물이 불어나면 물을 빨아들인다. 버드나무가 번성하면 습지가 육화되지 않는가. 버드나무가 빽빽한 묵은 논을 떠올려 보라. 뿌리는 물가의 흙을 잡아줘 토양의 유실을 막는다. 물가를 단단하게 잡아주니 예로부터 저수지 제방이나 둑방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물의 흐름을 늦춰 하류의 범람을 줄여준다.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야말로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대표적인 소재 아닌가.


유대수, <혈류남천>, 2024



남은 버드나무마저 잘린 남천교의 풍경은 쓸쓸하고 황량한 폐허로 변했다. 혈류남천(血柳南川), 남천교 주변에 작업실을 열었던 유대수 작가는 사계절 수려한 풍광과 생명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준 버드나무를 애도하는 마음을 판화에 담았다. 덩그러니 밑동만 남은 버드나무의 비명과 물가에 널브러져 있는 가지를 흐르는 눈물로 새겨냈다. 


시민들의 상실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전주천 버드나무가 베어진 날 서학동에서 제로웨이스트 숙소와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는 모아 씨의 ‘나무 수천 그루 벌목한 전주시’라는 제목의 인스타그램 포스트는 1,800여 개 댓글과 좋아요 3만 7천회로 관심이 뜨거웠다. 모아 씨는 ‘잘려간 전주천의 시간 챌린지’ 캠페인을 통해 전주천 버드나무와 함께한 사진을 모으고, 식목일에 작은 전시를 할 계획이다. 


시민들은 버드나무를 벤 우범기 시장을 학살자라 불렀다. ‘전주천 생태 학살, 버드나무 제노사이드’라 이름 붙였다. 21년 서울 서대문구에서 누군가가 양버즘나무 가로수 3그루에 맹독성 제초제를 뿌려 죽였다. 나무의 죽음은 ‘가로수 독살 사건’이라 불렸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나무를 생명의 권리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들의 수사 촉구가 빗발치자 서대문구는 같은 크기의 양버즘나무를 심었다. 구청은 그 자리에 푯말을 세워 이 일을 기억하고, 사회적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말라죽은 나무를 그대로 둔다고 썼다. 



버드나무 학살자 우범기 시장은 확신범이었다. 자연환경과 경관 훼손은 물론 하천법과 조례의 위반 소지가 있음에도 담당 공무원을 압박해 전주천 생태 학살을 지시했다. 아마 재선의 길을 닦기 위해 강한 개발 시장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눈에 잘 띄는 하천을 제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우 시장의 ‘전주천·삼천 명품하천 365 프로젝트’는 자연형 생태하천 관리와는 정반대 편에 있기 때문이다.

하천법 27조에 따르면 하천공사 시행계획은 하천기본계획의 범위 안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천 정비사업의 근거가 되는 전주천 권역 하천기본계획 어디에도 버드나무가 홍수를 일으킨다는 말이 없다. 하천 내 수목 제거는 거론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습지의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자연의 천이 현상에 순응하는 계획을 세우라고 권했다. 홍수 방지 대책은 어은골 쌍다리를 철거하고 비만 오면 모래주머니를 쌓아야 하는 낮은 제방을 높이라는 것이다. 전주천과 삼천, 두 물이 만나는 서신동 가련교 하류는 전주천 생태계 보전의 핵심이지만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임에도 이 구간은 협의 사업 대상에서 빠져있다. 


확신범을 그대로 놔두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는 묻지 마 테러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전주천 버드나무가 학살되었지만 도시공원 자연녹지의 나무와 숲이 잘려 나가고, 건지산보다 더 높은 아파트가 올라갈 것이다. 시민들이 시장에게 도끼를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