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벼룻길 생태기행ㅣ사진 이정현
봄비가 내리니 초록의 색감이 선명하고 생생하다. 봄 생태기행은 진안 용담 섬바위에서 무주읍 대차리 서면 마을로 이어지는 금강 강변길로 잡았다. 버드나무가 잘리고 모래톱이 파헤쳐지는 강의 수난 시대를 아파하는 회원과 화양연화 강변길을 걷고 싶었다. 여울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에 쌓인 먼지를 씻어내고 싶었다. 찔레순을 따 먹고 수수꽃다리 향기와 비슷하다는 으름 꽃내음도 맡다 보면 절로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솟구치지 않겠는가. 자연을 닮아가야 자연을 지킬 수 있고 더불어 사는 길을 알게 될 터라는 믿음으로 봄 산책을 펼쳐 들었다. 걷는 구간도 좋고, 길잡이 설명도 좋고 점심도 좋은데, 다음에 어떻게 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참가자와 문화저널 독자를 위해 진안 무주 벼룻길 걷기 사용 설명서를 정리했다.
생태기행은 용담댐 아래 섬바위에서 시작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면 영화 보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 부르던 세대일 것이다. 그 애국가의 배경으로 쓰인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절경이 섬바위이다. 강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바위섬은 소나무와 진달래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맑은 물과 모래사장, 자갈로 이루어진 얕은 여울과 깊은 소가 있던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산과 산 사이를 휘감아 도는 강은 아름답다.
섬바위에서 감동마을로 향하는 강변 산자락 벼룻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간이다. 2km 남짓 짧은 길이지만 우안과 좌안 모두 제방이 없는 구간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길 없는 길을 걷는 느낌이다. 바위를 덮은 이끼, 흰제비꽃, 금낭화, 수수꽃다리, 꽃마리, 애기똥풀 같은 꽃들이 지천이다. 이른 봄 버드나무와 함께 피는 개복숭아꽃은 환상적이다. 인적이 드문 길가에 오소리 굴도 보인다. 감동마을 제방길에는 앵두나무가 있다. 인사만 잘하면 맛볼 수 있다. 감동교 아래에는 상어가 산다고 장난말을 건네본다. 2011년 4대강 사업의 환경 파괴 논란이 일자 정부는 감동교 일대에 고유종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II급 돌상어 4,000마리를 방류했다.
용담 감동교를 지나면 무주군 부남면 도소마을이다. 이곳에서 면소재지, 벼룻길을 거쳐 율소마을, 굴암마을, 잠두마을을 거쳐 남대천 합류지인 서면 마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18km에 5시간 소요 예상이나 실제로는 더 걸린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다가 세월교라 부르는 무너미 다리를 건너면 강이 부려 놓은 논과 밭이 펼쳐진다. 부남 소재지로 가려면 작은 다리 덤덜교를 건너야 한다. 기행 팀은 이 구간은 차로 이동한다.
벼룻길 각시바위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공식 벼룻길은 마을 안길을 따라 언덕 밭과 논, 과수원을 지나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 다른 하나는 면사무소 근처 공원에서 강변을 따라가는 포켓 공원 길이다. 사월 초순에 벚꽃과 조팝꽃, 중순에는 야생 복사꽃과 과수원의 사과꽃, 배꽃이 강변길과 구릉의 과수원을 덮을 정도다. 굳이 깔지 않아도 되는 데크가 여기저기 뒤틀어져 있다. 과도한 길이 환경을 해쳤다.
강변 어린 사과나무밭을 지나면 강이 산자락을 깎아 내 길을 만든 듯한 벼룻길이다. 원래는 일제강점기에 굴암마을 너른 들에 물을 대기 위해 전설의 각시바위를 정으로 쪼아 10m 남짓 굴을 뚫고 농수로를 만들었다. 이 길을 따라 부남 소재지로 학교에 가고 장도 보러 가고, 이웃 마을로 마실 다녔을 것이다. 현호색. 애기수영. 긴병풀꽃, 둥굴레. 할미꽃. 돌단풍. 민들레. 양지꽃. 제비꽃. 광대나물. 자주광대나물. 미나리냉이도 지천이다.
벼룻길 구간은 멀리서 보면 한반도 지도를 닮았다. 2011년 대유마을 앞에 제방을 쌓고 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을 설치할 계획이 있었다. 다리가 놓였더라면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휴전선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대안을 모색하자고 의견을 냈다. 다리는 터널로 바뀌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런데 길에 문제가 생겼다. 안전진단을 받았는데, 부적합 판정을 받아 길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다른 안내판에는 낙석 주의와 협조 요청이 있다. 군청에 전화를 해봤다. 안 가면 좋다는 답변을 들었다. 주의하라는 이야기,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낙석 구간 너덜지대가 눈에 띈다. 겨울철 지난 해빙기나 장마철 이후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율소마을에서 차를 타고 무주읍 내도리 섬마을 식당으로 낮밥 먹으러 갔다. 어죽과 도리뱅뱅이 그리고 막걸리 한잔을 맛있게 마시고 앞섬다리를 건넜다. 앞섬은 사과보다 복숭아로 유명하다. 봄이면 울긋불긋 복사꽃이 차린 동네다. 드넓은 하상 초원과 기름진 논밭은 침식과 퇴적을 반복하는 물돌이 구간의 지형적 특성이다. 수변 초원에는 미루나무, 왕버들, 갈대, 물억새, 달뿌리풀, 갯버들 등 여러 습지 식물이 무리를 이뤘다. 촛대바위 봉우리를 넘으면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가 나온다. 뒷섬 마을 다리를 건너 학교 가는 길을 따라 향로봉에 오르면 무주군과 금산군을 가르며 말굽처럼 휘돌아 흘러가는 물돌이 구간의 멋진 경관을 내려볼 수 있다.
기행 팀은 버스에 올라 잠두마을 신작로 길로 향했다. 지금도 작은 버스는 지날만한 길이다. 초록의 나무 터널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강 건너 수변과 잠두마을 뒷산은 반딧불이 생태 보존지역이다. 탁 트인 금강을 내려보며 비에 젖어 촉촉한 흙길을 걷다 보면 전망대를 겸한 정자가 나온다. 꼭 쉬고 가야 한다. 시집이 있으면 딱 좋다. 가장 아쉬운 것은 2020년 홍수에 쓸려나간 옛 콘크리트 다리. 난간이 없어 오금이 저리는 다리에 앉아 금강을 바라보면 그 속에 들어앉은 느낌이 들곤 했다. 지금은 상판은 물에 가라앉아 있고 다리 어깨만 남아있다. 신작로 길을 나와 강변 사과나무 과수원 길을 지나면 무주 용포교가 나온다. 이곳은 무풍면 대덕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설천과 합한 남대천이 금강과 만나는 두물머리다.
강의 왼쪽에 금산으로 가는 옛길이 있다. 3km가량 걷다 보면 서면 마을 소이나루 공원으로 건너는 무넘이 다리가 나온다. 다리 턱에 앉아 남대천을 만나 몸을 불려 유장하게 흐르는 금강을 바라봐야 한다. 서너 번 다리를 오가는 것도 좋다. 마무리는 서면 마을 동네 카페도 좋다. 이 정도면 하루 잘 보내지 않았는가. 5월에는 또 다른 풍경이 도보객을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