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환경리포트    2024.8월호

듣지도 알지도 못했다

신정읍-신계룡 초고압 송전선로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종일 비가 내리던 6월 8일,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로 대표되는 밀양 765kV 초고압 송전탑 행정대집행 10주년 행사를 다녀왔다. 밀양 할매들이 몸으로 지키던 농성장이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철거된 자리 근처 논에는 거대한 송전탑이 세워져 있었다. 송전탑이 지나간 자리는 눈물과 한숨, 주민 간 갈등만 남았다. 마을 주민 400여 명이 입건되고 두 명이 분신과 음독으로 생을 마감한 기나긴 송전탑 싸움 끝에는 원전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완주 소양 주민의 전화를 받았다. 신정읍 변전소에서 대전시 서구 계룡변전소까지 345,000V (345kV) 송전선로가 건설되는데, 마을 앞을 지날 것 같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은 그나마 경과 대역이 넓게 결정되었는데, 소양은 경과 대역이 좁고 인접한 동상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면담 약속을 하고 한전 설명회 자료를 구해 검토했다. 한전은 지난해 9월 광역 입지 선정위원회를 구성해서 송선로가 지나가는 광역 경과 대역을 정한 상태였다. 9개 시군구에서 5개 시군구의 읍면동으로 범위를 좁힌 것이다. 이 경과 대역을 놓고 최종 노선을 선정하는 2차 입지 선정위원회를 구성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소양 주민들은 이 과정을 “듣지도, 알지도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5월 말 이장단 회의에서 통보식 설명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전력공사는 21년 전국 최초로 재생에너지 집적화 단지로 지정된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2.4 GW)과 이 절차를 밟고 있는 전남 신안 해상풍력(8.2GW) 단지의 송전선로 계통 보강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남 신안은 함평과 영광을 거쳐 신장성 변전소로 연계하고, 전북 서남권은 부안을 거쳐 신정읍 변전소로 연결된다. 이번 사업 대상지는 신정읍 - 신계룡 변전소까지 345kV 송전선로 약 115km 구간으로 송전탑 약 250기를 설치하게 된다. 서남권 해상풍력의 육지 연결점이 부안 새만금 간척박물관 일대로 결정난 만큼, 이곳에서 신정읍변전소까지 송전선로가 신설되고 노선은 도내 송전선로 구간과 송전탑은 더 늘어날 것이다.


지금까지 밀양이나 청도 송전탑 싸움이나 당진, 삼척의 경우는 원자력발전이나 석탄화력발전소의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방통행 국가 폭력이 논란이었다. 그런데 신정읍-신계룡 345kv 송전선로는 에너지를 쓰는 곳에서 생산하자는 ‘지산지소(地産地消)’가 원칙과도 같은 재생에너지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시행된 마당에 분산형 에너지의 중심인 풍력발전 재생에너지 전기마저 수도권 송전 대열에 합류시켜서 청정지역 농산촌에 철탑을 박는 것은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 송전선로는 경기도 용인 삼성반도체 공장 같은 RE100 달성 등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곳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다. 아마도 전기를 많이 쓰는 수도권 도시 구간은 지중화할 것이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의 전력 자급률은 10.4%에 불과하다. 하지만 송전선로 지중화율은 98%에 이른다. 반면, 석탄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충남은 전력 자급률은 213%에 이르지만, 지중화율은 1.4%에 불과하다. 





해상풍력 발전단지 권역인 고창과 부안의 일부는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이익이 공유된다. 햇빛 연금, 부품 생산, 관리 등 연관 기업 유치로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전력공급을 위한 송전선로가 설치되는 경과 지역에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경관 훼손, 전자파 우려, 지가 하락 등 모든 피해는 송전선로 경과지 주민에게 떠넘겨진다. 해상풍력발전 단지를 자동차 공장에 비유하면 송전선로는 도로다. 도로가 없는데 자동차만 늘어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동차 공장을 지어서 공급을 늘리려면 도로망이 갖춰져야 한다. 도로가 없으면 무용지물 아닌가. 발전소를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송배전망이 확충이 뒤따라야 한다. 


다른 송전탑 노선과 달리 이 문제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삼성 반도체공장과 같이 RE100 달성이 필요한 첨단 기업이 지역에 내려오면 된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활용해 새만금 산단을 ‘분산 에너지 특화 지역’으로 지정하고 한전을 거치지 않고도 전력을 팔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남 신안 해상풍력은 목포 대불공단이나 광주권 산업단지 보내는 것이 지역 균형발전에도 맞는다. 송전탑을 최소화할 수 있고, 전력 효율도 높일 수 있다.


한전은 전북 정읍시, 완주군, 진안군, 임실군, 김제시, 충남 계룡시, 금산군, 논산시, 대전광역시 서구를 최적 경과 대역으로 선정했다. 해당 9개 지자체 47개 읍면동 중 정읍시가 16개소(34%), 완주군이 8개소(17%)를 차지한다. 경과 지점으로 추정되는 정읍시, 완주군, 임실군 지역은 대규모 석산, 의료폐기물 소각장과 오염 토양 정화시설 등 농촌 난개발시설에 맞서 공동체가 똘똘 뭉쳐서 싸워 온 곳이다. 떠나가는 농촌을 지켜왔다는 자부심도 크다. 


그런데,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전이 민관협의체를 앞세워 1차 결론을 내린 후 홍보에 불과한 설명회를 통해서 송전선로 계획을 알게 되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전문가 집단이나 갈등 중재 전문가는 아예 선정위원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누가 어떠한 대표성과 책임감으로 어떤 근거로 최적 경과 대역을 어떤 토론을 거쳐 결정했는지 회의록 공개를 요청해도 한전은 묵묵부답이다. 해당 지자체와 전라북도는 무슨 일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입지 선정위원회는 불과 4개월 동안 5차례 회의만으로 최적 경과 대역을 정했다. 그것도 과반수 찬성이라는 갈등 현안 결정에 부적합한 방식을 도입했다. 생존권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 송전탑 경과 지역 선정을 전체 합의도 아니고, 2/3 찬성도 아닌 과반수로 정한 것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폭력이다. 주민 수용성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지역 간 힘겨루기와 지역 내 밀어내기 등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345kV 고압송전선로의 전자파 영향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고압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극저주파 대역의 자기장 노출이 소아의 백혈병, 뇌종양, 유방암과 같은 만성적 악성 건강 영향이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위험성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국제암연구소는 극저주파를 2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주민들은 7월 17일 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익 공유는 고창·부안에, 전기는 수도권 재벌기업에, 눈물은 송전탑 경과지 주민”에 주는 신정읍-신계룡 345kV 송전선로 전면 백지화를 주장했다. 임의 기구인 입지 선정위원회에 건강, 환경, 토지에 대한 권리를 위임한 적이 없다면서 송전선로 결정은 원천 무효라고 외쳤다. 송전선로의 지중화를 확대해서 우회 노선이 아닌 단거리 노선으로 변경하거나, 2022년 수립한 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해상 케이블로 연결하는 HVDC(500kV) 도입 계획이 있는 만큼 경과 지역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