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는 지리산 산악열차가 전기 배터리로 운행되어 매연이 없고, 기존 도로를 활용해서 궤도를 놓기 때문에 생태 훼손도 없으며, 경제성이 높아 남원의 100년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공모제안서 등이 공개되면서 과대 포장과 거짓이 드러났다. 백두대간법과 자연공원법의 규제를 넘기 어렵고, 관광수요는 늘리고 공사 비용은 줄이는 방식으로 경제성을 부풀렸다. 육모정에서 고기삼거리 구간의 낙석과 산사태 위험이 가려졌다. 1km 시범 사업에서만 소나무, 밤나무를 수백 그루 베어내야 하는 등 도로 확장으로 자연 파괴도 심각했다. 공차 중량만 46톤, 사람이 타면 50여 톤에 이르는 궤도 열차의 운행 소음과 진동은 야생동물의 서식 환경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시는 산간벽지 주민 교통 기본권 개선이라는 명분을 덧붙였다. 강철톱니 기어로 움직이는 산악열차는 겨울에도 운행할 수 있으므로, 교통 통제로 인해 불편을 겪는 고기리 주민의 교통 기본권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광 개발사업이 복지 사업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 꼼수는 적중했다. 산악열차 시범 사업 선정에 기여했다. 겨울철에도 운봉읍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원 시내를 오갈 수 있는 새로운 도로 건설 계획은 쉬쉬했다.
남원 주천면 육모정에서 고기삼거리를 거쳐 정령치를 오가는 지리산 산악열차 총노선 13.2km 중 9.5km가 지리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정령치 일대는 백두대간법에서 정한 핵심구역이다. 이곳은 법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공용·공공용 시설'만 들어설 수 있다. 그런데, 백두대간 핵심구역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관광열차를 꼭 필요한 공공용 시설이라고 할 수 없다. 정령치 일대 도로는 국립공원에서도 가장 보호가 필요한 공원자연보존지구에 속한다. 자연공원법은 국립공원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1km 이상의 도로, 궤도 등의 신설, 확장, 연장은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규정했다. 백두대간 핵심구역이 수년간 공사판이 되고, 차가 다니지 않던 겨울에도 진동과 소음이 발생하고, 결빙 구간의 선로를 열선으로 가열시켜야 하는 사업에 위원들이 손을 들어줄 리가 없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산악열차는 멈춰야 한다. 작년 7월, 육모정에서 고기리 구간이 산사태로 길이 막혔고, 정령치 인근 도로가 꺼져서 1개 차로를 통제했다. 경사면의 낙석과 산사태를 막기 위해서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을 설치해야 한다. 계곡을 지나는 다리를 다시 놓아야 한다. 절벽 쪽으로 기운 도로 지반을 보강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하다. 이는 250억 원을 들여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던 심원마을을 폐쇄하고 생태 복원 사업을 추진하는 국립공원 정책과는 정반대에 있다. 환경부가 추진 중인 정령치·성삼재 지리산 관통 도로의 친환경적 전환과 서로 부딪힌다.
남원시는 환경영향평가서를 보완해서 다시 접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가 보증해서 추진한 420억대 모노레일 관광사업이 파국을 맞고, 그 빚을 대신 갚아야 할 처지에 몰린 남원시가 또 다른 파국을 부를 산악열차 사업을 강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2023년 남원시 사회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이 지역경제 활성화(26.1%)에 대한 기대감보다 자연환경 및 생태계 훼손(39%) 우려가 컸다. 탑승객 수요 부족으로 인한 시설 유지 곤란 및 중단을 걱정하는 주민도 20.4%로 나타났다. 지리산 산악열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약 60%에 달했다.
문제는 지리산 산악열차 기본계획 용역 연구에 수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던 전북특별자치도이다. 도가 내세운 친환경 산악관광특구는 다른 특구와 비교해 산악관광사업 시행자의 지정, 인허가 의제, 실시계획 수립 및 승인을 비롯해 특례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 사업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난개발을 제어해 온 환경영향평가 권한이 도지사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가 시급하다.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 사업 추진은 인근 지자체의 난개발에 불을 붙였다. 구례 산동 사포마을 골프장, 벽소령 관통 도로 확장, 함양 관광단지 조성, 구례·산청 케이블카 추진 등이다. 남원시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혈세 1억 5천만 원으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 노선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시행 중이다. 환경부는 이미 2012년 남원, 구례, 산청, 함양 등 지리산권 4개 지자체의 케이블카 사업을 부결하였고, 2016년과 2017년에는 경남도의 케이블카를 반려했으며, 2022년에는 구례군 케이블카를 반려했다.
해상 국립공원을 제외한 산지 국립공원은 국토 면적의 4% 수준에 불과하다. 최우선으로 보존해야 하는 곳이다. 백두대간 보호지역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를 잇는 한반도의 핵심 생태 축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지리산이 보내는 SOS 구조신호에 배낭을 꾸려 환경청 앞 농성으로 화답하려던 지리산권 활동가들은 반려 소식에 환영 기자회견으로 대신했다. ‘지리산을 그대로’ 반가운 소식을 지리산 사람들과 생명에게 전하고자, 희망을 품고 골프장, 케이블카, 관통 도로 싸움이 있는 지역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