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환경리포트    2024.12월호

마을을 위해 싸운 그대, 떠나지 마요

고산면 안남마을 주민 최세연 씨 인터뷰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졌다.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보조참가인의 비용을 포함하여 원고들이 부담한다.” 두 줄의 문장이 2년 가까운 석산 연장 허가 취소 소송의 끝이었다. 삼덕석산 인근 안남마을 암 발병률 12.84%, 완주군 평균치의 2배 웃돌고 허가구역을 벗어나 돌을 캐고, 장애인 시설 소음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불법이 있었지만 법원은 행정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일보 편집부 최세연 기자, ‘충돌 없었지만 숨 막혔던 하루'로 한국편집기자협회 '이달의 편집상'을 받았던 그의 이력이다.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다 중앙일간지로 옮길 정도로 편집 일에 자신 있었다. 하지만 매일 마감에 시달리는 편집기자, 늦은 밤까지 근무, 체력도 면역력도 바닥이었다. 


맘은 늘 콩밭에 있었다. 쉬는 날이면 배낭에 호미 등을 담아, 지하철을 타고 경기도 양평까지 가서 도시 텃밭을 시작했다. 거둔 작물은 이웃과 나눴다. 한 해, 두 해를 넘겨 7년을 그렇게 보냈다. 문화센터에서 재봉틀을 배우고 손바느질과 규방 공예를 익혔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스트레스를 날리고 급한 마음을 다스리는데 딱 맞았다. 의외로 재주도 있었다.


화우엽설, 하염없이 바라보기 좋았다. 강물이 흘러가면 바람이 뒤따르고, 포플러 이파리가 반짝반짝 속삭인다. 비가 오면 물은 금세 불었다. 소리도 커진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푸르러지고, 단풍이 물들고 앙상한 가지 사이에 눈이 쌓이는 풍경들. 난 너무 지쳤다. 일은 필요할 때 하자. 그래 내려가자! 고심 끝에 고향 전주 인근 완주 고산면 대아저수지 하천 띠 숲이 우거진 고산면 안남마을에 새 터를 잡았다. 서울 생활 18년 만이었다. 


귀농·귀촌, 말은 쉽다. 하지만 실제 귀촌까지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어머니를 모시는 여성이 혼자서 집을 짓고 마을 주민과 어울려 사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행히 먼저 귀촌한 선배들이 있고, 만경강 풍경이 아름다운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안남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마을 뒤 석산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석산 개발이 곧 끝난다고 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대로 군청에 전화를 걸었다. 공무원은 몇 년 후, 집을 짓고 나면 석산 허가가 종료된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정착했다. 


우선 쉬는 날마다 내려왔다. 선배를 통해 알게 된 ‘씨앗 문화예술협동조합’과 인연이 닿았다. 완주 고산에는 씨앗이 2016년 문을 연 커뮤니티 식당인 ‘모여라 땡땡땡’이 있었다. 서로 의지하면서 외롭고 두려운 농촌살이를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냈다. 수요 쉐프를 맡아 음식도 하고 직업을 살려 홍보도 하면서 바지런히 뛰어다녔다. 이 식당은 6년 넘게 잘 살아남았다. 이 활동을 모아 작은 출판사에서 <공동경비부엌 모여라, 땡땡땡> 책을 냈다. 


2019년 아담한 ‘ㄱ’자 집이 지어졌다. 이웃도 고양이도 드나들었다. 미리 어울려 시골살이할 이웃도 만들었겠다, 마을 할매들과 밭도 일구고, 마당에서 깨도 털고, 양지바른 곳에서 콩 뉘도 개리고, 호박 썰어서 널고, 곶감도 말리는, 꿈에 그리던 시골 생활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바느질 공방을 열어 헌 옷과 천으로 모자도 만들고 가방도 만들어 벼룩시장에 팔고 나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2021년, 일 년 남은 석산 허가가 연장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마을엔 그야말로 전운이 감돌았다. 마을 어르신들은 농번기에도 고산 읍내에 나가 ‘석산 허가 연장 반대’ 동의 서명을 받았다. 이장은 석산 업체인 삼덕산업개발의 불법행위에 대한 자료를 모아 군청에 전달했다. 겨우내 순번을 정해 공무원들 출근 시간에 군청에서 1인시위도 했다. 안남마을 이장은 “우리 집사람도 암에 걸렸다, 암에 걸린 안남마을과 종암마을 주민이 28명이고 이 중 4명은 사망했다”라고 밝혔다. 최 씨는 30년 동안 석산 개발로 고통받은 마을 주민들 이야기를 전단으로 만들었다. 사진 배치와 글, 눈에 쏙쏙 들어오는 편집, 농촌 난개발 문제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깜짝 놀랐어요. 석산 입구에 있는 장애인 시설과 학교가 있는데, 30년간 석산 개발로 인한 피해조사가 한 번도 없었다니까요. 발파에 놀라 뇌전증 증상을 보이는 장애인도 있었는데...” 석산 발파 소음과 진동, 날림 먼지로 고통받는 장애인 문제를 언론에 알렸다. 장애인의 이웃으로 본격적인 석산 반대 싸움에 뛰어들었다. 


석산 업체는 허가구역 외 채석 벌금 1천만 원을 받았다. 외부에서 돌을 들여와 깨고 부숴서 팔았다. 자가용 영업이나 마찬가지로 불법이다. 장애인 시설 소음 측정도 기준치를 초과했다. 그런데도 완주군은 “석산의 불법행위에 대한 축적된 자료가 없어서 불허 처분은 어렵다, 연장 안 해주면 업체가 부도가 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외려 중재랍시고 마을 주민들을 챙겨주는 양 ‘석산 업체와 더는 연장은 없다는 합의서를 작성하고 공증을 받아라’고 부추겼다. 


결국, 군수와 석산업체 대표, 안남마을 이장은 장애인 시설과 인근 3개 마을주민을 배제한 채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30년 갈등이 해소됐다고 자화자찬했다. 일부 주민이 연장허가에 동의하는 협약에 반대했고, 최씨도 강력하게 반발했다. 


석산 업체와 마을이 만나는 자리에도 장애인 시설 관계자는 부르지 않았다. “외지인인 저는 빼놓는다고 해도 석산보다 먼저 자리 잡은 장애인을 위해 뭔가 해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고 당연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환경 전사도 투사도 아니었던 그는 마을을 지키려 장애인의 이웃으로 행정소송을 걸었다. 


마을 주민 중 유일하게 합의금을 받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마을과는 껄끄러운 관계가 됐다. 석산 업체는 그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와 소란을 피웠다. 그래도 외톨이도 왕따도 아니라고 우긴다. “마을 할매들은 살짝살짝 오이도 놓고 가고, 먹을 것도 챙겨주세요. 주민들도 매번 지기만 하는 싸움 속에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군에서 허가연장을 사실화하는 상황에서 빈손이 되는 것보다는 보상을 받고 이번 연장 허가로 끝내자는 판단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갈까부다. “바람도 수여가고, 구름도 수여가는” 삶으로 가고 싶은데, 마을에서 거절당한 자리에 무엇을 채우고 살까,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법원에 항소할지도 고민이다. 그가 다시 강물 소리를 듣고 길냥이가 드나드는 마당에서 텃밭을 일구고, 자역 공동체 활동하는 이들과 어울리며 바느질하는 시골살이의 여유를 꿈꿀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