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누구를 찍었나...’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나이가 같은 아들과 조카가 첫 대선 투표를 할 즈음, 둘 다 안철수를 지지한다고 했던 때부터였을 것이다. 자발적 의사는 아니지만 새만금 삼보일배, 부안 핵폐기장, 파병 반대 등 유치원 때부터 안 가본 집회가 없었던 아들. 한살림 생산자인 부모 아래서 공립형 대안학교를 다닌 조카. 둘 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가 싫다고 했다. 안철수가 윤석열 지지 선언과 합당 이후, 설마 윤석열을 찍겠나 싶어 별말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박빙이던 선거가 끝나고 20대 남성의 상당수가 윤석열을 지지했다는 것을 알고, 혹시 이 녀석들도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루 사이 집회 판이 바뀌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계엄의 밤이 지나고 4일 아침, 전주 관통로 네거리에서 긴급 기자회견과 계엄을 규탄하는 거리 행진을 했다. 저녁에는 객사 앞에서 윤석열 퇴진 집회를 열었다. 분노한 민주시민과 민주노총, 시민사회연대회의 활동가와 회원들이 먼저 길을 열었다. 300여 명에서 시작한 참여자는 하루하루 배로 늘어났다. 50~60대 시민이 주를 이뤘다. 집회 대열의 첫머리는 단체 대표나 민주화운동 원로들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1차 탄핵 의결이 있던 12월 7일부터 전주의 집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그날 국민의 관심은 온통 국회에 있었다. 전북에서도 수천여 명이 관광버스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로 올라갔다. 그래서 주력 부대가 빠진 집회가 걱정이 된 일반 시민의 참여가 더 높을 것으로 보고, 문화제 형식의 집회를 기획했다. 이날부터 응원봉을 든 10~20대 청소년들이 무리지어 참석했다. 참석 인원도 크게 늘었다. 전날보다 4배가량 많은 3천여 명이 추운 거리를 지켰다. 탄핵 부결 후 월요일부터 응원봉과 나만의 손피켓, 보온용품을 가방에 챙겨 온 청소년들이 앞자리를 채웠다. 아이돌 콘서트에 입장하듯 미리 와서 기다렸다가 자리를 잡았다. 퇴진운동본부는 양초, 종이컵, LED초 대신 야광봉을 준비했다.
촛불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후 거리와 광장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정의와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을 하나로 모아냈다. 노무현 탄핵, 이라크 파병 반대, 광우병 소고기 수입, 세월호 참사, 박근혜 탄핵 등 민주주의의 현장, 사회적 참사의 애도 현장의 어둠을 비춰온 촛불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형형색색, 자유롭게 흔드는 K-응원봉 물결로 진화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오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이 노래는 민주화 세대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희망, 연대,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담고 있는 가사와 밝은 멜로디는 새로운 세대가 주도하는 K-시위의 상징적인 노래였다. 다른 세대는 서로의 노래를 주고받았다. 의견을 내는 것도 거침없었다. 동물 비하나 비속어, 불편한 관심을 거절했다. 평등한 시민으로 대해달라고 요구했다. 민주 수호를 외치며 최루탄 속에서 화염병을 던졌던 거리 투쟁에서 광장의 촛불을 거친 나로서는 아, 이제 비로소 낡은 체제가 무너지는구나 싶어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2017년 겨울이 떠올랐다. 박근혜 탄핵을 앞두고 국민이 든 촛불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바라는 희망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도 꾸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노랫말처럼 국민주권 실현에 기대감이 높았다. 그런 세상을 만들려면 법과 제도는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개헌 작업에 돌입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대통령 직선제 등을 담은 9차 개헌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국 사회는 87년 이후 정치, 경제, 환경, 기술 등 모든 영역에서 큰 변화를 경험했다. 헌법은 이러한 변화와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 많은 한계가 있었다. 당시 개헌의 이슈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였다. 5·18 정신 전문 반영, 비례성 강화, 결선 투표제 도입, 자치분권 확대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당시 환경운동연합은 정치 체제뿐만이 아니라, 생태적 가치와 민주주의 원칙을 헌법에 반영하자는 "생태민주헌법"을 제안했다. 경제 성장과 국가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환경권의 강화, 기후 정의 실현, 미래 세대의 권리 보장, 자연과의 공존 명문화,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생태 보전, 동물 보호 조항 추가 등을 담고자 했다.
정치권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국회도 개헌특위를 구성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헌법자문특위를 운영하면서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 발의안을 냈다. 헌법 전문에 "자연과의 공존 속에서 미래 세대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담았다. 우리의 안녕이 자연생태계의 건강에 기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농·어업의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고, 동물 보호 조항을 반영한 점도 중요한 진전이었다. 하지만 여야의 정치적 합의 부족, 국회와 대통령의 주도권 싸움, 국민투표법 개정 불발 등으로 높디높은 개헌의 문을 열지 못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개헌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법체계가 윤석열 정권의 탄생과 계엄 사태를 초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정치권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서며 국회를 지킨 국민의 힘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끌어내고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 그 주체가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10대~30대라는 점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서, 국가 운영과 정치의 틀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매우 기쁜 일이다.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 성소수자, 채식주의자, 페미니스트, 동물보호 등을 청년 세대의 다양성을 헌법에 담는 것이 응원봉 물결이 시대에 요구하는 것이다.
12월 7일, 아들은 친구들과 100만 명의 한 명으로 여의도에 있었다. 운동하다 다쳐 수술했는데 퇴원하자마자 엄마도 마다하고 갔다고 한다. 그 친구가 여자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