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광화문 교보문고 글 판에도 걸렸던 노동자 시인 백무산의 ‘정지의 힘’이다. 난개발의 폭주를 멈추는 힘, 차별과 배제, 혐오를 멈추는 힘, 자연에 가하는 자본의 폭력을 멈추는 힘, 이 힘이 더 나은 세상으로 달리는 원동력이 된다. 마음도 그렇다. 혜민 스님의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사회도 사람도 자연도 정지에 이르렀을 때, 다시 달려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사회도, 사람도, 자연도 정지에 이르렀을 때 다시 달려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된다. 씨앗은 이러한 ‘멈춤’의 본질을 담고 있다. 씨앗에 담긴 힘은 조건이 맞으면 언제든 아름다운 생명의 꽃을 피운다. 이는 짓밟고 파괴하는 힘이 아니라, 보듬고 살리며 함께 살아가는 힘이다.
여기, 씨앗처럼 작지만, 멈추는 힘으로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며, 희망과 생명을 심어 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2024 전북 환경인상 수상자들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1월 23일 정기총회에서 지역 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이들을 시상했다.
‘환경시민상’을 수상한 고창군 아산면의 윤종호 이장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씨앗이다. 고창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인 선운산 병바위 아랫마을 들판에서 농사를 짓고 마을 일을 돌보며, 이웃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왔다. 윤 이장은 수명이 다한 한빛원전 폐쇄 및 도민의 알권리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탈핵 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2년간 일본 유학을 하며 원전 시민 과학의 대부를 만났고, 그 만남을 계기로 반핵 운동에 평생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처가가 있는 고창으로 귀촌해 지역 시민사회 인사들과 함께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고창군민행동’을 결성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핵발전소의 위험, 그 진실에 다가가는 신문’을 내걸고 창간한 ‘탈핵 신문’의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탈핵 운동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친근하고 쉬운 언어로 핵 문제를 알리며, 미디어와 전문가 그룹을 활용한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펼쳤다. 또한, 전북교육청이 국내 최초로 제작한 학교 교육용 탈핵 교재 《탈핵으로 그려보는 에너지의 미래》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그는 전북 탈핵연대를 주도하고 고창군에 민간 환경감시기구의 필요성을 공론화해 ‘한빛원전 감시센터 고창분소’를 설립했다. 방사선 대피 구역 계획 확대도 관철시켰다. 지역 주민을 대표해 ‘고창군 한빛원전 범군민대책위’와 ‘고창군원자력안전협의회’의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한빛원전 4호기의 부실시공 및 재가동 문제,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방안 부재 등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다. 주민의 알권리와 안전 보장을 위해 헌신했다.
외지에서 귀촌한 운동가로서 지역에서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에 그는 마을 일에도 앞장섰다. 2019년 1월부터 ‘고창군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설치 반대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주민 궐기대회와 릴레이 시위 등 소각시설 백지화 요구를 위한 활동을 도맡았다. 그는 생활폐기물 소각장 공론화를 주도하며 대타협을 이끌어냈고, 조례 제정을 제안해 자원순환 정책을 제도화했다. 그의 노력은 지역 공동체의 안전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씨앗이 되었고, 이는 지금도 숲으로 자라나고 있다.
환경단체상은 문학적 비유로서의 ‘씨앗’이 아니라 진짜 ‘토종 씨앗’ 복원에 매달려온 ‘씨앗 받는 농부’에게 돌아갔다. 대표인 이종란 농부는 완주 고산에서 30여 종의 토종 씨앗을 수집, 재배, 보존하며 자연순환 농법과 유기농을 통해 생태적 농업의 가능성을 증명해 냈다. 그는 씨앗 나눔 행사와 교육 활동을 통해 토종 농업과 생태적 농업의 가치를 확산시키며, 도시와 농촌 간의 교류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키워왔다. 격주로 환경연합에서 ‘꾸러미 장터’도 연다.
이들에게 토종 씨앗은 단순한 씨앗이 아니다. 정지된 씨앗 안에는 수백 년 동안 지역 주민이 쌓아온 지혜와 자연에 적응해온 역사가 담겨 있다. 현대 농업은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생성과 확산의 힘을 잃은 씨앗이 지배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귀한 씨앗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씨앗 받는 농부의 땀방울로 우리의 땅이 더욱 푸르고 풍요로워질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환경교육상은 ‘자연을 닮은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생태전환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푸른꿈고등학교’에 돌아갔다. 이 학교는 환경교육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과 기후 정의, 먹거리 변화를 통한 실천, ‘푸른꿈 자원순환센터’, ‘푸근마켓’, ‘섬진강 도보 기행’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생태적 감수성과 자원과 생명의 순환을 배우고 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며 살아가는 삶을 상상하고 실천하도록 돕는다. 이 학교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생태적 연결의 씨앗은 언젠가 세상을 아름답게 피워낼 것이다.
‘환경언론상’을 수상한 KBS 서윤덕 기자는 진실을 알리는 씨앗이다. 그는 4년간 120여 건의 기사를 통해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 및 수명 연장과 관련해 전북 지역의 원전 사고 위험성을 집중 조명했다. 그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30km→50km), 주민 대피로 및 방호 체계 문제, 전북 지역자원시설세의 불균형 문제(0원),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의 영구화 우려, 그리고 한수원의 일방적 재가동 추진과 허술한 주민 공람 절차 등을 비판했다. 지역 주민의 알권리와 한빛원전의 안전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며, 원전 정책의 허점과 대안을 제시했다.
씨앗을 심는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이들이 뿌린 씨앗은 각자의 자리에서 환경을 지키고, 생태적 연대를 이루며 더 나은 내일로 자라날 것이다. 씨앗 같은 삶으로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하는 이들의 헌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